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목격자 (9장)

by BlackBearLeo

9장. 뇌를 파고드는 증거

"너, 제정신이야?"

취조실 책상이 쾅 소리를 내며 울렸다. 마포경찰서장. 내 직속상관이자, 박태산의 충실한 개. 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서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대선 토론회 생방송 중에 난입을 해? 그것도 모자라 토막 시체 손가락을 던져? 네가 테러리스트야? 형사야?"

나는 수갑 찬 손을 들어 귀를 후 볐다. 조명 때문에 눈이 따가웠다. 아직 붉은 기가 가시지 않은 내 눈을 보자, 서장이 흠칫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형사죠. 범인 잡는 형사."

"범인? 박태산 후보가 범인이라는 증거 있어? 그 유리병? 그거 네가 조작한 거면 어쩔 건데!"

"조작이라뇨. 국과수 감식 결과 나오면 알겠죠. 아, 국과수도 매수하셨으려나?"

"이 새끼가!"

서장이 내 멱살을 잡으려다 멈췄다. 취조실 한구석에 있는 CCTV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넥타이를 풀었다.

"강도윤. 좋게 말할 때 불어. 배후가 누구야? 야당 쪽에서 사주했냐? 아니면 돈 받았어?"

"배후는 무슨. 제 배후는 피해자들의 원혼입니다. 서장님 배후는 박태산이고요."

"너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너 여기서 못 나가. 테러 방지법, 공직선거법 위반, 허위사실 유포... 넌 징역 20년도 모자라."

서장이 으름장을 놓았다.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우스웠다. 지금 밖에서는 핵폭탄이 터지고 있는데, 방공호 속에 숨어서 "나 안 죽어!"라고 외치는 꼴이니까.

"서장님."

나는 몸을 앞으로 숙였다. 수갑 사슬이 짤그랑 소리를 냈다.

"뉴스 좀 보시죠. 지금쯤 난리 났을 텐데."

"뉴스? 웃기지 마. 언론 통제 다 끝났어. 방송국 놈들도 다 한통속이야. 네가 벌인 쇼, 그냥 방송 사고로 처리될 거다."

"과연 그럴까요?"

나는 씩 웃었다. 이수진. 내 파트너는 지금쯤 방송국 놈들도, 박태산도 손댈 수 없는 곳에서 판을 흔들고 있을 테니까.

같은 시각, 신촌의 한 PC방. 모자를 푹 눌러쓴 여자가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수진이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췄다. 화면에는 '다크 웹'이 아닌, 가장 대중적인 커뮤니티 사이트와 SNS 창이 수십 개 띄워져 있었다.

[제목: 박태산 대선 후보의 실체를 폭로합니다. (증거 자료 첨부)]

수진은 엔터키를 눌렀다. 전송 완료. 김 실장의 비밀 금고에서 나온 '장부'의 스캔 파일과, 10년 전 사건 관련 녹취록들이 인터넷이라는 바다에 뿌려졌다.

단순한 텍스트 폭로가 아니었다. 수진은 프로파일러답게 대중의 심리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자료를 구성했다.

[충격] 한강 토막 살인 사건, 범인은 따로 있다? (손가락 사진 포함)


[녹취] "죽여서 묻어." 박태산 육성 파일 공개


[리스트] 박태산에게 뇌물 받은 경찰/검찰 명단 (당신의 지역구는 안전한가요?)


게시물은 올라오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조회수가 초당 수천 건씩 올라갔다.

와 미친... 생방송에서 손가락 던진 게 진짜였어?


박태산 와인 셀러 실화냐? 사람 손가락을 수집해? ㄷㄷㄷ


녹취록 들어봐. 목소리 빼박 박태산임.


경찰 서장도 돈 받았네? 마포서장 OOO. 실명 깠다 ㅋㅋㅋ


알바 부대? 댓글 조작? 소용없었다. 진실의 파도는 댐으로 막을 수 없는 법. 실시간 검색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1위. 박태산 손가락 2위. 강도윤 형사 3위. 클럽 엘리시움 4위. 마포경찰서장 뇌물

수진은 모니터를 보며 차가운 커피를 들이켰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문자를 보냈다.

[판은 깔았어. 이제 즐겨, 파트너.]

"서장님! 큰일 났습니다!"

취조실 문이 벌컥 열리고 박 형사가 뛰어 들어왔다. 박 형사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휴대폰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뭐야? 노크도 없이!"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 좀 보십시오!"

박 형사가 내민 휴대폰 화면을 본 서장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이... 이게 뭐야?"

