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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카미디어 PCARMEDIA Feb 17. 2022

기아 쏘울 : 어쩌면 컴팩트 크로스오버의 원조?

수요 명차 극장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소형 SUV의 인기는 좀처럼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기존 소형차와 준중형차 수요 중 상당부분이 소형 SUV에게 흡수돼 국내에서는 소형 세단과 해치백이 아예 멸종할 정도인데요. 심지어 최근에는 경형 SUV까지 등장하며 그 영역을 경차 세그먼트까지 확장하고 있죠.


소형 SUV의 매력 포인트는 컴팩트한 차체에 매력 넘치는 디자인, 높은 시트 포지션으로 인한 운전의 편의성, 작은 차체에도 제법 실용적인 공간 등입니다. 처음 운전을 시작하는 사회초년생, 데일리 카로 부담없이 탈 차가 필요한 직장인, 작고 운전하기 편한 차를 원하는 중·장년층 등 모든 세대에게 소형 SUV는 아주 매력적인 차인 셈이죠.

혜성처럼 나타나 미국 크로스오버 시장을 뒤집어 놓은 쏘울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조건들을 빠짐없이 모두 갖추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과거에도 소형 오프로더나 소형 크로스오버가 출시된 적 있지만 이들이 모두 주류 시장에서 '대박'을 치지 못한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상품성을 지닌 차는 2010년 전후에야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 새로운 시장의 태동기에 기아 쏘울이 있었습니다.


쏘울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차입니다. 차 크기를 보자면 소형과 준중형의 중간 쯤이고, SUV와 해치백, 박스카를 섞어놓은 듯한 디자인을 지녔습니다. 그야말로 '크로스오버'라는 용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모델인데요. 후일 큰 인기를 끄는 컴팩트 CUV의 원조이자, 2010년대 '디자인 기아'를 대표하는 모델 중 하나로써 기아를 글로벌 브랜드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이기도 합니다.


우연과 우연이 겹친 성공?
쏘울의 아이디어를 제시한 마이클 토페이. 그는 기아 니로의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사실 기아 쏘울은 처음부터 전략모델로 개발된 차는 아니었습니다. 순전히 우연히 만들어진 차였는데요. 그 흥미로운 역사는 2005년 한 디자이너의 펜끝에서 시작됩니다.


기아 캘리포니아 디자인 센터에 새로 합류한 마이크 토페이(Mike Torpey)는 어느 날, 한국 멧돼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됩니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던 중 영감을 받았고, 멧돼지가 배낭을 멘 캐리커처를 그리게 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지만, 아마도 산속을 거침없이 헤집고 다니는 멧돼지가 배낭을 메고 모험을 다니는 이미지를 떠올렸으리라 생각됩니다.

2006년, 멧돼지 캐릭터에서 영감을 얻은 쏘울 콘셉트카가 등장합니다.

이 캐리커처는 디자인 콘셉트 자료로 한국에 보내졌고, 이 아이디어는 제법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배낭 멘 멧돼지처럼 단단하고 당돌한 소형 크로스오버 콘셉트를 실제로 제작하자는 의견이 나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2006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최초로 공개된 'KND-3', 쏘울 콘셉트카입니다.

내·외관 모두 신선한 아이디어가 담겨 있던 쏘울 콘셉트카는 큰 호평을 받습니다.

쏘울 콘셉트카는 양산 버전보다 훨씬 남성적이고 볼드한 이미지였습니다. "SUV의 스타일과 MPV의 실용성, 세단의 승차감을 한 데 모은다"는 콘셉트로, 당시 자동차 시장에 불었던 크로스오버 기조가 반영돼 있었습니다. 각진 차체는 단단한 인상을 주면서 귀엽기도 했고, 동시에 시트를 접으면 큰 짐도 무리 없이 실을 수 있었죠. 실내 곳곳에는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담겨 있었고, 사용하기 편리하면서도 젊고 세련돼 보였습니다.

뜻밖의 열광적인 반응에, 기아는 쏘울을 양산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렇게 등장한 콘셉트카는 큰 호평을 받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SUV의 스타일과 승용차의 주행감각을 합친 크로스오버 차량(CUV)은 일반적으로 패밀리 카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쏘울은 퍼스널 카인 컴팩트 카 시장에 이런 CUV 스타일을 접목했습니다. 게다가 북미에서 젊은 세대의 첫 차로 꾸준히 팔리고 있던 박스카(닛산 큐브, 사이언 xB, 혼다 엘리먼트 등)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쏘울은 참신하고 매력적이었습니다.


