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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카미디어 PCARMEDIA Feb 23. 2022

피아트 124 : 원판보다 유명한 '인민의 국민차'

수요 명차 극장

흔히 한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차를 '국민차'라고 합니다. 자동차 역사에도 많은 국민차가 있었죠. 당장 회사 이름부터 '국민차'인 폭스바겐의 타입 1 비틀, 미국에서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끈 포드 모델 T, 각각 이탈리아와 프랑스 대중차의 아이콘이 된 피아트 500과 시트로엥 2CV도 흔히 생각하는 '국민차'의 이미지에 부합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만만한 차'가 국민차가 될 것 같지만, 어떤 차가 세대를 초월해 오랫동안 사랑받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 무난한 성능, 우수한 기계적 신뢰성과 합리적인 가격 등 여러 요소가 조화를 이뤄야만 가능한 일인데요.

이 심플하기 그지없는 세단은 어쩌다가 다른 나라에서 국민차가 됐을까요?

오늘 소개할 차, 피아트 124 역시 그런 국민차 중 하나입니다. 본가인 이탈리아에서도 제법 사랑을 받았지만 그보다는 구 소련과 동유럽 국가에서 수십 년 간 인기를 끈 것으로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와도 작게나마 인연이 있었고요. 어쩌다가 피아트의 소형 세단은 '인민의 국민차'가 됐을까요?


웰메이드 후륜구동 소형차, 피아트 124
124의 단면도. 단순한 구조지만 매우 선진적인 설계가 도입됐습니다.

피아트 하면 500으로 대표되는 소형 해치백 정도만 떠오르지만, 사실 피아트는 굉장히 저력있는 회사입니다. 1899년 설립 이래로 작고 실용적인 대중차를 꾸준히 개발해 왔고, '문 달린 오토바이'에 가까웠던 500 외에도 다양한 승용차 라인업을 거느리고 있었는데요.


124는 당시 피아트 라인업에서 정중앙에 위치한, 이를테면 중형차에 해당하는 모델이었습니다. 피아트 1300의 후속으로 만들어 졌고, 1960년대 기준으로는 상당히 선진적인 설계가 여럿 적용됐습니다. 가볍고 탄탄한 모노코크 바디의 길이는 4m에 불과했지만 성인 5명이 탈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마련됐죠. 또 뒷바퀴에 리프 스프링 대신 코일 스프링을 적용해 승차감도 탁월했습니다.

124는 심플하면서도 준수한 성능과 탁월한 내구성을 두루 갖췄습니다.

페라리 출신의 엔지니어 아우렐리오 람프레디(Aurelio Lampredi)가 설계한 1.2L 직렬4기통 OHV 엔진은 60마력의 (당시로선) 준수한 성능을 냈고, 여기에 변속이 편리한 싱크로메쉬 타입 수동변속기가 기본 사양으로 탑재됐습니다. 또 네 바퀴 모두 디스크 브레이크가 기본 사양으로 탑재돼 제동 성능까지 우수했죠. 즉 소형 세단임에도 당시의 첨단 승용차 기술이 아낌없이 투입된 것입니다.

유행을 타지 않는 124의 디자인은 놀랍게도 유명 디자이너가 아닌, 엔지니어의 작품입니다.

외관 디자인은 상당히 심플하고 유행을 타지 않는, 그야말로 세단의 정석과도 같은 모습이었는데요. 전문 디자이너가 아닌 124 프로젝트의 총괄 엔지니어였던 오스카 몬타보네(Oscar Montabone)가 직접 디자인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개발된 피아트 124는 1966년 데뷔합니다. 출시 당시 수송기로 124를 공수 투하하는 홍보 영상도 제법 화제가 됐는데요. 124는 출시와 동시에 큰 인기를 끌며 이듬해에는 유럽 올해의 차로 선정되기도 합니다.

124의 파생 모델인 124 스포츠 스파이더(오른쪽)은 현행 124 스파이더(왼쪽)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후륜구동 차체 설계를 바탕으로 파생 모델도 여럿 만들어졌는데요. 1966년 말에는 왜건 버전인 124 파밀리아레(124 Familiare)와 4인승 컨버터블인 124 스포츠 스파이더(124 Sport Spider)가 출시됐고, 1967년에는 세련된 스타일의 124 스포츠 쿠페(124 Sport Coupe)도 만들어졌습니다. 또 1968년에는 4등식 헤드램프와 고성능 엔진, 각종 고급 사양을 추가한 고급화 버전 124 스페셜(124 Special)도 출시됩니다. 124 세단을 바탕으로 피아트의 중형차 풀 라인업이 완성된 것이죠.