[단독] 박태산 후보, '살인 청부' 비밀 장부 유출... 경찰 수뇌부 연루 의혹

화면 속에는 장부의 한 페이지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리고 빨간 펜으로 밑줄 쳐진 이름. [마포서장 김철호: 사건 무마 비용 1억. (2023. 5. 12)]

"어... 어?"

서장이 뒷걸음질 쳤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의자에 주저앉았다.

"이게... 이게 왜 여기 있어? 이건 김 실장 금고에..."

"아, 김 실장 금고에 있던 거 맞습니다."

내가 킬킬거리며 끼어들었다.

"제가 가져왔거든요. 어제 밤에."

"너... 너 이 새끼..."

서장이 나를 노려봤다. 공포와 살의가 뒤섞인 눈빛이었다.

"죽여. 이 새끼 죽여!"

서장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려 했다. 이성을 잃은 것이다.

"서장님! 진정하십시오! 여기 취조실입니다!"

박 형사가 서장을 말렸다. 하지만 서장은 뿌리치고 총구를 내 머리에 겨눴다.

"너만 없으면 돼. 네가 조작한 거라고 하면 돼...!"

철컥. 장전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총구가 이마에 닿았다. 죽음의 공포? 아니. 나는 알고 있다. 놈은 쏠 수 없다는 걸. 놈은 살인자가 아니다. 그저 권력에 기생하는 겁쟁이일 뿐이다.

"쏘세요."

나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말했다.

"쏘는 순간, 당신은 박태산의 공범이 아니라 실행범이 되는 겁니다. 박태산이 당신을 구해줄 것 같아요? 꼬리 자르기 당하고 혼자 독박 쓸 텐데?"

서장의 손이 떨렸다. 방아쇠에 걸린 검지가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서장님."

나는 슬쩍 손을 들어 총구를 잡았다. 수갑 찬 손으로. 맨살이 닿았다. 서장의 손등에.

지잉-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아주 더럽고, 비굴한 기억들.

룸살롱. 박태산 앞에서 무릎 꿇고 술 따르는 서장. '충성하겠습니다! 의원님만 믿습니다!' 돈봉투를 챙기며 음흉하게 웃는 얼굴. 그리고 1장 사건 당시, 증거 인멸을 지시하던 목소리.

"작년 5월 12일. 강남 '로얄 팰리스' 302호. 박태산한테 현금 5천 받고, 나머지 5천은 수표로 받았죠? 그 수표, 마누라 몰래 내연녀 오피스텔 보증금으로 썼고."

"......!"

서장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총이 스르르 내려갔다.

"어... 어떻게..."

"말했잖아요. 전 다 보인다고."

나는 서장의 손에서 총을 뺏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박 형사는 입을 벌린 채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박 형사님. 뭐 합니까?"

내가 박 형사를 보며 말했다.

"현행범 체포 안 해요? 총기 오남용에 살인 미수. 그리고 뇌물 수수까지."

"어? 어...?"

박 형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장과 나를 번갈아 봤다. 그때, 복도가 소란스러워졌다. 구둣발 소리가 우르르 들려오더니, 취조실 문이 다시 열렸다.

"마포서장 김철호 씨?"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들이닥쳤다. 가슴팍에 달린 배지. 검찰. 그것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였다.

"당신을 뇌물 수수 및 직권 남용, 범인 은닉 혐의로 체포합니다."

검사가 영장을 들이밀었다. 서장은 바닥에 주저앉아 오줌을 지렸다. 끝났다. 권력의 개가 권력에 의해 잡아먹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강도윤 형사님."

검사가 내 쪽을 봤다.

"저 잡으러 오셨습니까?"

"아뇨. 참고인 조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검사가 내 수갑을 풀어주며 작게 속삭였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윗선들 싹 다 날아가게 생겼네요. 속이 다 시원합니다."

수갑이 풀렸다. 손목에 붉은 자국이 남았지만, 족쇄는 사라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태산은요?"

"지금 잡으러 갑니다."

경찰서 로비는 기자들로 인산인해였다. 나는 후문을 통해 빠져나왔다. 비가 그친 서울 하늘은 맑았다.

"고생했어."

익숙한 목소리. 이수진이 차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두부 한 모가 들려 있었다.

"뭐야, 이건. 나 감옥 갔다 왔냐?"

"비슷했잖아. 먹어. 액땜하게."

나는 두부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고소했다. 우리는 차에 탔다. 수진이 태블릿 PC를 건넸다.

"실시간 뉴스야. 박태산 캠프, 완전히 초토화됐어."

화면 속 뉴스 앵커가 상기된 목소리로 보도하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검찰이 박태산 후보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습니다. 국과수 긴급 감식 결과, 방송에 공개된 손가락과 한강 변사체의 DNA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와인병에서 박태산 후보의 타액 성분도 검출되었습니다.]

