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정정당당하게 이기고, 멋지게 지는 법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치트키와 핵을 혼동하는 학생들을 종종 만난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치트키는 싱글 플레이 게임에서 원활한 진행을 돕기 위해 개발자가 숨겨놓은 합법적인 장치이고, 핵은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강제로 승리를 조작하는 불법적인 속임수다.
최근 잘 나가던 국내의 모 게임이 핵 유저들로 인해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만 봐도, 핵이 생태계에 얼마나 치명적인 독인지 알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게임사가 테스트를 위해 만들어 둔 치트키의 데이터나 시스템의 틈새가 변질되고 악용되어, 오늘날 핵이라는 비수가 되어 게임사의 목을 조르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날카로운 비수를 돈을 주고서라도 기꺼이 손에 쥐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핵을 쓰는 대다수 유저는 공정한 경쟁보다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승리 지상주의에 빠져있다. 그들에게 과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타인을 짓밟고 얻어낸 승리라는 결괏값에만 매몰되어 있다.
심지어 정당하게 플레이하는 유저들을 "요령이 없다"라며 비웃기까지 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 얻는 그릇된 재미까지 우리가 취향으로 존중해야 할까? 단언컨대 아니다.
나 역시 한때 치트키를 맛깔나게 써본 사람으로서 이런 사태가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Show me the money]이 문장을 보고 스타크래프트를 떠올렸다면, 아마 나와 민속놀이를 함께한 동년배일 것이다. 당시엔 온라인 환경이 좋지 않아 나는 오프라인 싱글플레이만 진행했었고, 언제든 치트키를 쓰면 쉽게 승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사용하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그리 떳떳하지 못한 모양이라 정말 코너에 몰리거나, 원 없이 승리하고 싶을 때만 사용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렇게 얻은 승리에는 치트키 없이 땀 흘려 이겼을 때의 짜릿함이나 뿌듯함이 없었다. 휘발되는 찰나의 쾌감만 있을 뿐이었다.
결국 게임이든 현실이든, 승리라는 결과만큼이나 중요한 건 그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실력이 배제된 승리, 땀방울 없는 성취에는 큰 가치가 담길 수 없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디서 이 정직한 과정을 배워야 할까? 이미 핵이 만연한 게임 세상에서 이런 가치를 배우기는 어렵다. 사회라는 냉혹한 정글로 나가기 전, 가장 안전한 실패의 연습장이 되어야 할 곳은 바로 학교다.
하지만 요즘 학교는 마치 경쟁균을 박멸하려는 무균실처럼 변해가고 있다. 승패의 결과에만 집중하여 패배한 학생들의 마음이 다칠까 봐 경쟁 요소를 아예 배제하려는 분위기다.
물론 정답 하나로 등수를 매기는 개인 간의 시험 시스템을 더 강화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내가 학교에 바라는 건,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치열한 협력의 과정이 포함된 건강한 경쟁, 그 가치를 학교가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경쟁을 남을 이기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학교에서 배워야 할 진짜 경쟁의 결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정정당당하게 승리하고, 멋지게 패배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패배를 끝이 아닌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회복탄력성을 기르고, 경쟁자를 넘어서야 할 적이 아닌 나의 성장을 돕는 러닝메이트로서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것이 바로 건강한 경쟁이 주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하지만 이러한 가르침이 부재한 상태에서 과정이 생략된 승리만 쫓다가는, 결국 현실에서도 핵을 찾는 사람으로 자라날지도 모른다. 부디 아이들이 건강한 경쟁의 가치에 대해 자연스레 배울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사실 이렇게 진지하게 글을 썼지만, 치트키 하나 없는 현실을 맨몸으로 버티다 보면 가끔은 엉뚱한 상상이 간절해진다. 이를테면 초능력 같은 힘이 생기거나, 화수분처럼 돈이 쏟아지는 무적 치트키 말이다.
현실판 [Show me the money]를 꿈꾸며, 나는 오늘도 경건한 마음으로 로또 한 장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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