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 수사관 38화.

by BlackBearLeo


경찰청 비질란테 전담팀 사무실은 며칠째 잠 못 드는 밤으로 황량했다. 커피 냄새와 인스턴트식품의 찌꺼기가 뒤섞인 퀴퀴한 공기. 벽면 가득 붙은 사건 자료들 위로 붉은색 실타래가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강재혁은 커다란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눈을 가늘게 떴다. 이영호 살인 사건과 차민준 의문사. 언론은 두 사건 모두 비질란테의 소행으로 단정했지만, 강재혁의 직감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한 퍼즐 조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이영호의 시신 사진을 다시 한번 노려봤다. 목에 남은 질식사 흔적은 차민준의 그것과 놀랍도록 유사했다. 범행 현장에 남겨진 메시지 역시 비질란테의 시그니처와 흡사했다. 그러나 강재혁은 그 유사성 속에서 **미묘한 '조악함'**을 감지했다. 이는 그의 오랜 수사 경험이 가져다준 통찰력이었다.

“박형사, 이영호 사건 현장의 시그니처 메시지 필적 감정 결과 나왔나?”

강재혁의 질문에 박형사가 재빨리 파일을 내밀었다. 그의 얼굴에도 피로가 역력했다. “네, 경감님. 필적은 변조되어 있지만, 분석팀에서는 기존 비질란테 사건에서 발견된 필적과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특히 특정 글자에서 어색함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마치… 서투른 모방처럼요.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의 글씨를 흉내 내는 것처럼 부자연스럽다고 합니다.”

강재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예상이 적중했다. 그는 화이트보드에 '이영호 사건'과 '차민준 사건'을 나란히 적고, 그 아래에 각 사건의 특징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붉은색 마커가 하얀 보드 위를 빠르게 스쳤다.

차민준 사건:

구치소 독방 내 발생, 외부 침입 흔적 없음. 완벽한 밀실 살인.

전자기기 순간 오작동 기록. (원인 불명이나, 비질란테 능력 발현 시 유사 현상 보고됨).

극도로 깨끗한 현장, 어떠한 물리적 흔적도 남기지 않음. 마치 유령의 소행처럼.

피해자: 비질란테가 심판했던 악질 범죄자. (법망을 피해간 인물).

사건 당시 김도윤은 병상에 누워있었음.

이영호 사건:

은신처 내 발생, 외부 침입 흔적 불분명하나 문 잠금장치 파손.

전자기기 오작동 기록 없음. 일반적인 물리력 사용.

현장 시그니처 메시지 발견 (필적 조악함, 내용 일부 왜곡).

피해자: 악질 성범죄자 (비질란테 심판 대상과 유사한 종류의 악인).

현장에서 발견된 미세한 죄수복 섬유 조각. (구치소 보급품과 일치).

죄수복 섬유 조각. 강재혁의 눈이 그 부분에서 멈췄다. 국과수 감정 결과, 구치소에서 보급하는 죄수복의 섬유와 동일하다는 보고가 올라왔었다. 그는 이전에 이 섬유 조각이 이영호가 과거 수감되었을 때 묻은 흔적이거나, 혹은 구치소 출신 관련자의 소행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이 점이 더욱 명확한 단서로 다가왔다.

“모방범인가… 아니면 비질란테가 동료를 만든 건가.” 강재혁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만약 모방범이라면, 그는 왜 굳이 비질란테의 방식을 모방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왜 이렇게 조악하게 흔적을 남긴 걸까? 그의 의도는 무엇이지? 단순히 비질란테의 이름을 빌리려는 것인가, 아니면 비질란테를 음해하려는 것인가?”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힌 퍼즐 같았다. 진짜 비질란테는 유령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완벽에 가까운 범행 수법으로 경찰을 농락했다. 하지만 이영호 사건은 달랐다. 분명히 유사했지만, 어딘가 허술하고 미숙한 점들이 보였다. 마치 '나 비질란테 모방범이오!' 라고 외치는 듯한 조악함. 강재혁은 그것이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서투른 모방범의 실수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만약 의도된 것이라면, 모방범은 자신에게 주목하게 하려는 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그는 문득 김도윤을 떠올렸다. 차민준 사건 직전, 그가 병원에서 깨어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차민준 사건 이후, 이영호 사건 발생 직전까지 비질란테의 활동이 없었다. 어딘가 연결되는 듯한 이 시점들. 강재혁은 김도윤이 비질란테라고 확신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 모든 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확신은 더욱 강해졌다. 김도윤의 공백기 동안 등장한 모방범. 이는 비질란테가 '한 명'이라는 자신의 추리를 더욱 공고히 하는 증거였다.

