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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카미디어 PCARMEDIA Mar 02. 2022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 세계 최초의 럭셔리 SUV

수요 명차 극장

세계적으로 SUV의 인기는 이제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이 됐습니다. 지난해 전 세계 신차 판매량은 약 6,670만 대 수준으로 추산되는데, 그 중 SUV의 점유율이 45.9%에 달했으니 이제는 신차 두 대 중 한 대는 SUV인 셈입니다.


과거의 SUV가 주로 준중형~준대형 급의 중산층 패밀리 카와 레저용 차량 취급을 받았다면, 이제는 젊은 운전자를 위한 퍼스널 커뮤터부터 럭셔리 쇼퍼드리븐까지 SUV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럭셔리 SUV 시장의 경우 롤스로이스, 벤틀리 같은 럭셔리 브랜드부터 페라리, 람보르기니 같은 이그조틱카 브랜드까지 뛰어들어 각축전을 벌이는 양상인데요.


이런 럭셔리 SUV 시장을 처음으로 발굴하고 개척한 차가 바로 '사막의 롤스로이스'(이제는 롤스로이스 컬리넌이 있어 다소 민망하지만)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랜드로버 레인지로버입니다. 실용적인 산업용 차량 취급을 받던 SUV와 영국 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결합시킨 레인지로버는 자타공인 세계 최초의 럭셔리 SUV로서 50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농업용 짐차로 SUV 만들기
원래 랜드로버는 농촌과 산업 현장을 위한 4륜구동 차량 제조사였습니다.

요즘 랜드로버는 오롯한 럭셔리 SUV 전문 브랜드가 돼 버렸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랜드로버의 시작은 잘 알려진 것처럼 로버(Rover) 사의 농업용 4륜구동 다목적 차량이었습니다. 단순한 구조와 험지 주파력, 녹슬지 않는 알루미늄 바디를 내세운 랜드로버 '시리즈 I'은 영국의 농촌과 산업 현장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죠.


랜드로버가 크게 성공하면서, 1950년대 로버의 엔지니어로 있었던 고든 배쉬포드(Gordon Bashford)는 시리즈 I의 프레임에 로버의 P4 세단 차체를 얹은 도심형 SUV(?), 로드로버(Road Rover)를 구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SUV의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던 1950년대에 이 아이디어는 시기상조였고, 두어 대의 프로토타입만 만든 뒤 질질 끌던 프로젝트는 폐기됩니다.

카이저 지프 왜고니어. 레인지로버의 초기 콘셉트에 영향을 준 미국산 SUV입니다.

"승용차와 4륜구동차를 결합한다"는 개념이 다시 빛을 본 건 1966년의 일입니다. 이때까지도 상용차에 가까운 시리즈 랜드로버(디펜더의 전신)만 줄창 만들던 로버는 태동하기 시작한 SUV에 주목합니다. 인터내셔널 하베스터 스카우트, 카이저 지프 왜고니어, 포드 브롱코 등, 픽업트럭의 4륜구동 프레임에 왜건의 차체를 얹은 SUV가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죠.


이에 로드로버를 구상했던 배쉬포드와 찰스 스펜서 킹(Charles Spencer King) 등 두 명의 엔지니어는 시리즈 랜드로버의 프레임에 왜건형 차체를 얹어 도심과 근교에서 전천후로 사용할 수 있는 4륜구동 승용차 개발에 돌입합니다.

프로토타입 '벨라'. 후일 출시된 양산형 레인지로버와 대동소이합니다.

