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 수사관 36화.

by BlackBearLeo

지하 은신처에는 정체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 김도윤은 창백한 얼굴로 노트북 화면에 띄워진 이영호 사건의 현장 사진들을 응시했다. 그의 옆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유하준이 앉아 있었고, 공기 중에는 며칠 밤샘 작업의 피로와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맴돌았다. 김도윤은 조금 전 모방범의 잔류 사념을 읽어낸 후, 심한 고통과 함께 다시 쓰러져 있었다. 유하준은 김도윤을 간호하며 그의 회복을 도왔지만, 형의 눈빛에 드리워진 깊은 고뇌를 지울 수는 없었다.

“하준아….”



김도윤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의 눈은 허공을 응시하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읽어낸 모방범의 잔류 사념 속에서 헤매는 듯했다. “그의 사념은… 혼란스러워. 정의를 외치는데… 동시에 엄청난 증오와… 쾌락이 뒤섞여 있어.”



유하준은 김도윤의 옆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형의 손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증오와 쾌락이요? 무슨 뜻이에요?”



김도윤은 유하준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혔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이영호를 처단하면서… 엄청난 분노를 표출했어.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듯했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느껴진 건… 악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 자체에서 오는 기이한 쾌감이었어.”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혼란과 함께 역겨움이 묻어났다. 김도윤 자신이 잔류 사념을 통해 악인들을 단죄할 때 느끼는 감정은, 죄책감과 동시에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서늘한 만족감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그 과정에서 쾌락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모방범의 사념 속에는 분명히, 병적이라고 할 만큼 뒤틀린 잔혹함과 쾌락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의 정의는… 나의 정의와 달라. 그는… 왜곡된 정의를 추구하고 있어.”



김도윤은 자신이 악인들을 처단한 행위가 궁극적으로는 선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라고 믿었다. 그의 처단은 수단이었고, 목적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방범에게 '처단'은 그 자체로 목적이자 쾌락의 원천인 듯했다. 이는 김도윤에게 엄청난 충격과 함께 공포를 안겨주었다. 자신이 심은 씨앗이, 이렇게 괴기스러운 형태로 자라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모방범의 잔류 사념은 김도윤의 정신에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 미쳤다. 잔류 사념을 읽어낸 후, 김도윤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통증에 시달렸다. 그것은 단순히 능력의 부작용으로 인한 고통이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사념들이 뒤엉키는 듯한 기이한 감각이 느껴졌다.



“형! 얼굴이 왜 그래요?!”



유하준이 놀라 소리쳤다. 김도윤의 눈앞에 세상이 간헐적으로 뒤틀려 보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눈앞의 유하준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방의 벽이 녹아내리는 듯한 환각이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갔다. 마치 꿈속의 장면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는 잔류 사념 역류로 인한 일반적인 환각과는 달랐다. 사념 자체가 그의 시야를 왜곡시키는 듯했다.



“괜찮아… 괜찮아….”



김도윤은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는 자신의 능력에 **‘변이’**가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모방범의 뒤틀린 사념이 그의 능력에 불순물을 주입한 것 같았다. 그의 능력은 이제 단순히 과거를 읽어내는 것을 넘어, 왜곡되거나 변질될 위험에 처한 듯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이 모방범처럼 정신이 뒤틀릴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그를 덮쳤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팔을 잡고 그의 체온을 확인했다. 열기는 없었다. 하지만 형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그의 얼굴이 불안정하게 변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형… 혹시… 무슨 다른 걸 봤어요? 아까는 안 그랬잖아요….”



김도윤은 유하준에게 모방범의 잔류 사념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 이상이 생겼음을 털어놓았다. 유하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김도윤의 설명을 들었다. “잔류 사념이 형의 능력 자체를 오염시키는 건가요? 형… 더 이상 그 능력을 사용하면 안 되겠어요. 위험해요!”



유하준의 만류에도 김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능력이 변이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방범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의 능력이 변이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모방범을 더 빨리 찾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 이대로 두면, 그의 능력은 완전히 통제 불능 상태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김도윤은 모방범의 사념에서 느낀 **‘칼날 문신’**과 **‘낡은 라이터’**라는 단서에 집중했다. 그리고 유하준이 찾아낸 구치소 출신 교도관 계정 도용 기록과 죄수복 섬유 조각을 결합했다.



“모방범은 분명 구치소에 있었던 인물이야. 이영호가 출소했을 때, 그도 함께 출소했거나, 혹은 그 시기에 구치소 내부에 있었던 인물. 그리고 이영호의 범죄에 대해 깊은 증오를 품고 있었던 자.”



