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 히스토리
여러분은 어떤 교통수단을 주로 사용하시나요?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교통수단 별 수송분담률을 보면 전체 육상교통수단 중 승용차가 53.7%를 차지합니다. 그 다음으로 많은 수송을 담당하는 것은 의외로 철도가 아닌 버스입니다. 버스의 수송분담률은 22.8%로, 지하철을 포함한 철도(20.6%)보다 많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버스는 전세계 어디서나 사랑 받는 대중교통입니다. 철도와 달리 기반시설 없이도 어느 지역이든 운행할 수 있고, 많은 인원을 탄력적으로 수송할 수 있으며, 유지비도 저렴해 국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버스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서민의 발'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데요.
대중교통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버스의 역사는 생각보다 아주 깁니다. 내연기관 자동차 탄생 이전, 마차 시대부터 노선 버스가 운행됐으니 그 역사는 무려 400년에 육박합니다. 오늘은 가장 많은 사람을 태우는 자동차, 버스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마차 시대에 탄생한 '모두의 차'
지금이야 누구나 소정의 돈만 내면 원하는 곳까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지만, 17세기만 해도 서민들에게 이동성은 "꿈 같은 얘기"였습니다. 말과 마차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고, 도시의 일반 서민들은 두 발로 걷는 것 외의 교통수단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1662년,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최초의 노선 마차가 등장합니다. 이 마차는 저렴한 운임을 받고 파리 시내의 정해진 노선을 따라 달리며 승객을 실어날랐습니다. 노선 구간을 이용하는 여러 승객이 운임을 분담하니, 특정 손님을 태우고 특정 목적지까지 운행하는 피아커(Fiacre, 이후 택시로 발전합니다)보다 훨씬 저렴하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보다 현대적인 대량 수송형 노선 마차는 1823년 프랑스 낭트(Nantes)에서 등장했습니다. 낭트 외곽에서 목욕탕을 경영하던 스타니슬라스 보드리(Stanislas Baudry)는 도심의 시민들이 목욕탕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셔틀 노선 마차를 운행하기 시작했는데요. 목욕탕에 오지 않는 승객들도 이 셔틀을 이용하면서 큰 수익을 거뒀고, 운수업의 가능성을 본 보드리는 목욕탕 사업을 접고 파리에도 노선 마차 운행을 시작하며 유럽의 버스 시대를 엽니다.
그렇다면 '버스'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진 걸까요? 낭트의 목욕탕 셔틀 마차가 출발하는 역 앞에는 잡화점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 가게에는 'Omnes Omnibus(라틴어로 '모두를 위한 모든 것)'라는 간판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마차를 기다리던 이들에게 이 광고 문구가 각인된 건 물론이요, 라틴어로 '모두를 위한'이라는 뜻의 옴니버스(Omnibus)가 셔틀 마차와도 잘 어울리다보니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셔틀 마차를 옴니버스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 옴니버스가 여러 나라로 확산되며 자연스럽게 축약돼 '버스(Bus)'가 일반명사로 자리잡게 된 것이죠.
마차로 시작된 버스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동력원을 탑재합니다. 1833년 런던에서는 세계 최초의 증기기관 버스가 운행을 시작합니다. 증기기관 버스는 마차보다 훨씬 빠르고, 유지비도 압도적으로 저렴한 데다, 장거리 운행도 가능했습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도시 간 노선에 증기 버스가 투입되기도 합니다.
1882년에는 베르너 폰 지멘스 박사(Dr. Werner von Siemens, 철도와 엔지니어링으로 유명한 독일 기업 지멘스의 창업주)가 가공전차선을 따라 주행하는 전기 트롤리 버스를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트롤리 버스는 전차와 비슷하게 움직이지만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가설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 1901년 독일에서 첫 상업 운행을 시작했고, 이내 유럽 각지로 확산됐습니다.
