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이 글은 절대 클릭하지 마라

가그린으로 헹궈낸 아주 작은 일탈

by 엄마의 왈츠



아이의 여정을 지켜보며, 나는 나의 여정을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설소대 수술, 조음장애, 아빠의 부재, 느린 발달...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우리 아이는 홈스쿨이라는 낯선 길 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아이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매일을 고민하고, 기도하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한 엄마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엄마라서'가 아니라, '나도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존경합니다. 함께 힘내요!




이 글은 나중에 내 아이가 볼까 봐 몰래 쓰는 비밀 일기 같은 거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담배 냄새를 지옥의 유황불만큼이나 끔찍해하는 내가, 내 인생에 딱 한 번 담배를 피워 본 그날에 대한 이야기거든. 이건 나의 가장 어설펐던 반항에 대한 고백이다.



이혼 후 10년, 느린 걸음으로 세상을 배우던 아이는 어느덧 나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아이의 인생 악장은 화사한 왈츠로 넘어가고 있었지만, 정작 지휘자인 나는 번아웃이라는 불협화음 속에서 허우적댔다. 1인 오케스트라로 홈스쿨링과 생활 전선을 이끌어온 당연한 결과였을까. 내게는 자유가, 아주 절박한 숨구멍이 필요했다.



그 마음을 들킨 건, 재즈라는 유일한 공통점으로 이어진 한 동생과 밥을 먹고 걷던 어느 밤이었다. 내가 무심코 물었다.



“넌 힘들 때 담배 같은 거 안 펴?”

(내 얼굴에 ‘나 좀 살려줘’라고 쓰여 있었나 보다.)


동생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언니, 지금 필요해? 한 번 가?”



그렇게 내 인생 최초의 ‘일탈 작전’이 시작됐다. 막상 편의점 앞에 가니, 소심하게도 담배 사러 가는 것조차 부끄러워 머뭇거렸다. 답답했는지 동생이 한숨을 쉬더니 순식간에 담배 한 갑을 사 왔다. 기준은 단 하나, ‘가장 약하고 디자인이 예쁜 걸로’.



“담배가 이렇게 예뻐?” 감탄하는 내 말에 동생이 또 피식 웃으며 불을 붙여 손에 쥐여줬다.



사실 내게 담배는 ‘자유’의 상징이었다. 양손 가득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설 때마다, 아파트 후문에서 무심하게 연기를 내뿜던 그 아저씨가 어찌나 부러웠는지. 하지만 내가 늘 망설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내 아이였다.




나는 아이를 지켜야 할 유일한 가장이었고, 내 건강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나중에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꼭 우아하게 피워보리라’ 다짐만 하고 있었다.



자,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의 맛은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배우 같은 폼은커녕 첫 모금에 ‘컥컥’ 대기 바빴다. 자유는 무슨, 그냥 맛없고 독한 연기일 뿐이었다. 와중에 ‘이러다 한 번에 중독되면 어떡하지?’ 하는, 세상 가장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비밀스러운 작전은 허무하게 끝났고, 나는 도망치듯 편의점으로 다시 달려가 가그린 한 통을 샀다. 입안에 남은 텁텁한 배신감과 마음 한구석에 피어오른 쪼끄만 죄책감을 한꺼번에 헹궈내 버리려는 듯 필사적으로 입을 헹궜다. 이상하게도 그러고 나니 목소리에 힘이 붙었다.



그날 밤, 나는 1년 중 가장 쾌활한 목소리로 아이를 껴안으며 외쳤다.


“엄마 왔다! 우리 야식 먹을까?”



그게 고작 담배 한 개비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잠깐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았던, 그 짧은 시간의 힘이었을까. 확실한 건, 담배 냄새는 여전히 지독히 싫지만 그날 밤 친구와 함께 걸었던 거리의 서늘한 공기는 가끔 그립다는 거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아직도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한다. 향기는 기가 막히게 좋으면서 건강엔 전혀 해롭지 않은, 그런 유기농 담배가 세상에 나오기를. 혹시 모르잖아? 나의 두 번째 반항은 성공할 수 있을지. (아들아 미안, 그래도 넌 안 피우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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