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목격자(에필로그) 완결

by BlackBearLeo

에필로그: 여전히 시끄러운 머릿속

"야, 강도윤. 졸지 마."

무전기 너머로 수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하품을 크게 하며 모자를 고쳐 썼다.

"안 졸았어. 명상 중이었지."

"명상 좋아하시네. 침이나 닦아. 더러워 죽겠어."

나는 킬킬거리며 입가를 훔쳤다. 여기는 남대문 시장. 갈치조림 골목 입구다. 우리가 쫓고 있는 건 희대의 살인마도, 부패한 정치인도 아니다. 시장을 무대로 할머니들의 쌈짓돈을 털어가는, 일명 '갈치파' 소매치기 일당이다.

"타깃 등장. 3시 방향."

수진의 신호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인파 속에서 쥐새끼처럼 움직이는 놈이 보였다. 검은색 점퍼. 헐렁한 바지. 놈이 좌판을 구경하는 할머니의 가방으로 손을 뻗었다.

"지금이야."

나는 먹던 호떡을 내려놓고 뛰쳐나갔다.

"어이! 거기 스톱!"

내 고함 소리에 놈이 화들짝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시장통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비키세요! 경찰입니다!"

놈은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다. 하지만 6개월 전, 박태산의 사설 경호팀과 맞짱을 떴던 나다. 이 정도 잔챙이는 몸풀기지.

나는 생선 가판대를 훌쩍 뛰어넘어 놈의 앞을 막아섰다.

"어딜 가려고."

"이, 이거 안 놔? 나 아무것도 안 했어!"

놈이 품에서 과도를 꺼내 들었다. 귀엽네. 나는 놈의 손목을 가볍게 낚아챘다.

"악!"

과도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대로 놈을 바닥에 깔아뭉갰다.

"당신을 절도 미수 및 특수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체포한다. 변호사는... 알아서 선임해라."

수갑을 채워 일으키는데, 수진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잡았어?"

"어. 근데 훔친 지갑이 없네? 분명 넣는 거 봤는데."

놈의 주머니를 뒤졌지만 텅 비어 있었다. 놈이 비열하게 웃었다.

"증거 있어요? 난 그냥 뛰었을 뿐이라고. 경찰이 사람 막 잡아도 돼?"

이 새끼가. 도망치면서 어딘가에 버린 게 분명하다. 이 넓은 시장통에서 지갑을 어떻게 찾는담.

수진이 난감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나는 한숨을 쉬며 장갑을 벗었다.

"형사님? 뭐 하슈?"

놈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놈의 뒷덜미를 맨손으로 꽉 쥐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내가 신기가 좀 있어서."

지잉-

익숙한 진동. 시야가 반전됐다. 놈의 기억 속 영상이 빠르게 감겼다.

할머니 가방에서 지갑을 뺀다. 도망치다가 생선 가게 옆 쓰레기통. 검은 봉투 안에 지갑을 쑤셔 넣는다.

"빙고."

나는 손을 떼고 다시 장갑을 꼈다. 머리가 살짝 띵했지만, 예전처럼 깨질 듯한 고통은 없었다. 내성이라도 생긴 걸까. 아니면 내가 이 저주를 즐기게 된 걸까.

"저기 생선 가게 옆 파란 쓰레기통. 거기 뒤져 봐."

내 말에 수진이 쓰레기통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그녀가 분홍색 장지갑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찾았어!"

놈의 턱이 빠질 듯 벌어졌다.

"뭐, 뭐야? 귀신이야?"

"귀신은 아니고. 그냥 감이 좀 좋은 형사다."

나는 놈을 질질 끌고 갔다.

사건 처리를 끝내고 나오니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는 시장통 순대국밥집에 마주 앉았다.

"건배."

소주잔이 맑은 소리를 냈다. 박태산 사건 이후, 우리는 '특수수사 1팀'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팀으로 발령받았다. 사실상 말이 특수팀이지,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미제 사건이나 잡범 처리를 도맡는 짬통 부서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이 좋았다.

"근데 도윤아."

수진이 순대를 집어 먹으며 물었다.

"아까 그거, 어떻게 알았어? 쓰레기통."

"말했잖아. 감이라고."

"거짓말."

수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쏘아봤다.

"너, 능력 안 사라졌지?"

뜨끔했다. 역시 이수진. 귀신은 속여도 프로파일러는 못 속인다.

"무슨 소리야. 병원에서 확인했잖아.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그때 네 눈빛, 거짓말할 때 눈빛이었어. 오른쪽 눈썹 살짝 올라가는 거."

"습관이야, 습관."

나는 딴청을 피우며 국물을 들이켰다. 사실이다. 능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예리해졌다. 예전엔 댐이 터지듯 무분별하게 기억이 쏟아져 들어왔다면, 지금은 수도꼭지처럼 내가 원할 때만 기억을 틀 수 있게 되었다.

박태산에게 기억을 역류시켰던 그날, 무언가 변화가 생긴 게 분명했다. 나는 이 능력을 숨기기로 했다. 수진이 알면 또 걱정할 테고, 윗선에서 알면 나를 인간 CCTV로 써먹으려 들 테니까.

"솔직히 말해. 보이지?"

수진이 집요하게 물었다. 그녀가 테이블 위로 손을 뻗었다. 내 손등 위에 그녀의 손이 포개졌다.

......

따뜻했다. 기억을 읽으려 집중하지 않으면, 그저 체온만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씩 웃었다.

"글쎄. 네 마음은 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느끼하긴."

수진이 얼굴을 붉히며 손을 뺐다. 하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밥이나 먹어. 내일 또 출동하려면."

"내일은 뭔데?"

"15년 전 실종 사건. 유골이 발견됐대."

또다시 누군가의 비명을 들어야 할 시간이다. 예전 같았으면 진통제부터 찾았을 것이다.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가게 밖, 시장통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상인들의 호객 소리, 취객들의 고함 소리,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 그 소음들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사연이 섞여 있었다.

내 머릿속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시끄럽다.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목소리, 잡히지 않은 범인들의 비웃음, 남겨진 사람들의 울음소리. 그 모든 게 내 뇌를 울린다.

하지만 괜찮다. 이 시끄러움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내가 해야 할 일의 이유니까.

나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뇌 속에 숨겨진 진실을 목격하고, 그것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일. 그게 '침묵의 목격자'인 내가 선택한 길이다.

"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공기가 찼지만, 더 이상 춥지 않았다. 내 옆에는 믿음직한 파트너가 있고, 내 손에는 진실을 움켜쥘 힘이 있으니까.

여전히 머릿속은 시끄럽지만, 오늘 밤은 왠지 꿀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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