뜻밖의 좋은 반응에, 기아는 쏘울의 양산을 결정합니다. 당시로선 콘셉트카가 인기를 끌어 양산에 이르는 것이 국산차 회사에서는 거의 없었기에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북미 시장에서의 성장을 노리고 있던 기아로선 쏟아지는 호평에 브랜드 이미지를 일신할 기회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었죠.

마침 기아에 합류한 피터 슈라이어는 쏘울의 디자인에 관여하지는 않았으나, 소형 SUV 디자인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때마침 기아에는 새로운 디자인 수장이 영입되는데, 바로 아우디와 폭스바겐에서 활약하던 스타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였습니다. 그가 폭스바겐에 있던 시절, 컴팩트 MPV 폭스(Fox) 기반의 SUV를 디자인하다 프로젝트가 엎어진 일이 있었는데, 이 때의 디자인 경험이 쏘울을 개발하는 데에도 일부 반영됐다는 후일담이 전해집니다. 또 슈라이어 시대에 정착된, 이른바 '호랑이코 그릴'이 적용된 초창기 모델 중 하나이기도 하죠.


마침내 2008년, 광주의 기아 공장에서 쏘울의 생산이 시작됩니다. 우연히 그려진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콘셉트카가 탄생하고, 그 콘셉트카가 뜻밖의 인기로 양산되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의 연속이었죠. 하지만 그렇게 우연 속에서 탄생한 쏘울은 큰 성공을 거둡니다.


햄스터가 만들어 낸 대박 신화
쏘울은 기아 브랜드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차였습니다.

쏘울은 이때까지만 해도 평범하고 개성 없었던 기아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차였습니다. 보수적인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보기 드문 크로스오버인 데다, 디자인이나 콘셉트도 개성이 뚜렷했죠. 동시에 흥미로운 사양을 잔뜩 탑재하고, 실용성까지 확실히 챙긴 차였습니다.

외관 디자인은 콘셉트카를 거의 90% 이상 반영했습니다.

디자인은 콘셉트카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따랐습니다. 단지 실용성이나 거주성을 고려해 약간의 비례가 조정됐을 뿐이었죠. 두툼한 스키드 플레이트가 앞뒤 범퍼를 감싼 형태며,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며, 독특한 테일램프 배치며 모두 콘셉트카를 빼다 박았습니다. 심지어는 A-필러를 검게 칠한 디테일까지 말이죠.

실내 역시 콘셉트카의 디테일을 따랐고, 몇몇 흥미로운 사양도 탑재됐습니다.

인테리어 역시 콘셉트카의 형상을 따라갔는데요. 스티어링 휠의 형태나 특유의 타원형 센터페시아도 현실적으로 반영됐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해 국산차 최초로 음향 연동 라이팅 스피커와 라이팅 시트 등 개성있는 사양들을 탑재했습니다.


또 콘셉트 모델에 적용됐던 디자인 휠과 데칼 등, 외장 디자인 옵션을 팩토리 튜닝 파츠로 제공했는데, 이 또한 국산차에서는 처음 이뤄지는 시도였습니다. 이처럼 쏘울에는 이전 기아에 없던 아이디어가 잔뜩 실렸습니다. 탁월하고 매력적인 디자인 덕에 한국차 최초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죠.

쏘울의 대박에 기여한 햄스터 광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이었습니다.

출시 이듬해인 2009년에는 북미와 유럽 시장에도 수출이 시작되는데요. 이때 북미에서 쏘울을 엄청난 히트작으로 만들어 준 '역대급' 광고가 방송을 탑니다.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자동차 광고 중 하나로 손꼽히는 햄스터 광고입니다.

첫 광고 이후, 햄스터들은 10년여 간 쏘울의 광고 모델로 활약합니다.

온 도시의 자동차들을 지루한 쳇바퀴로 표현하고, 햄스터가 운전하는 새빨간 쏘울이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1분 남짓의 이 광고는 재치있는 표현과 귀여운 영상 덕에 엄청나게 히트했고, 쏘울이 북미 출시 두 달 만에 동급 크로스오버 시장 1위에 오르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 광고는 그 해 네일슨 자동차 광고 대상을 받았고, 이후 햄스터는 2019년까지 약 10년여 쏘울의 광고 모델(?)로 활약했습니다.


