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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서운해!

서운함을 푸는 기술

by 푸르름


감히 비할 것은 아니지만 레체를 키우면서 육아의 어려움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많이 부족했겠지만 레체의 어린 시절에 생겼을지도 모를 트라우마를 없애주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될 능력이나 자격은 없기에 나이 많은 누나 행세를 하기는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엄마에게 못 받은 사랑을 대신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c) Leche @holaleche


그렇게 가슴으로 키운 레체에게도 서운한 마음이 들 때가 가끔 있는데 주로 아플 때이다(레체도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렸을 때 눈병이 나서 하루 두 번 안약을 넣어줘야 하는데 으르렁 거리며 저항했을 때, 얼마 전에 약욕을 해주고 하도 핥아서 못하게 하니 이를 드러냈을 때,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 올라왔다. 너를 해치려는 게 아니라 ’다 너를 위해서 ‘라는 것을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지 (이런 것도 가스라이팅인가?) 답답해서이다.

하지 말라고 (c) Leche @holaleche


살다 보면 인간 사이에도 조금씩 서운한 마음이 생긴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오해하고 섭섭한 마음이 든다. 최근 화제가 된 나는 솔로 16기에서도 회자된 것처럼 이럴 때는 말을 전하지 말고 각각의 관계에서 생각해야 한다. 중간에서 어설프게 도와주려 하기보다는 그냥 각자 직접 오해를 풀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서운함이 이해는 가지만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그냥 잊어버릴 수 있도록 다른 창구를 이용해 스트레스를 분출하는 것이 좋지만, 계속 생각이 나고 개선의 여지가 있는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가능한 한 빨리 풀어버리는 게 좋은 것 같다. 한동안 ‘나는’ 화법을 통해 ‘나는 이렇게 느꼈어.’라고 상대방의 마음을 넘겨짚지 않고 나의 감정을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이 유행했는데 이의 맹점은 자칫 ‘나’만 앞세우는 이기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건 어디까지나 ’ 내‘가 느낀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되 ’ 너‘의 이야기도 듣고 싶고 ’나‘만이 옳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레체에게도 (약 바르기, 자해 방지하기, 위험한 것 못 먹게 하기 등으로) 강압적인 말투 및 행동을 취해야 할 때가 있다. 그래 놓고 레체가 서운하지 않을까 설명하고 사과하고 싶은데 레체는 이미 잊어버리고 ‘헤’ 웃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 네가 진정한 위너!

이미 다 잊었다네 (c) Leche @holale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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