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시간을 만났다

by 몽연당


브라질에 갈 때마다 늘 같은 순서가 있었다.

상파울루 공항에서 큰딸 가족을 만나는 일이다.

딸과 사위는 브라질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사위는 IT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잠깐 만나 차도 마시고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도 전해 주곤 했다.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이라 공항에서 잠깐 만나는 시간도 늘 반갑고 소중했다.


그리고 나면 나는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남편이 있는 도시로 향했다.

남편은 브라질에서 슈퍼바이저로 근무하고 있었고 회사에서 마련해 준 호텔을 옮겨 다니며 머물고 있었다.


나는 브라질을 여섯 번 정도 다녀왔는데 그때마다 남편은 늘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그래서 나는 공항에 도착하면 남편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상파울루 공항에서 딸 가족을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늘 타던 비행기를 타러 갔다.

여러 번 다녔던 길이라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


비행기에 올라타 보니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많았다.

그때 어떤 여성이 내게 와 말을 걸었다.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기에 나는 남편을 만나러 가는 길이며

비치호텔이라는 곳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옆 사람들과 무언가 이야기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비행기가 도착한 뒤 나는 공항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지금까지 브라질을 여섯 번 다녀오는 동안

남편은 늘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공항에 없는데 혹시 납치된 것 아니냐.”


그리고 딸에게 말했다.


“아빠 회사에 전화해 봐라.”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다.

나는 그때 내가 다른 도시로 잘못 왔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택시를 타고 예전에 묵었던 비치호텔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택시가 도착한 곳은 호텔이 아니라 비치 아파트 단지였다.


순간 어리둥절했다.


게다가 화장실이 급해졌다.


나는 32킬로짜리 이민 가방 두 개를 끌고

낯선 도시를 기웃거리며 화장실을 찾아다녔다.


그때 눈에 들어온 간판이 있었다.


한국식당.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딸 가족과 통화를 하게 되었고

그제야 내가 잘못된 공항에 내려 다른 도시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돌아갔다.


택시 창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브라질의 도시들은 어디를 가든 바다가 보이고

그 주변으로 호텔과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나는 그냥 담담하게 생각했다.


이 도시도 비슷하구나.


공항에 도착하자 직원들이 비상처럼 모여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날은 남편이 있는 도시까지 가는 비행기가 없다고 했다.

중간 도시까지 가서 공항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 날 다시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것이었다.


직원 한 명은 내 32킬로짜리 이민 가방 두 개를 들고 움직였고

다른 직원은 나를 에스코트했다.


정문이 아니라 비상구 쪽으로 나를 데리고 공항 안을 빠르게 질주했다.


그 끝에는 엔진 소리를 내며 비행기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007 영화 한 장면이 떠올랐다.


비상구를 통해 달려가

엔진이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는 모습이 정말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비행기를 타고 세 시간 반을 날아

또 다른 도시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딸린 호텔에서

나는 낯선 도시에서 혼자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몸은 몹시 피곤했지만 이상하게 잠은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공항 직원이 다시 호텔로 와 나를 에스코트해 주었다.

직원과 함께 식사를 하고 다시 공항으로 가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마침내 남편이 있는 도시까지 갈 수 있었다.


공항 직원들은 미안했던지 검은 방석과 보온병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더 좋은 물건들이 많다.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그것들을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


그날 하루 택시를 타고 도시를 오가느라

남편과 내가 준비해 두었던 하루 경비는 택시비로 몽땅 써버렸다.


남편을 만나 호텔에 도착했을 때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남편 회사 직원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윤서 님이나 되니까 여기까지 찾아오셨지요.

택도 없네요.”


그 일은 남편 회사에서도 한동안 소문이 났다고 한다.


지금 돌아보면

그 1박 2일은


브라질에서 내가 혼자 찍은

한 편의 영화 같은 여행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공항 직원도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


내가 탈 비행기는

개찰할 때부터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내가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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