그날 오후, 강재혁은 김도윤이 입원했던 병원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김도윤은 이미 퇴원한 상태였다. 그는 병원 측에 김도윤의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퇴원 후 행방에 대해 물었다. 병원에서는 개인 정보라는 이유로 자세한 정보를 주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에서 강재혁은 무언가를 읽었다. 의료진의 피로와 불안감은 김도윤의 병세가 생각보다 심각했으며, 그의 퇴원이 일반적이지 않았음을 암시했다.

김도윤은 병원 퇴원 후에도 자택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그가 경찰의 추적을 피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강재혁은 김도윤이 숨어 지내는 장소를 추적하는 동시에, 그를 직접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그에게는 김도윤과의 직접적인 대화가 필요했다. 그의 눈빛, 그의 표정, 그의 반응에서 진실을 읽어내고 싶었다. 단순히 증거를 넘어, 인간적인 통찰력이 필요했다.

며칠간의 추적 끝에, 강재혁은 김도윤이 한적한 구도심의 오래된 주택가 지하에 숨어 지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의 정보망은 경찰 내부에서도 김도윤을 가장 깊이 추적하고 있었다. 그는 홀로 김도윤의 은신처로 향했다. 낡은 건물, 허름한 지하 입구.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강재혁은 문을 두드렸다.

“김도윤 씨. 강재혁입니다. 경찰입니다.”

잠시의 정적 후, 문이 천천히 열렸다. 예상대로 유하준이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강재혁을 마주했다. 유하준은 강재혁의 등장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그러나 동시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밤샘 작업의 흔적이 역력했다.

“강 경감님… 여긴 어떻게….” 유하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눈은 김도윤에게 도움을 청하듯 힐끗거렸다.

강재혁은 유하준의 어깨너머로 안쪽을 응시했다. 희미한 불빛 아래, 김도윤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핼쑥했지만, 눈빛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강재혁은 김도윤의 눈빛에서 강렬한 의지와 함께,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체념 같은 것을 읽었다. 마치 자신이 지어야 할 짐을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김도윤 씨?” 강재혁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났다.

김도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하준은 불안한 표정으로 강재혁을 들여보냈다. 강재혁은 비좁은 지하 공간으로 들어섰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약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그는 김도윤 맞은편에 앉았다. 김도윤은 피할 기색 없이 강재혁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들의 눈빛이 공기 중에서 부딪혔다.

“이영호 사건에 대해 들으셨겠죠.” 강재혁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언론에서는 비질란테의 소행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도윤은 잠시 망설였다. 그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강재혁은 놓치지 않았다. 그의 망설임은 단순히 범죄자라서가 아닌, 더 깊은 복합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직감했다.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정말 당신의 소행이 아닙니까?” 강재혁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움이 묻어났다. 그의 질문은 김도윤을 압박했다.

김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때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강재혁은 그의 말을 믿었다. 그의 병원 기록과 유하준의 증언을 미루어 볼 때, 김도윤이 이영호를 처단할 물리적 능력이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의 몸 상태는 거의 초죽음 상태였음이 명백했다.

“그럼 모방범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강재혁이 직접적으로 물었다. 그의 시선은 김도윤의 눈을 꿰뚫는 듯했다.

김도윤의 표정에서 미세한 동요가 감지되었다. 그는 유하준을 힐끗 바라봤다. 유하준은 불안한 눈빛으로 김도윤을 응시하고 있었다. 강재혁은 그들의 시선 교환에서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들은 분명히 모방범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김도윤은 겨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떨림과 함께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강재혁은 그 떨림 속에서 죄책감과 책임감을 읽었다. 자신의 행동이 불러온 파장에 대한 자책감.