원판인 피아트 124는 1970년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꾸준히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1974년, 124는 출시 8년 만에 후속 모델인 131에게 바통을 넘기고 은퇴합니다. 그렇게 124의 이야기는 끝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철의 장막을 넘어 '인민의 발'이 되다
이탈리아의 특수한 지위 덕에 124는 사회주의 진영에서도 생산되게 됩니다.

냉전 시대, 이탈리아는 서방 세계는 물론 사회주의 진영이나 제3 세계 국가들과도 비교적 자유롭게 교역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피아트 역시 여러 나라로 차량을 직접 수출하거나 라이선스 생산 계약을 맺을 수 있었는데요. 그래서 124는 자동차 생산 능력이 떨어지는 여러 개발도상국은 물론 심지어는 적성국 소련에서도 생산되게 됩니다.

알렉세이 코시긴은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GM이나 포드의 수장이 됐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당시 소련의 수상이었던 알렉세이 코시긴(Alexei Kosygin)은 자동차 산업에 관심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 상 우수한 품질과 성능의 자동차가 계속 개발되고 생산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죠. 때문에 소련의 승용차 품질은 서방 세계와 비교해 매우 낙후돼 있었습니다.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 내부에서도 승용차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었기 때문에, 코시긴을 이를 충족할 대중차 회사를 세우기로 합니다. 폭스바겐 비틀, 시트로엥 2CV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코시긴은 갓 출시된 124의 우수한 성능을 체험한 뒤 124를 소련의 국민차로 만들기로 합니다.

소련 정부와 피아트의 합작 회사인 VAZ의 공장이 볼가 강변에 세워집니다.

소련 당국은 코시긴의 지시 하에 피아트와 합작을 통해 1966년 볼가 강 인근에 자동차 공장을 짓기 시작합합니다. '볼가 자동차 생산공장(Во́лжский автомоби́льный заво́д)'의 머릿글자를 따 VAZ라 불리는 소련 승용차 회사의 탄생입니다.


소련은 철저히 계획 경제 체제로 굴러갔지만, 피아트와의 합작 회사였던 VAZ만큼은 예외였습니다. 생산 초기에는 적잖은 부품을 피아트에서 수입해 오기도 했죠. 하지만 공장 체계가 잡히면서, VAZ의 공장은 차량에 필요한 철판, 타이어, 유리까지 모두 직접 생산하는 연산 30만 대 규모의 거대한 자립 공장이 됩니다.

VAZ-2101의 모습. 한 눈에 124와의 차이점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VAZ에서 생산한 124는 VAZ-2101이라는 투박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피아트 124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지만 러시아의 비포장도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상고를 약간 높이고, 혹한 속에서도 시동이 잘 걸리는 자체 제작 엔진이 탑재됐습니다. 또 약간의 원가절감도 더해졌죠.

2101 1호차가 레닌의 생일날 출고되고, 이후 VAZ는 2101을 그냥 많이 만들었습니다.

1970년 4월 22일, 레닌 탄생 100주기에 맞춰 최초의 VAZ-2101이 공장을 나섰고, 이후 순식간에 사회주의 진영 인민들의 국민차로 등극했습니다. 첫 해 생산량은 2만 2,000대에 그쳤지만, 생산이 안정화되면서 1973년에는 연간 66만 대의 VAZ-2101이 생산됐고, 같은 해 누적 생산량이 100만 대를 넘어섰습니다. 차를 만들기 시작해서, 그냥 많이 만든 것이죠.

VAZ 공장에 세워진 2101들. 하나의 공장에서 연간 75만 대 넘는 단일 모델이 생산됐습니다.

VAZ 공장은 생산 라인 증설과 공정 효율화를 거쳐 1975년 연산 75만 대 규모로 커 졌고, 소련은 물론 많은 주변 국가들에 판매됐습니다. 심지어 서방 세계에 수출까지 했는데요. 원판인 피아트 124에 비해 조립 품질이 떨어졌지만 압도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무기였습니다. 소련 못지않게 추운 캐나다에서 쏠쏠하게 팔렸고, 피아트 124가 단종된 뒤에는 서유럽 국가에서도 판매가 이뤄졌죠. 수출을 위해 VAZ가 만든 브랜드 명이 라다(Lada), 차명은 볼가 강 인근의 산맥에서 따 온 쥐굴리(Zhiguli)입니다.