오늘날 버스의 주류가 된 내연기관 버스는 1895년 처음 등장합니다. 초기의 내연기관은 증기기관이나 전기 모터에 비해 토크가 약해 대량 수송용으로는 빛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내연기관의 성능은 빠르게 발전했고, 증기 버스처럼 오랫동안 예열할 필요도, 트롤리 버스처럼 전차선을 깔 필요도 없다는 장점이 부각되며 이내 유럽 대중교통의 주축이 됩니다.
이처럼 마차 시대부터 운행을 시작한 버스는 도보 이동에 의존했던 서민들에게 이동성 혁신을 제공하면서 통근권의 확대를 불러왔고, 이는 유럽의 도시가 더 많은 인구를 수용하고 대규모 기업체가 탄생하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즉, 버스의 탄생은 19세기 이후 산업혁명의 팽창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버스 발전사
대중교통으로서의 버스의 탄생 비화를 살펴봤으니, 이제는 차량으로서의 버스를 살펴볼까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초창기의 버스는 대부분 2층 구조를 채택한 더블데커(double-decker)였습니다. 1층 버스(싱글데커)가 대중화된 건 이후의 일입니다.
2층 버스가 주류였던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이때까지는 도로 포장 상태도 나쁘고 자동차의 승차감도 소위 '소달구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입석이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수익을 낼 만큼 많은 인원을 태우고 시내를 누비려면 2층 차량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가도로나 터널, 전신주 따위가 없었던 당시의 도로 상황 덕에 2층 버스 운행에 제약이 적기도 했고요.
1898년 다임러에서 출시한 2층 버스는 20명의 승객을 태우고 18km/h 정도로 달릴 수 있었지만, 이후 성능이 빠르게 향상됐습니다. 다만 가솔린 내연기관은 토크가 낮고 연료비가 많이 들어 증기 버스와 계속해서 경쟁했는데요. 이런 내연기관 버스와 증기 버스의 경쟁은 1923년 디젤 자동차가 상용화될 때까지 이어집니다. 디젤 엔진은 가솔린 대비 연비와 토크가 우수해 증기기관을 빠르게 대체했고, 이내 버스의 주류로 자리 잡습니다.
1920년대부터는 우리가 아는 1층 버스의 비중이 크게 늘어납니다. 엔진의 성능이 향상되고 도로가 발달하면서 장거리 구간에는 고속 안정성이 우수한 1층 버스가 투입되기 시작했고, 2층 버스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소도시 등지에서는 화물트럭이나 밴을 개조한 소형 1층 버스가 사용됐는데, 이들이 각각 오늘날의 고속버스와 시내버스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부 시골에서는 트랙터나 트럭으로 버스 형태의 트레일러를 끄는 '버스 트레일러'가 운행되기도 합니다.
전간기 버스는 대부분 프론트 엔진-후륜구동 설계를 채택했는데요. 휠베이스가 길어져 회전반경이 크고, 보닛으로 인해 운전자의 사각지대가 크며, 엔진이 차지하는 공간 탓에 객실이 작아진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엔진을 한 쪽에 쏠리게 탑재하고 운전석을 전진 배치하거나, 아예 운전석 뒷편 실내에 엔진룸이 위치하는 설계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구조들 역시 기존의 단점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기에 1931년에는 엔진을 차체 후방에 배치한 버스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엔진이 뒷쪽에 있어 더 여유로운 공간을 확보한 건 물론, 회전반경을 줄이고 운전자의 시야를 넓히는 효과도 얻을 수 있었죠. 이런 리어 엔진 버스는 발전을 거듭해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버스 구조의 표준이 됐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육상 교통 수요가 폭증하면서 버스의 전성기가 찾아옵니다. 이 때부터 용도 별로 버스의 형태도 세분화되기 시작하는데요. 도심에서 운행하는 시내버스는 승하차 편의성과 장애인 탑승을 고려해 점차 저상형 차체가 주류로 자리 잡았고, 광역 및 장거리 노선에 투입되는 고속버스는 화물 공간을 확보하고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고상형 차체(하이데커)가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그 밖에도 2층 버스나 굴절 버스처럼 대량의 여객 수송에 대응하는 특수 버스도 꾸준히 만들어집니다.
