새 학기 적응 퀘스트

12. 어색함을 무너뜨리는 아이들의 게임

by 아마추어게이머

이제 3월, 새 학기가 시작됐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니기에 초봄이 언제나 새로운 환경이라는 퀘스트를 던져주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이 무렵의 공기는 왠지 모르게 나를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낯선 곳에 홀로 던져진 듯한 서늘함. 어쩌면 그건 새로운 시작보다 적응이라는 퀘스트를 앞두었던 어린 날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게임 입성기는 오락실과 가정용 콘솔을 거쳐 PC방으로 이어졌다. 당시 스타크래프트가 PC방 열풍의 일등 공신이었지만, 학교에서 15시간을 보내던 고등학생이 시간을 내서 PC방에 출입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의 스타크래프트는 언제나 외로운 싱글 플레이였기에 굳이 PC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친구들과 가끔 찾더라도 고작 연예인 사진을 검색하거나 숙제를 출력하는 정도였다. 부모님의 걱정을 살 일 없는 조용하고 평범한 딸이었던 내게 게임은 안전한 방 안에서 즐기는 소소하고 고요한 일탈이었다.


그렇게 혼자 노는 법에 익숙했던 내게 대학이라는 커다란 광장은 너무도 낯설었다. 모든 것이 신기하면서도 어색했던 입학 초, 사람들에게 쉽게 곁을 내어주지 못하는 성격 탓에 과 활동에서도 겉돌기 일쑤였다.

변화는 대학 생활의 로망이라 불리는 동아리에서 시작됐다. 여전히 인싸와 아싸의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였지만, 학보다 동아리에 훨씬 빠르게 녹아들 수 있었던 건 혼자만의 취미였던 게임이 타인의 세계로 건너가는 다리가 되어준 덕분이었다.


동아리방에 멍하니 앉아 있으면 선배들이 다가와 슬쩍 말을 건넸다. "공강이야? PC방 가자!"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는 나를 데리고 그들이 향한 곳에서 나는 진짜 PC방의 세계를 만났다.


그 시절 가장 많이 즐겼던 게임은 2000년대 초를 강타한 [포트리스]였다. 탱크들이 마주 서서 포탄을 주고받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규칙 덕분에 당시 포트리스는 남녀노소를 불문한 국민 게임이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팀을 나누고 점심 내기를 하곤 했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가늠하며 포탄을 날리던 즐거운 경쟁의 시간. 어색한 침묵을 채우려 애쓰는 말들보다, 함께 포탄의 궤적을 바라보며 터뜨린 짧은 환성이 나를 더 빨리 그곳에 소속되게 했다. PC방이라는 물리적 공간 안에서 우리의 심리적 거리는 그렇게 좁혀졌다. 그때 나에게 게임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어색한 마음의 소리를 대신 전달해 주는 또 다른 언어가 되었다.




요즘 교실 풍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새 학기 특유의 묘한 어색함과 불편함이 감도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 전략을 찾는다. 내 유년시절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아이들은 게임을 매개로 친분을 쌓고 함께 플레이하며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데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기능이 있으니 무조건 게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새 학기, 새 학교에서 마주하는 그 낯설고 불편한 공기를 빠르게 누그러뜨리는 수단으로써 게임을 바라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교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게임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 위로, 동아리방에 앉아있던 나를 이끌어주던 선배들의 손길이 겹쳐 보인다. 소통의 도구는 변했을지 몰라도, 타인에게 곁을 내어주기 위해 함께할 무언가를 찾는 방식은 여전한 셈이다.


새로운 환경이 주는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거창한 교육 프로그램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자연스럽게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가상의 놀이터 하나면 충분하다. 게임이라는 도구가 그 낯설고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게임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다만, 우리가 아이를 동네 놀이터에 보낼 때 그곳에 위험한 장애물은 없는지 살피듯, 게임이라는 이름의 놀이터 역시 어른들의 따뜻한 시선이 머물 때 비로소 안식처가 된다. 방 안에서 홀로 게임을 즐기던 내가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PC방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아이들의 곁에서 그 세계가 안전하고 즐거운 통로가 될 수 있도록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할 때다.




차가운 3월의 교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 학기 적응 퀘스트를 치러내는 중이다. 하루빨리 그들의 퀘스트가 클리어되어 '적응 성공' 메시지가 뜨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새학기 #학교적응 #게임과소통 #게임문화 #PC방문화 #포트리스 #청소년게임 #게임과친구 #게임사회성 #게임경험 #게임추억 #게임소통 #게임리터러시 #부모게임지도 #아이들과게임

작가의 이전글총 쏘는 게임은 나쁜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