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CD 시대

02. 불편함이 가르쳐준 인내의 미학

by 아마추어게이머


90년대는 지금처럼 클릭 한 번으로 게임을 다운로드하거나 온라인에 접속해 플레이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묵직한 게임 팩이나 반짝이는 CD를 손에 쥐어야만 비로소 모험을 떠날 수 있는, 물성의 시대였다.


정말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돌이켜 보니 학창 시절에 정품 게임을 구매한 기억은 거의 없다. 당시엔 공 CD를 사서 게임을 구워 파는 친구들이 반마다 한두 명쯤은 꼭 있었고, 전자상가 구석에서는 상인들이 복제 CD를 암암리에 팔곤 했다. 친구에게 부탁하거나 상가 아저씨와 흥정하며 게임을 구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저작권 의식 없이 그런 불법이 만연했던 그야말로 '야만의 시대'였다.


그 시절 CD들은 개복치만큼이나 연약했다. 조금만 긁혀도 안 되고, 열을 받아도 안 되고,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속이 병든 경우가 허다했다. 연약한 CD와 동생이 얼기설기 조립해 준 PC의 조합이야 오죽했겠는가.

플레이 도중 화면이 멈추거나, 렉이 걸려 NPC가 같은 대사만 무한 반복하는 일은 예사였다. 그럴 때면 PC마저 먹통이 되곤 했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Ctrl+Alt+Delete]를 누르거나 전원 버튼에 손을 뻗었다.

당시엔 이런 치명적인 불편함마저 게임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아, 또 튕겼네.' 그러려니 하며, 묵묵히 재부팅을 기다리고 다시 게임을 이어갈 뿐이었다.

어찌 보면 그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내성을 길러준 셈이다.


반면,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해결되는 결핍 제로의 세상에서 자란 요즘 아이들에게는 작은 불편함마저 손톱 밑의 가시처럼 느껴질 수 있다. 물론 부당한 상황까지 무조건 참으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상황마저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면, 결국 가장 괴로운 건 본인일 것이다.


지금은 모든 게 넘쳐나는 과잉의 시대다. 부족함이 없다 보니 우리는 종종 기다림을 무능력으로, 불편함을 제거해야 할 오류로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똑똑함보다, 때로는 상황을 유연하게 넘기는 현명함이 우리의 마음을 더 단단하게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 저작권 개념조차 없던 야만의 시대를 관통해 온 세대다. 부끄러운 과거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시기의 잦은 실패와 기다림 덕분에 나는 불편함을 견디는 법을 몸으로 배웠다.


그래서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문제 해결능력만큼이나 참고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확신한다. 기다림이란 단순히 시간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감정을 조절하며 묵묵히 다음 기회를 준비하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삶에는 게임과 달리 리셋 버튼도, 즉각적인 패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원치 않는 상황, 즉 인생의 버그를 만났을 때 이 근육이 단단하지 않다면, 아이들은 냉혹한 사회 속에서 너무나 쉽게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

불편함을 견디는 힘, 그것은 야만의 시대가 내게 남긴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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