버스 특유의 큰 차체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노선 버스 외에도 대량의 인원을 수송하기 위한 기업이나 관공서의 운송 차량, 통학·통근 셔틀로 쓰이는 일이 흔하고, 아예 실내를 개조해 이동식 진료소나 격오지를 위한 이동식 상점·도서관으로 변신하기도 하고, 버스 차체 기반의 캠핑카를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버스 차체를 기반으로 하는 캠핑카는 '클래스 A' 모터홈으로 불리는데, 실내를 호화롭게 꾸미고 승용차나 레저 장비를 싣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대로 제대로 된 버스가 없어 자생적으로 탄생한 버스도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볼 수 있는 지프니(Jeepney)인데요. 2차 대전이 끝난 뒤 미군이 두고 간 지프의 부품을 주워다 길이를 늘려 만든, 지프와 버스의 혼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런 지프니들도 완성차 회사에서 만든 소형 버스로 대체되며 점차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미래차 시대의 버스
2020년대 들어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는 자동차 산업은 버스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전동화와 자율주행 양면에서 버스는 적극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선 전동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건 버스의 특성 때문인데요. 도심 운행 비중이 높은 시내버스는 배출가스 규제에 민감하게 대응해 일찌감치 전동화에 돌입했습니다. 시내버스는 1회 운행 시 주행거리가 짧은 편이라 주행거리의 약점이 있는 전기 구동계를 도입하기 수월할 뿐더러, 차체가 커서 배터리 탑재가 쉽고 전용 차고지를 갖추고 있어 운행 종료 후 버스를 충전하거나(전기 버스), 수소 충전소 부지를 확보해 운행하는 것(수소 전기 버스)이 가능합니다.
때문에 버스의 전동화는 매우 빠르게 이뤄졌습니다. 세계 최초로 전기 버스를 상업 노선에 투입한 것은 놀랍게도 우리나라입니다. 지난 2010년 남산 순환 버스 5대를 시작으로 전기 버스를 운행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매년 500~1,000대의 전기버스가 전국 시내버스 노선에 신규 도입되고 있습니다. 유럽, 중국 등지에서 전기 버스의 도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추세이며, 수소 전기 버스 또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상업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자율주행 또한 버스와 궁합이 좋은 편인데요. 정해진 노선을 따라 운행하기 때문에 자율주행 테스트 과정에서 변수를 줄일 수 있고, 시내버스의 경우 평균 속도가 낮아 사고의 위험성도 상대적으로 적은 까닭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이 탑승하는 만큼 인명 사고의 리스크는 상존하지만, 그럼에도 비교적 통제된 환경-가령 특정 행사 현장에서 쓰이는 셔틀 버스나 정해진 구역 내의 순환 노선-에서 자율주행 테스트를 진행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서울, 판교, 세종 등지에서 자율주행 버스의 시범 운행이 이뤄진 바 있으며, 해외에서도 각종 행사 현장이나 공장·대학 캠퍼스 내부 등 통제된 환경에서 자율주행 셔틀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미래차 기술이 버스에 장밋빛 전망만 가져다 주는 건 아닙니다. 버스와 같은 대형 상용차는 긴 충전시간이 요구돼 플러그인 방식의 배터리 전기차로 운용하는 데에 한계가 있으며, 수소 전기 버스는 수소의 안정적인 공급망이 확충돼야만 보급이 가능합니다. 또 완전 자율주행이 구현되면 개인화된 자율주행 차량이 정해진 노선을 벗어날 수 없는 버스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효율적인 대량 수송 수단인 버스가 아예 사라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철도와 같은 대체 교통수단이 없는 지역에서 버스는 가장 유용한 탈것이며, 무엇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서민에게 이동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버스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100년 전, 200년 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버스는 앞으로도 서민의 발로써 그 역할을 다 할 것입니다. 다음 세대에는 또 어떤 버스가 우리의 일상을 담고 달리게 될까요?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