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쉬우면 나중에 어렵다
처음에 쉬우면 나중에 어렵다.
-오이겐 헤리겔, <마음을 쏘다, 활>-
오늘의 글은 문장 자체보다 이를 받아들이는 자세에 관한 글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세상에 공짜는 없고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게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행복한 순간에도 이게 언젠가는 끝나겠지라는 생각에 아쉬움과 씁쓸함이 함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나의 사고방식은 사실 조금 편향적이기도 했는데 힘든 순간에는 반대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이 쉽게 먹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힘들 땐 이 힘듦이 영원할 것만 같았고, 견디면 좋은 일이 올 것이라는 생각에 지나치게 순진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저자는 활쏘기 스승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지금 이렇게 힘든 대신 나중에는 더욱 순탄해질 것을 믿는다. 지금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음을 믿는 이런 태도가 나에게는 새삼 신선하게 다가왔다. 고통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많은 이들이 차라리 힘든 부분을 먼저 끝내고 나중에 편해지는 것을 바랄 것이다. 나에게 있어 문제는 인생이 공평하다는 확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이, 전쟁과 기아에 시달리는 국민들,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예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빌 게이츠(Bill Gates)는 인생의 불공평함에 익숙해지라 - Life is unfair, get used to it - 고까지 했다. 표면적으로는 충분히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지나치게 가혹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인생이 고통으로만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지나친 일반화이자 비약이다. 인생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이고 똑같은 경험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히고 느껴진다. 정작 내 인생에 대한 평가도 어제와 내일이 다르지 않던가.
어찌 보면 단순한 문장도 그 해석에 가치관과 성향이 투영된다.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고통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 역시 합리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가 되어 보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부정적인 사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해 왔다. 암울한 비관주의에 빠지지 않는 것 또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꼭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하다. 신고은 작가는 <하루 심리 공부>에서 과장의 인지적 오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글이 완벽하지 않아도 좋은 구절이 이따금 등장하는 책은 좋은 책으로 인정받는다. 모든 장면이 아름답지 않아도 명장면이 강렬한 영화는 좋은 영화로 기억에 남는다. 발표도 마찬가지다. 몇 번의 발음 실수, 손 떨림이 있을지라도 전반적인 메세지가 좋았다면 잘했다 칭찬받는다. 그러면 칭찬 그 자체가 사람들이 내린 결론이다…잘하지도 못하면서 거들먹거리는 것도 보기 싫지만, 사소한 문제는 확대해석하고 잘한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자존감을 갉아먹는 벌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못한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여길 줄도 알아야 한다.
처음에 쉬우면 나중에 어렵다는 것은 처음에 어려우면 나중엔 쉽다는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