1967년 최초의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고, 1969년 디자인이 확정된 뒤에는 40대의 시제차가 제작돼 도로 주행 테스트에 나섭니다. 로버는 이 혁신적인 차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이탈리아어로 '베일'을 뜻하는 'velare'에서 딴 '벨라(Velar)'라는 코드명을 부여했습니다. 심지어 경쟁사들이 로버의 신모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도록 런던에 '벨라 컴퍼니'를 설립하고 이 회사의 차량으로 등록할 만큼 보안에 신경썼는데요. 오늘날 레인지로버 패밀리의 중형 포지션을 담당하는 레인지로버 벨라의 이름이 여기서 유래한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농업용 짐차 프레임에 왜건 차체를 얹었다고 이야기했지만, 벨라가 그렇게 엉성한 차는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 제일 잘 나가던 포드 브롱코를 직접 수입해 성공 요인을 면밀히 분석했고, 대형 SUV인 지프 왜고니어의 공간 구성이나 설계 또한 검토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특히 기존 유틸리티 차량의 치명적 단점인 승차감을 개선하고 편의성과 주행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습니다.

모든 길에서, 모든 용도로 달릴 수 있는 차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1970년, 벨라는 마침내 '베일'을 벗습니다. 신차에 붙은 이름은 '레인지로버(Range Rover)', 포장도로(Road)는 물론 험지(Land)까지, 모든 범위(Range)의 길을 달릴 수 있는 전천후 차량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레인지로버가 SUV의 전설이 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사막의 롤스로이스'는 아니었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사실 레인지로버가 처음부터 럭셔리 카는 아니었습니다.

랜드로버의 험지주파력과 고급 승용차의 안락함을 결합한다는 목표로 개발된 차였지만, 사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레인지로버가 처음부터 상류층만을 노리고 개발된 건 아니었습니다. 출시 초기의 슬로건이 "모든 용도의 차(A car for All Reasons)"였을 만큼, 적당한 실용성과 험지주파력, 안락함을 고루 갖춘 고급차 정도의 포지션이었죠. 출시 당시 가격이 1,998파운드(현재 물가로 환산 시 한화 약 5,300만 원)에 모든 트림에서 PVC 비닐 시트가 적용된 것만 보더라도, 지금 레인지로버의 위상과는 거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레인지로버는 우수한 험지 주파력과 승차감의 양립을 목표로 했습니다.

물론 공들여 만든 차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실용성과 안락함을 동시에 잡기 위해 당시로선 매우 진보적인 설계가 적용됐습니다. 우선 판 스프링이 달린 시리즈 모델과 달리 네 바퀴에 코일 스프링 서스펜션이 장착됐습니다. 하중을 버티는 데에는 판 스프링이 더 유리하지만, 레인지로버는 일반도로에서도 쾌적한 승차감을 지녀야 했으니까요.


이때까지 대다수 SUV들이 트럭이나 유틸리티 차량의 파트타임 4륜구동 시스템을 그대로 썼지만, 레인지로버는 어떤 상황에서나 편안하게 전천후 주행 성능을 선보여야 했기에 상시 4륜구동 시스템으로 대체했습니다. 구동 모드를 수동으로 바꾸는 번거로움은 덜고, 고속에서도 부드러운 핸들링을 선사하면서도 강력한 험지 주파력을 갖췄죠.

뷰익 V8 엔진을 개수한 로버 V8 엔진. 이 엔진은 개선을 거듭해 90년대까지 쓰입니다.

4~6기통 엔진만 탑재된 시리즈 모델은 빨리 달릴 일이 없으니 괜찮았지만, 레인지로버는 승용차에 버금가는 주행 성능이 요구됐습니다. 이를 위해 미국에서 뷰익 제 알루미늄 블록 3.5L V8 엔진을 공수해 옵니다. 135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하는 이 엔진 덕에 레인지로버의 최고속도는 160km/h에 달했고, 당대 고급 세단들과 비슷한 가속력을 지녔습니다. 오프로드 상황에서도 연료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전용 카뷰레터와 유사 시 스타터 핸들로 시동을 걸 수 있는 크랭킹 장치도 탑재됐죠.