일본차를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하다
1세대 쏘울은 한국에서도 잘 팔렸지만, 특히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쏘울은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잘 팔렸지만, 특히 미국 시장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시작된 크로스오버 인기에 부합할 뿐 아니라 가격도 아주 착했기 때문인데요. 특히 갓 면허를 딴 고등학생(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운전면허를 빨리 취득합니다)과 대학생의 첫 차로 각광받았습니다.


특히 쏘울은 당시 엔트리 카 시장을 꽉 잡고 있던 일본산 박스카들을 압도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상술한 것처럼 출시 2개월 만에 닛산 큐브, 사이언 xB의 판매량을 넘어섰고, 이후에는 줄곧 동급 1위에 올랐습니다.

당시 쏘울의 경쟁 모델이었던 닛산 큐브(위), 사이언 xB. 둘 다 쏘울의 인기에 밀려 사라졌습니다.

출시 2년차인 2010년부터는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고, 2011년 3월에는 처음으로 월 판매량이 1만 대를 넘어서며 경쟁 모델과 10배 이상 차이를 벌립니다. 비교적 니치 마켓을 노렸던 모델이라 국내에는 이런 활약상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미 시장에서 한국차가 동급 1위를 기록하며 일본차를 고전시킨 건 쏘울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러한 쏘울의 인기는 계속 이어져 미국 연간 판매량은 2011년 10만 2,267대, 2012년 12만 6,654대, 2013년 11만 8,079대를 기록합니다. 쏘울의 인기는 2014년 2세대 모델 출시 뒤에도 이어졌고, 이처럼 독보적인 판매량에 결국 경쟁 모델이었던 닛산 큐브와 사이언 xB는 각각 2014년, 2016년에 북미 시장에서 판매를 종료합니다.

2011년 출시된 부분변경 모델. 부분변경 이후 미국 내 판매량이 빠르게 늘었습니다.

쏘울의 성공 이후 2010년대 들어서는 쉐보레 트랙스, 닛산 쥬크 등 보다 SUV 스타일을 강조하는 크로스오버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러한 트렌드의 변화를 쏘울이 이끌어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낮은 지상고에 독특한 스타일만 더했던 기존의 박스카나 해치백과 달리, 지상고를 높이고 실용성까지 더한 크로스오버 장르를 개척하는 데에 쏘울이 적잖이 기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피터 슈라이어 영입과 더불어 기아가 젊고 스포티한 디자인을 내세우기 시작하면서, 쏘울은 확 달라진 기아의 디자인 경영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활용됐습니다. 본국인 우리나라는 물론, 최대 시장인 북미의 소비자들도 기아를 더 이상 밋밋한 브랜드가 아닌, 젊은이들도 호감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브랜드로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죠. 이 또한 당시에는 우연에 불과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쏘울의 성공과 기아의 이미지 변신이 동시에 이뤄진 '환상의 타이밍'이라 평할 수 있겠습니다.

가장 최신 버전인 3세대는 국내에서 단종됐고, 미국에서도 예전보다 인기가 식었습니다.

쏘울은 2013년 2세대 모델(코드명 PS)에게 바통을 넘겨줬고, 현재는 3세대(코드명 SK3)에 이릅니다. 그 사이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소형 SUV가 쏟아지면서 원조 격인 쏘울의 인기는 식어버렸고, 결국 올해 초 단종 수순을 밟았습니다. 미국 시장에서는 여전히 월 7,000대 안팎이 팔리는 수출 효자 모델이지만, 전성기에 비하면 판매량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 버렸죠.

쏘울이 계속 과감한 스타일을 이어 갔다면,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모델이 되지 않았을까요?

아쉬운 점은 쏘울이 기아 브랜드를 통틀어 가장 개성 넘치고 아이코닉한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소형 SUV로의 트렌드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도태됐다는 점입니다. 쏘울의 최초 콘셉트를 상기시키며 보다 파격적이고 'SUV다운' 스타일을 이어 왔다면, 지금까지도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형 SUV 중 하나로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비록 이제는 대세의 변화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선 모델이 됐지만, 기아의 디자인 혁신을 알렸던 쏘울이 지니는 의미는 남다릅니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기아가 이 사랑스러운 크로스오버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헤리티지란 그렇게 탄생하는 법이니까요.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

www.pcarm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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