빼박이다. 이제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지지율은 0%대로 추락했고, 여당조차 박태산 제명을 논의 중이었다.

"이 정도면 끝난 거 아니야?"

수진이 물었다.

"글쎄."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불안했다. 박태산은 보통 놈이 아니다. 10년 동안 사람을 죽이고, 그 손가락을 수집하며, 그 위에서 태연하게 정치를 해온 사이코패스다. 그런 놈이 순순히 "죄송합니다" 하고 감옥에 갈까?

"놈, 어디 있어?"

"자택에 있다는데. 경찰이랑 검찰이 포위하고 있어서 도망 못 가."

"가보자."

"지금? 위험해."

"확인해야겠어. 내 눈으로 놈이 수갑 차는 걸 봐야 끝날 것 같아."

수진은 말없이 시동을 걸었다. 우리는 성북동에 있는 박태산의 자택으로 향했다.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경찰 통제선이 쳐져 있고, 기자들과 시위대가 뒤엉켜 있었다. 저택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박태산은 나와라!" "살인마를 처형하라!"

시민들이 계란과 돌을 던지고 있었다. 위엄 넘치던 대선 후보의 집은 순식간에 쓰레기장이 되었다.

"강 형사님!"

현장 지휘를 하던 최 팀장이 나를 보고 달려왔다. 그의 얼굴은 반가움과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팀장님. 상황은요?"

"안에서 문을 잠그고 버티고 있어. 체포 영장 나왔는데, 놈이 사설 경호원들 풀어서 바리케이드 쳤다. 진입하려면 시간 좀 걸릴 것 같아."

"안에 인질은요?"

"가족들은 해외 나가 있고, 지금 집에는 박태산이랑 경호원들뿐이야."

다행이다. 인질극은 없겠군.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박태산이 그냥 버틴다고?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팀장님. 저 집, 뒷문이나 비밀 통로 없습니까?"

"도면 확인해 봤는데 없어. 완전히 독 안의 쥐야."

그때였다.

콰아앙-!

저택 안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땅이 울리고, 저택 2층 창문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뭐야! 폭발?" "불이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안 돼!"

나는 본능적으로 폴리스 라인을 넘었다. 놈이 자살하려는 건가? 아니, 그럴 위인이 아니다. 이건 연막이다.

"수진아! 드론 띄워!"

수진이 트렁크에서 드론을 꺼내 날렸다. 태블릿 화면에 저택의 상공이 비쳤다. 불길과 연기가 자욱했다. 그리고.

"저거 봐!"

수진이 화면 한쪽을 가리켰다. 저택 지붕. 헬기 착륙장(Heliport)은 없었지만, 넓은 평지였다. 그곳에 검은색 헬기 한 대가 낮게 날아와 호버링(Hovering)을 하고 있었다.

"헬기?"

"미친... 도심에서 헬기를 띄웠어?"

밧줄 사다리가 내려왔다. 그리고 연기 속에서 박태산이 나타났다. 한 손에는 007가방을 들고, 한 손은 사다리를 잡았다.

"도망친다!"

최 팀장이 무전기에 대고 고함을 쳤다. [전 병력! 사격 개시! 헬기를 격추해!]

경찰특공대가 지붕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다. 탕! 탕! 탕!

하지만 헬기는 이미 고도를 높이고 있었다. 박태산이 사다리에 매달린 채 아래를 내려다봤다. 망원경이 없어도 보였다. 놈이 웃고 있었다. 악마의 미소.

"놓쳤어..."

최 팀장이 바닥을 쳤다. 헬기는 유유히 북쪽으로 사라졌다.

"아니요."

나는 헬기가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며 말했다. 진통제가 없어도 머리가 맑아졌다. 분노가 두통을 집어삼켰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수진이 태블릿을 조작했다.

"헬기 경로 추적 중이야. 파주 쪽으로 가고 있어. 아마 월북하거나, 공해상에서 배로 갈아탈 생각인 것 같아."

"따라가."

"뭐?"

"헬기는 못 따라가도, 놈이 내릴 곳은 알 수 있어."

나는 장갑을 꽉 꼈다. 놈은 도망칠 수 없다. 내 뇌 속에 놈의 모든 것이 들어 있으니까.

"김 실장 기억 속에, 비상 탈출 루트가 있었어."

"비상 탈출?"

"파주에 있는 폐공장. 거기에 놈의 개인 경비행기가 있어."

수진이 나를 쳐다봤다. 눈빛이 통했다.

"가자. 놈이 하늘로 뜨기 전에 날개를 꺾어버리자."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사이렌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 소리를 뒤로하고. 마지막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법정은 이곳이 아니다. 놈을 잡는 그곳이, 바로 사형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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