이 밖에도 3.5톤의 최대 견인 하중, 4륜 유압식 디스크 브레이크 등 선진적인 성능과 사양을 갖췄고, 그럼에도 성인 5명이 넉넉히 탈 수 있는 공간까지 갖춰 주행 성능과 실용성 모두 탁월했습니다.

초기 레인지로버의 주 고객은 모험가였습니다.

이 신개념 유틸리티 차량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건 모험가들이었습니다. 시리즈 모델처럼 극한의 오프로드 성능을 갖추진 않았지만, 제법 험난한 길을 오랫동안 주파해야 하는 모험 여정에서 레인지로버 만한 차가 없었죠. 짐을 가득 싣거나 동료들과 함께 타기도 불편함이 없었고, PVC와 플라스틱으로 구성된 실내에는 진흙과 먼지가 들이쳐도 손쉽게 물로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1971년 아메리카 대륙을 북에서 남으로 종단한 '트랜스 아메리칸 익스페디션(Trans-American Expedition)' 팀이 레인지로버를 사용한 것입니다. 거의 순정 상태에서 약간의 오프로드 세팅을 마친 이들의 레인지로버는 최초로 북남미를 종단한 자동차이자, 중앙아메리카의 지구상에서 가장 험난한 오지, 다리엔 갭(Darién Gap)을 통과한 최초의 자동차로 기록됩니다.

신개념 오프로더가 입소문을 타면서 영국의 상류층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습니다.

이처럼 초창기 레인지로버의 고객층은 주로 험지를 달릴 일이 많은 탐험가나 구 영국령 식민지 지역의 사업가들, 건설업자, 군인 위주였습니다. 그런데 레인지로버의 탁월한 실용성과 안락함, 주행 성능이 입소문을 타면서 새로운 고객이 등장하는데요. 바로 귀족들을 위시한 영국의 상류층이었습니다.


귀족이 선택한 럭셔리 SUV의 선구자
평소엔 도시에 머물다가 근교에서 여가를 보내는 상류층에게 레인지로버는 최고의 차였습니다.

어느 나라건 상류층과 서민의 삶의 형태가 같겠냐마는, 영국은 특히나 현대까지도 신분제 관습이 뿌리깊게 남아 있는 나라입니다. 특히나 귀족 작위를 지닌 상류층(upper class)은 엄청난 재력과 부동산을 바탕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데요.


이들의 생활로 말하자면, 평소에는 대도시의 타운하우스에서 생활하다가 근교 지역의 컨트리하우스에 머물며 여가를 보냅니다. 컨트리하우스는 엄청나게 넓은 가문 영지 안에 위치하고 있어 주로 승마나 피크닉, 사냥을 즐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컨트리하우스 인근에 비행장이나 자동차 경주장을 갖추고 있기도 하죠(굿우드가 그런 예입니다).

레인지로버는 일상주행도, 피크닉도, 사냥도 할 수 있는 유일한 차였습니다.

이 상류층들이 도시에서 타던 스포츠카나 그랜드 투어러를 몰고 사냥을 가기 위해 만들어진 차가 바로 왜건형 트렁크를 지닌 슈팅 브레이크인데요. 자연과 가까운 컨트리하우스 주변 영지가 잘 포장돼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에 지상고가 낮은 후륜구동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기에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상류층이 "모양 빠지게" 농부들이 타고 다니는 유틸리티 차량이나 트럭을 몰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그런 이들에게 레인지로버는 완벽한 타협안이 돼줬습니다. 높은 지상고와 상시 4륜구동 시스템 덕에 험한 길도 문제 없고, 온 가족이 타고 피크닉을 가거나 사냥에 나서기에도 손색이 없으며, 평소에 타운하우스를 오가기에 승차감이나 주행 성능도 부족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비록 비닐 시트나 플라스틱 대시보드가 싸구려 같았지만, 그 정도는 조금만 돈을 들이면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주문제작한 슈팅 브레이크보다 훨씬 쌌으니까요.

후기형 모델의 인테리어. 전기형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고급화 됩니다.