“모방범이라면, 왜 당신의 방식을 모방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가 당신의 행위 방식에 대해 이렇게까지 잘 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강재혁의 질문은 김도윤의 핵심을 찔렀다. 김도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그는 침묵했다. 강재혁은 그 침묵 속에서 답을 얻었다. 김도윤은 모방범의 정체에 대해, 그리고 그가 자신의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었다. 어쩌면 모방범이 김도윤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론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이영호 사건 현장에서 죄수복 섬유 조각이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구치소 내부 전산망 기록에 이영호의 정보가 불법적으로 열람된 흔적이 있습니다. 모방범은 구치소 관련자이거나, 혹은 구치소 내부 사정에 밝은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죠. 김도윤 씨, 혹시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강재혁은 김도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김도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머뭇거렸다. 그가 알고 있는 정보, 즉 이정훈 교도관에 대한 정보를 말해야 할지, 아니면 침묵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강재혁은 김도윤의 눈빛 속에서 심각한 도덕적 갈등을 읽었다. 그는 이정훈의 정체를 밝히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는 듯했다.

“침묵은… 당신을 더 궁지에 몰아넣을 뿐입니다, 김도윤 씨. 당신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행동했지만, 적어도 당신의 행동에는 어떤 ‘정의’가 있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모방범은 당신의 이름을 빌려 폭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를 막지 않으면, 당신의 모든 행동이 결국 왜곡된 폭력으로 기억될 겁니다. 당신이 이루고자 했던 정의마저 더럽혀질 겁니다.”

강재혁의 말은 김도윤의 심장을 꿰뚫었다. 김도윤은 자신의 손으로 만든 이 혼란을 어떻게든 수습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강재혁은 그의 동요를 분명히 감지했다.

“모방범의 범행 수법은 당신의 것과 유사하지만, 어딘가 조악합니다. 마치 서투른 그림자가 원본을 흉내 내는 것 같죠. 하지만 그 잔혹함은 당신의 그것을 능가합니다. 그의 행동은 점점 더 폭력적이고 예측 불가능해지고 있습니다. 그가 더 큰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김도윤 씨.”

강재혁은 김도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협력을 제안하는 손길이었다. 법과 정의의 수호자로서, 그리고 비질란테를 쫓는 최고의 추적자로서, 강재혁은 김도윤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는 그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자신의 원칙을 잠시 접어두고, 법의 경계에 있는 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김도윤은 강재혁의 손을 바라봤다.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강재혁과 유하준을 번갈아 봤다. 유하준은 김도윤이 강재혁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까 봐 불안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도윤은 이미 결심한 듯 보였다.

“그는… 과거에 제가 심판했던 범죄자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 능력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정의는… 뒤틀려 있습니다. 그는 단죄 자체에서 쾌락을 느낍니다.”

김도윤은 이정훈 교도관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강재혁에게 직접적인 단서를 주는 대신, 모방범의 본질적인 특성을 설명했다. 강재혁은 김도윤의 말을 들으며 눈을 번뜩였다. ‘나와 같은 능력’이라는 말에 강재혁의 머릿속에 새로운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했다. 그는 김도윤의 능력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가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모방범을 멈추기 위해 무엇을 할 겁니까?” 강재혁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김도윤의 답변에 대한 기대감이 실려 있었다.

김도윤은 강재혁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에는 지쳐 보이는 피로감과 함께, 비장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제가 멈춰야 합니다. 제가 시작한 일이니까요. 그가 더 큰 재앙을 일으키기 전에.”

강재혁은 김도윤의 말에서 그가 다시 움직이려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김도윤을 잡아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모방범이라는 더 큰 위협을 막기 위해 김도윤의 능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했다. 그는 김도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었다.

강재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도윤 씨, 당신은 범죄자입니다. 나는 당신을 체포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방범이 더 큰 문제입니다. 당신이 그를 막을 방법을 알고 있다면… 나는 당신을 쫓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를 잡는 순간, 나는 당신을 체포할 겁니다. 이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당신에게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을 겁니다.”

강재혁의 목소리는 엄숙했다. 그것은 일종의 경고이자, 동시에 은밀한 동맹 제안이었다. 김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강재혁의 말을 이해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모방범을 잡고, 스스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했다.

강재혁은 은신처를 나섰다. 그의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어둠 속에서 김도윤의 그림자를 쫓는 동시에, 모방범이라는 새로운 그림자의 실체를 파헤쳐야 하는 이중적인 임무를 안게 되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모방범의 정체와 김도윤의 능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 복잡하게 얽힌 진실의 실타래 속에서, 누가 영웅이고 누가 빌런인지, 그 경계는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었다. 도시의 밤은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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