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목격자(10장)

by BlackBearLeo

10장. 완전한 소탕

파주 외곽의 폐공장 지대. 가로등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SUV가 질주하고 있었다.

"보여? 저기 불빛!"

수진이 핸들을 꽉 쥐며 외쳤다. 전조등 불빛 너머, 잡초 무성한 활주로 끝에 격납고가 보였다. 그 앞에는 작은 경비행기 한 대가 프로펠러를 회전시키고 있었다.

부우우웅-

엔진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이륙 준비 중이다.

"놈이 뜬다! 밟아!"

"꽉 잡아! 들이받는다!"

수진이 기어를 바꾸고 엑셀을 바닥까지 밟았다. 차가 굉음을 내며 녹슨 철조망을 뚫고 활주로로 진입했다.

콰창!

철망이 뜯겨나가며 차체에 불꽃이 튀었다. 비행기는 이미 활주를 시작하고 있었다. 점점 속도가 붙는 비행기. 그리고 그 뒤를 쫓는 우리의 너덜너덜한 SUV.

"더! 더 빨리!"

내가 소리쳤다. 비행기 바퀴가 지면에서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이대로 놈을 놓치면, 박태산은 영원히 법의 심판을 피해 도망칠 것이다. 해외로 나가 신분 세탁하고, 훔친 돈으로 호의호식하겠지. 그 꼴은 죽어도 못 본다.

"죽어라, 박태산!"

수진이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 차가 비행기의 왼쪽 날개 쪽으로 사선으로 파고들었다.

"지금이야! 도윤아!"

나는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몸을 내밀었다. 미친 짓이다.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 하지만 내 눈엔 비행기의 바퀴가 슬로 모션처럼 보였다.

"으아아아!"

나는 차 문을 열고 비행기 랜딩 기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중력이 사라지는 감각. 그리고 엄청난 충격.

쿠당탕!

내 몸이 비행기 바퀴 지지대에 매달렸다. 아스팔트 바닥이 발밑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살점이 쓸려나가는 고통이 전해졌지만, 팔에 힘을 풀지 않았다.

"안 돼... 못 가! 이 개자식아!"

나는 품에서 김 실장에게 뺏었던 삼단봉을 꺼냈다. 그리고 바퀴와 지지대 사이의 틈새에 쑤셔 박았다.

끼기기긱-!

강철과 강철이 갈리는 끔찍한 소음. 삼단봉이 바퀴 회전을 막으면서 불꽃이 튀었다.

펑!

타이어가 터졌다. 균형을 잃은 비행기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더니, 활주로 바닥을 긁으며 팽이처럼 돌았다.

"크헉!"

나는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눈앞이 핑 돌았지만, 정신을 잃을 순 없었다.

쿠콰광!

비행기가 격납고 벽을 들이받고 멈춰 섰다. 프로펠러가 찌그러지고, 엔진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도윤아!"

수진이 차에서 뛰어내려 내게 달려왔다.

"괜찮아? 살아 있어?"

"아... 윽... 뼈는... 붙어 있는 것 같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입안이 터져 피 맛이 났다. 하지만 시선은 비행기 조종석에 고정되어 있었다.

캐노피가 열리고, 한 남자가 기어 나왔다. 박태산. 말끔했던 수트는 찢어졌고,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007가방 대신, 은색 리볼버 권총이 들려 있었다.

"이... 이 바퀴벌레 같은 새끼들이!"

박태산이 악을 쓰며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눴다.

탕! 탕!

총알이 내 발치에 박혀 흙먼지를 일으켰다. 우리는 급히 비행기 잔해 뒤로 몸을 숨겼다.

"총까지 있었어?"

수진이 테이저건을 확인하며 욕을 뱉었다. 테이저건 사거리는 5미터. 권총을 든 놈에게 다가가기엔 너무 짧다.

"강도윤! 나와! 내 손으로 죽여줄게!"

박태산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공포다. 놈의 목소리엔 살의보다 공포가 더 짙게 배어 있었다. 모든 걸 잃고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새끼의 발악.