레인지로버는 입소문을 타고 상류층의 레저용 차량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합니다. VIP 고객들의 요구에 따라 사양도 점차 고급화돼 파워 스티어링, 카펫 플로어, 에어컨, 직물 및 가죽 시트, 우드 트림 같은 고급 편의사양이 하나씩 탑재됩니다.

1981년에는 5-도어 모델이 추가됐고, 이후 5-도어가 표준이 됩니다.

1981년에는 뒷좌석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5-도어 모델이 추가됐고, 3년 뒤인 1984년에는 3-도어가 단종되면서 이후에는 계속해서 5-도어로만 생산됩니다. 1984년식부터 연료 분사 시스템이 탑재돼 최고출력은 155마력으로 향상됐고, 1990년에는 배기량을 3.9L로 늘려 최고출력이 182마력으로 높아집니다. 최후기형에서는 배기량이 4.2L까지 커지고 200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했죠. 1988년에는 VM 모토리 사의 2.4L 터보 디젤 엔진을 탑재했고, 이 또한 개선을 거듭하며 단종 시까지 디젤 라인업의 명맥을 잇습니다.

1992년 출시된 롱휠베이스 버전. 레인지로버는 상류층의 레저용 고급 SUV가 됩니다.

편의성도 꾸준히 향상돼 1992년에는 승차감과 롤링 개선을 위해 상위 트림에 에어 서스펜션이 브랜드 최초로 탑재됐고, 같은 해부터 롱휠베이스 버전인 보그(Vogue) LSE 트림이 추가됩니다. 왜건형 유틸리티 차량이었던 초기 모델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진짜 고급차가 된 것이죠.


출시 초기부터 미국 수출이 계획돼 있었지만, 실제 수출은 이런저런 이유로 연기되다 1987년에야 이뤄집니다. 이미 바다 건너 영국에서 고급 SUV로 소문이 난 만큼, 미국에서도 고소득 전문직과 부자들을 위한 럭셔리 SUV로 인기몰이에 성공합니다.

1세대 레인지로버는 장장 26년 간 독보적인 럭셔리 SUV로 군림합니다.

1세대 레인지로버는 1970년부터 1996년까지 32만 6,070대가 생산되며 독보적인 럭셔리 SUV로 군림했습니다. 영국 귀족이 선택한 SUV, 사막의 롤스로이스,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오프로더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었고, 후속 모델인 2세대 레인지로버(코드명 P38A)가 1994년 출시됐음에도 '레인지로버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2년 더 생산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처음부터 고급차는 아니었지만, 레인지로버는 오늘날 랜드로버의 럭셔리 이미지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애초부터 철저히 고급차로 만들어진 건 아니었지만, 레인지로버는 오늘날 랜드로버 브랜드의 럭셔리 오프로더 이미지를 정립한 장본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시리즈 모델의 후신인 디펜더는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와 버금가는 고급 오프로더가 됐고, 레인지로버보다 저렴한 오프로드형 SUV를 표방했던 디스커버리 또한 오늘날에는 프리미엄 SUV가 됐죠. 럭셔리와 오프로드,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요소를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기념비적인 차가 바로 레인지로버입니다.

레인지로버와 비슷한 차는 많지만, 반세기 역사의 원조 럭셔리 SUV는 레인지로버 뿐입니다.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최근에는 이 럭셔리 SUV 시장의 경쟁도 치열해졌습니다. 여러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앞다퉈 신모델을 출시하면서 레인지로버도 더 이상 예전처럼 '원 앤 온리'로 군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죠.

하지만 그럼에도 얼마 전 공개된 신형 레인지로버가 이미 상당한 사전계약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반세기 동안 쌓아 온 개척자의 헤리티지 덕분입니다. 레인지로버와 비슷한 차는 많지만, 세계 최초의 럭셔리 SUV로써 오랫동안 사랑받은 차는 레인지로버 뿐이니까요.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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