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길에서
나는 오래 전의 기억과 마주하게 되었다.
늘 다니던 거리였지만,
그날은 낯설게 느껴졌다.
길가에 서 있던 오래된 건물,
거기에서 흘러나오던 익숙한 냄새와 풍경이
어디선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곳은
내가 한때 자주 오르내리던 계단이 있는 곳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언제나 고개를 숙인 채 계단을 올랐고,
마음 한구석에 쌓여 가던 무게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그저 ‘괜찮다’는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곤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왔던 것 같았다.
지나간 일이라고,
이미 끝난 이야기라고,
스스로에게 수없이 말해 왔지만
사라진 줄 알았던 그날의 나는
여전히 그 계단 어딘가에 남아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그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때의 나를 불러내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으로
작게 속삭였다.
‘그날의 너는…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
그 말을 건네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그때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차마 돌아볼 용기가 없었던 것임을.
한참이 지나
나는 다시 눈을 떴다.
계단은 그대로였지만
그 위에 서 있던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나는 아주 천천히
발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오래 묶여 있던 무언가가
조용히 풀려 내려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