"수진아. 나 믿지?"

내가 숨을 고르며 물었다.

"또 무슨 미친 짓을 하려고."

"내가 미끼가 될게. 네가 뒤로 돌아가서 쏴."

"안 돼. 놈은 실탄이야. 맞으면 죽어."

"안 맞아. 놈은 지금 겁먹어서 손 떨고 있거든. 그리고..."

나는 내 붉은 눈을 가리켰다.

"보이잖아. 놈이 언제 쏠지."

수진은 잠시 망설이더니,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30초. 그 안에 끝내."

수진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잔해 뒤에서 걸어 나왔다.

"여기 있다, 박태산."

박태산이 나를 보자마자 총구를 돌렸다.

"죽어!"

놈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걸리는 게 보였다. 살이 떨리는 미세한 진동. 근육의 수축.

'지금.'

탕!

나는 왼쪽으로 고개를 까딱했다. 총알이 내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선명했다.

"뭐... 뭐야?"

박태산의 눈이 커졌다. 우연이라고 생각했겠지.

"못 맞추네. 사격 실력은 정치 실력보다 형편없는데?"

나는 한 걸음씩 다가갔다. 놈의 공포심을 자극해야 한다. 이성을 잃게 만들어야 빈틈이 생긴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탕! 탕!

또다시 발사. 이번엔 오른쪽 어깨, 그리고 왼쪽 허벅지. 나는 놈의 시선을 읽고, 총구의 방향을 예측했다. 마치 춤을 추듯, 총알 사이를 피했다. 물론 스치긴 했다. 팔뚝에서 피가 배어 나왔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괴물... 너 같은 괴물이 어떻게 경찰이야!"

박태산이 뒷걸음질 쳤다. 등이 비행기 동체에 닿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괴물은 너지. 10년 동안 사람 죽여서 컬렉션 만든 놈이 할 소리는 아니잖아?"

나는 이제 놈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5미터. 4미터.

"내, 내가 돈 줄게! 장부? 그거 다 태워버려! 내가 대통령 되면 너 경찰청장 시켜줄게! 아니, 원하는 거 다 들어줄게!"

비굴한 협상. 이게 대한민국 1위 대선 후보의 민낯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야."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네가 지은 죄의 무게를, 네 뇌로 똑똑히 느끼는 거."

"이, 이 미친 새끼가!"

박태산이 마지막 남은 총알을 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빨랐다. 어둠 속에서 푸른 불꽃이 날아왔다.

파직!

"끄아아악!"

수진의 테이저건 전극이 박태산의 목에 꽂혔다. 놈이 감전되어 부들부들 떨며 총을 떨어뜨렸다. 그 틈을 타 나는 놈에게 달려들었다.

"잡았다."

나는 놈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내리꽂았다. 쿵! 박태산이 신음을 토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이거 놔! 내가 누군지 알아? 난 박태산이야!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몸이라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나는 장갑을 벗었다. 너덜너덜해진 맨손. 피와 흙이 엉겨 붙은 그 손을, 박태산의 얼굴에 갖다 댔다.

"아니. 넌 그냥 살인자야."

내 손바닥이 놈의 이마를 덮었다.

콰앙-!

접촉. 마지막 사이코메트리. 이번엔 읽는 것이 아니다. 역류(Reflux)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수많은 피해자들의 기억. 김민석의 공포, 한강 변사체의 고통, 다람쥐의 절망. 내 뇌 속에 저장되어 있던 그 끔찍한 사념들을, 놈의 뇌로 쏟아부었다.

"끄어어어억!"

박태산이 짐승 같은 비명을 질렀다. 흰자위가 뒤집히고, 입에서 거품이 나왔다.

"봐라. 똑똑히 봐."

나는 손을 떼지 않았다.

손가락이 잘릴 때의 고통. 차가운 강물에 던져질 때의 추위. 가족을 그리워하며 죽어가던 마지막 순간.

"이게 네가 죽인 사람들이 느낀 거야. 하나도 빠짐없이 다 느껴봐."

"살려... 살려줘... 잘못했어... 끄억...!"