124 계열 모델의 마지막 버전인 VAZ-2107. 이 개선형 모델들은 2012년에야 단종됩니다.

VAZ-2101은 이후에도 지속적인 개량을 거쳐 계속 생산됩니다. 1972년에는 124 스페셜을 기반으로 한 VAZ-2103(수출명 라다 1500)이, 1976년에는 2103의 고급형인 VAZ-2106이 출시됐고, 1980년에는 차체를 키우고 현대적인 디자인을 적용한 VAZ-2105(수출명 라다 리바/칼린카), 1982년에는 2105의 고급형인 VAZ-2107이 출시됩니다. 파생형도 무수히 많아서 왜건, 화물밴 등도 만들어졌죠. 오늘날에는 이런 파생 모델들을 모두 통틀어 '라다 클래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소련과 사회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차가 된 라다 클래식은 냉전 종식과 소련 붕괴를 모두 겪고, 무려 42년 뒤인 2012년에야 모든 파생 모델의 생산이 종료됩니다. 단종 시까지 생산된 대수는 자그마치 2,000만 대 이상으로, 원본인 피아트 124를 아득히 뛰어넘어 인류 역사 상 다섯 번 째로 많이 팔린 단일 차종으로 기록됩니다.


어쩌면 한국 자동차 역사를 바꿨을 차
124는 소련 외에도 여러 나라에서 생산됐습니다. 사진은 세아트 124 후기형.

이렇게 피아트 124 하면 1960~70년대 피아트의 명차, 동구권을 상징하는 인민의 국민차 이미지가 강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124는 굉장히 많은 나라에서 라이선스 생산됐습니다. 대다수는 자동차 개발·생산 능력이 뒤처지는 나라들이었는데요.


지금은 폭스바겐 그룹의 일원이 된 스페인의 세아트(Seat)에서 1968년부터 1975년까지 124를 라이선스 생산한 게 대표적입니다. 또 인도의 프리미어(Premier), 터키의 토파스(Tofaş)에서도 124의 라이선스 버전이 생산됐고, 심지어 VAZ로부터 다시 라이선스를 얻어 이집트에서 생산된 모델도 있었죠.

124는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도 생산된 적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한국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기아차의 일부가 된 아시아 자동차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피아트 124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태동기에도 그 이름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1964년, 호남 연고 기업인 문인환은 피아트, 프랑스의 생카(Simca) 등과 차관 협정을 맺고 아시아 자동차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광주에 자동차 공장을 설립해 1970년 피아트 124를 라이선스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아시아 피아트 124는 현대 코티나, 신진 코로나 등과 더불어 1970년대 태동기였던 우리나라 중형차 시장을 연 모델로 기록돼 있는데요.

당시 아시아 피아트 124의 광고. 124는 한국 시장에서도 제법 호평 받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조기 단종됩니다.

124는 깔끔한 디자인과 뛰어난 품질, 경제성 등을 앞세워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피아트와 라이선스 계약 문제로 마찰을 빚었고, 이로 인해 시장에서의 높은 인기에도 고작 3년 만에 단종 수순을 밟습니다. 3년여 간 아시아 자동차에서 생산한 124는 약 6,800여 대. 현재까지 남아있는 차는 2대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아시아 자동차는 1975년 기아산업에 인수됐고, 1999년에는 아예 법인이 해산돼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집니다. 굳이 따지자면 아시아 자동차를 인수할 당시 기아자동차에는 중형 세단 라인업이 없었으니, 124가 현 K5의 먼 조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만약 아시아와 피아트의 계약이 잘 유지돼 124가 우리나라에서 승승장구했다면,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퀴즈를 내 보겠습니다. 이 사진은 과연 124의 어떤 버전일까요? :)

어쨌거나 한 나라에서 탄생한 작은 세단이 사회주의 진영의 국민차가 되고, 심지어 지구 반대편의 작은 나라와도 연이 닿은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서로 철저히 분리돼 있는 것 처럼 보이는 각국의 자동차 산업도 역사를 뜯어보면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인데요.


물론 그 만한 매력이 있었기에 세계 절반의 국민차가 될 수 있었던 것이겠죠? 흔히 '명차'라고 하면 엄청난 성능과 디자인을 지닌 스포츠카나 최고급 럭셔리 카를 떠올리지만, 이렇게 시공을 초월해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차야말로 진짜 명차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명차 극장은 여기까지입니다.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

www.pcarm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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