김도윤은 유하준에게 구치소 교도관 및 수감자 명단을 다시 한번 정밀하게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이영호와 관련된 사건에 연루되었던 인물들, 혹은 이영호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가질 만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또한, 특이한 문신이나 소지품에 대한 정보를 역으로 추적해 달라고 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지시에 따라 광범위한 데이터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구치소 내부 전산망 기록, 교도관들의 개인 정보, 그리고 이영호 사건 관련 모든 수사 기록을 해킹하여 확보했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유하준은 지치지 않고 모방범의 실체를 파헤치려 애썼다. 그의 손끝은 쉴 새 없이 키보드 위를 날아다녔다.



그때, 유하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형! 찾았어요! 몇몇 교도관들의 신상 정보에서 특이점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한 교도관의 개인 기록에 **‘칼날 모양 문신’**이라는 단어가 짧게 언급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의 아들이 과거 이영호의 범죄 피해자 중 한 명과 같은 학교에 다녔던 기록도 있습니다.”



김도윤의 눈이 번뜩였다. 교도관 이정훈. 그의 아들이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었지만, 이영호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로 인해 학교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고, 이정훈의 아들 역시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정훈은 이영호가 수감된 기간 동안 교도관으로 근무하며 그를 직접 관리하기도 했다. 이는 모방범의 동기와 정체에 대한 강력한 단서가 될 수 있었다.



“그에게 직접 잔류 사념을 읽어봐야 해.” 김도윤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가 정말 모방범이라면, 그의 사념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유하준은 이정훈에 대한 정보를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의 재정 상태, 근무 기록, 그리고 최근 행적까지. 이정훈은 몇 달 전 갑자기 근무지를 옮겼고, 현재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은둔 생활을 하는 듯했다. 그의 이동 패턴은 마치 누군가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불규칙했다.



“형… 이정훈 씨는 현재 연락 두절 상태입니다. 그의 아들이 사건 이후로 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기록도 있어요. 어쩌면… 이정훈 씨가 직접 복수에 나선 걸지도 몰라요.”



김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했다. 이정훈. 그라면 이영호의 출소 정보를 알 수 있었을 것이고, 구치소 내부 사정에도 밝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들의 고통으로 인한 증오는 그를 비질란테 모방범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왜곡된 정의와 쾌락이었다.



“그를 막아야 해. 더 이상 그의 손에 피를 묻히게 둘 수는 없어. 그리고 내 이름으로 벌어지는 이 폭력을 멈춰야 해.”



김도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몸은 아직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어깨를 붙잡았다.



“형, 위험해요. 이정훈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알 수 없어요. 그리고 형의 능력도 지금 불안정하잖아요. 제가 먼저 그의 주변을 탐색해볼게요. 혹시 다른 함정이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유하준은 김도윤을 보호하려 했다. 그는 비질란테 활동의 모든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김도윤의 능력이 변이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자칫하면 김도윤이 이정훈의 사념에 잠식되거나, 아니면 능력이 폭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도윤은 단호했다. “안 돼, 하준아. 이건 내가 직접 가야 해. 그를 직접 만나서, 그의 사념을 읽어내야 해. 그의 왜곡된 정의를 바로잡는 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김도윤은 자신이 겪고 있는 능력의 변이가 이정훈의 잔류 사념 때문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갈수록 이 알 수 없는 통증과 환각이 심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이정훈이 위험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는 이대로 이정훈을 방치했다가는 사회에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믿었다.



그날 밤, 김도윤은 은신처를 나설 준비를 했다. 유하준은 그의 옆에서 조용히 그를 도왔다. 옷을 챙겨주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휴대용 응급 약품을 챙겼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했지만, 김도윤의 결심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제가 형의 위치를 계속 추적할게요.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바로 알려주세요. 그리고… 저도 뒤따라갈게요.”



유하준은 김도윤에게 직접 만든 소형 GPS 추적기를 건넸다. 김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하준의 존재는 그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혼자였다면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고맙다, 하준아.”



김도윤은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몸은 무거웠지만, 그의 정신은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그는 자신이 왜곡된 정의를 쫓는 모방범을 막아야 할 숙명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그의 능력은 그에게 엄청난 고통과 책임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그에게 이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을 주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정훈의 사념에서 느껴진 뒤틀린 쾌감과 증오,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변이가 교차했다. 이 싸움은 단순히 모방범을 잡는 것을 넘어, 자신의 능력의 본질과 자신이 추구하는 정의에 대한 깊은 고찰이 될 것이었다. 어쩌면 이 싸움의 끝에서, 그는 비질란테라는 이름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낼지도 모른다.



밤의 장막이 그들을 감쌌다. 도시의 불빛은 멀리서 희미하게 빛났고, 그 아래에는 보이지 않는 정의와 왜곡된 정의의 대결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김도윤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뒤에는 그를 그림자처럼 지키는 유하준이 있었고, 그의 앞에는 또 다른 고통과 마주할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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