박태산이 발버둥 쳤다. 놈의 머릿속은 지금 지옥 그 자체일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죄악이 칼날이 되어 자신의 뇌를 난도질하는 고통.

얼마나 지났을까. 박태산의 몸이 축 늘어졌다. 기절한 게 아니다.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이다. 초점 없는 눈동자는 허공을 응시하며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

나는 천천히 손을 뗐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동시에 맑아졌다. 마치 꽉 막혀 있던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

"끝났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수진이 다가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고생했어. 진짜로."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기대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진짜 경찰들이다. 최 팀장이 이끄는 병력이 활주로로 쏟아져 들어왔다.

"강도윤! 이수진! 괜찮냐!"

최 팀장이 뛰어왔다. 그는 널브러진 박태산을 보고,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우리를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팀장님."

내가 힘없이 손을 들었다.

"수갑 채우시죠. 현행범입니다."

최 팀장은 울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박태산의 손목에 은팔찌를 채웠다.

"박태산. 당신을 살인 및 살인 교사,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한다.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미란다 원칙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박태산은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저 어린아이처럼 웅얼거리고 있었다.

"손가락... 내 손가락..."

악마의 최후치고는 너무나 초라했다.

일주일 후. 대한민국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박태산 게이트. 건국 이래 최대의 스캔들이었다. 관련된 국회의원 10명, 검사 5명, 경찰 간부 7명이 줄줄이 구속됐다. 마포서장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갈비뼈 골절, 전신 타박상, 그리고 뇌진탕. 전치 8주. 하지만 마음만은 날아갈 것 같았다.

"야, 영웅 나셨네."

병실 문이 열리고 수진이 들어왔다. 사과 바구니를 든 채였다.

"영웅은 무슨. 병신이지."

"말은 바로 하자. 특진했잖아. 경위 강도윤."

그렇다. 나와 수진은 파면되는 대신, 1계급 특진과 함께 표창장을 받았다. 물론 윗선에서는 껄끄러워했지만, 여론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았다. '정의의 사도', '현실판 다크 히어로'. 낯간지러운 별명들이 붙었다.

"박태산은?"

"정신병원 감호소에 있어. 재판 불가능 상태래. 평생 벽만 보고 혼잣말한대. '손가락이 아파, 손가락이 아파' 이러면서."

"잘됐네. 죽는 것보다 더한 형벌이니까."

나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달았다.

"근데 도윤아."

수진이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너 눈은 어때? 그리고... 그거."

그녀가 내 손을 가리켰다. 사이코메트리. 박태산에게 기억을 역류시킨 뒤로, 내 능력에 변화가 생겼다.

"글쎄."

나는 먹던 사과를 내려놓고, 수진의 손등에 내 손을 올렸다. 맨살이 닿았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두통도, 이명도 없었다. 그저 따뜻한 사람의 체온만이 느껴졌다.

"안 보여."

"정말?"

"어. 박태산한테 다 쏟아부어서 그런가 봐. 능력이 사라졌어."

거짓말은 아니다. 사실 아주 희미하게 감정 같은 게 느껴지긴 하지만, 예전처럼 강제적인 영상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내가 원할 때만, 아주 살짝 엿볼 수 있는 정도? 하지만 수진에겐 비밀로 하기로 했다.

"다행이네. 이제 평범한 형사로 돌아온 거네."

수진이 안도하며 웃었다. 그 미소가 예뻤다. 10년 전, 병실에서 울던 소녀의 모습은 이제 없었다.

"평범한 형사라..."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병원 정원에는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더 이상 비도, 안개도 없는 맑은 날씨였다.

"그래. 이제 진짜 수사를 해봐야지. 장갑 벗고, 맨손으로."

나는 수진의 손을 꽉 잡았다. 그녀도 피하지 않고 마주 잡았다.

머릿속이 조용했다. 평생 나를 괴롭히던 타인의 소음이 사라진 고요함. 이 침묵이, 이 평범함이 이렇게 소중한 것인 줄 미처 몰랐다.

[침묵의 목격자: 타인의 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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