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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발가는 대로 걷는 여행

월미도 기행

여행과 문학

"월미도" 발가는 대로 걷는 여행


이 도 연


​수도권 전철 1호선 열차의 마지막 정거장인 인천역에 열차는 98개 역의 긴 여정의 종지부를 찍으며 맨 앞자리 운전석에서 종착역까지 열차와 함께했을 기관사가 내린다.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검은 가방을 손에 들고 열차와 이별을 한다.

소임을 마치고 또 다른 여행의 시발점인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 승객들의 안도를 뒤로하고 먼 길을 달려온 무거운 발걸음을 철로의 평행선 따라 아득하게 이어진 콘크리트 승강장 위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역 앞 광장에는 경인선 열차의 시발점을 알리는 표지석이 증기기관차의 모습을 하고 한국철도의 탄생역이라는 역사의 기록을 가슴에 훈장처럼 붙이고 소리 없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인천의 마지막 종착역인 인천역은 얼마 전까지 더이상 갈 곳 없는 종착역이었다.

그러나 수인선의 개통으로 인하여 옛 인천과 수원을 연결하는 협궤열차 구간을 일부 복원하여 오이도까지 가는 노선이 개통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경인선 열차의 종착역에서 시발점으로 다른 세계로 문을 여는 길이 열려 있어 열차의 종착역 상징은 이제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


인천역 터미널을 빠져나오면 차이나타운을 상징하는 문양을 아로새긴 중화풍의 황금빛 현란한 중화가라는 현판을 달고 이색적이고 멋들어진 모습으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중화가 건너 언덕길 위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장면 원조인 공화춘의 현판이 화려한 한문 필체로 자리를 잡고 우리나라 대표적인 차이나 거리답게 수많은 관광객의 발걸음으로 분주하다.


차이나타운을 뒤로하고 월미도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오분 정도를 가면 육이오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격전지인 바닷가 초입에서 만나는 또 다른 길의 종점인 월미도 해안에 이른다.

철시한 겨울의 느낌을 풍기는 횟집과 상점을 돌아들면 어선의 모형을 한 조각상 뒤로 월미도의 파란 물결이 한눈에 들어오고 잘 조성된 방파제 위에서 세월을 낚듯 길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강태공들과 조우한다.


월미도의 주인이 갈매기라는 듯 수많은 갈매기가 갯벌과 유람선 주변을 선회하고 새우깡을 던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맹렬하게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 날아든다.

월미 문화의 거리는 인천의 랜드마크 답게 각종 행사와 문화의 장이 열리고 수많은 사람이 바다와 볼거리가 어우러진 넓은 광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공연장 위로 길게 이어진 수십 개의 연들이 서해의 부드러운 바람과 햇살에 물빛 닮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 끝까지 닿아 펄럭이고 음악에 맞추어 갈매기의 무희가 파란 바다를 가득 메우며 날고 있다.


월미도의 바다는 햇살을 빛으로 반사 시켜 검은 갯벌을 드러내면서 먼바다 저편에 길게 누워 있고 썰물에 빠져나간 바다는 갯벌 밑으로 가라앉아 숨 고르기를 하다 밀물에 다시 일어나면 갯벌 위로 황톳빛 파도를 만들어 떠오르기를 반복한다.

서해의 바람은 파도를 연신 뭍으로 밀어붙이며 밀물을 재촉하고 있으며 월미도 앞바다에 물길을 막고 덩그런 하게 떠 있는 작약도가 오늘따라 코앞에 있는 듯하다.

이제는 작약도가 아닌 원래 이름인 물치도라 불러야하지만,

월미도를 떠나는 유람선의 음악이 경쾌하게 부두에 울려 퍼지고 때마침 불어오는 해풍의 시원함에 발걸음은 더없이 즐겁다.


바닷가 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 방파제를 걷다 보면 좌측은 신나는 음악의 울림 속에 합창하듯 터지는 웃음과 청춘들의 비명으로 가득한 젊음의 광장인 놀이공원이 경쾌한 표정으로 가득하고 우측 바닷가 저 멀리 끝자락에는 하얀색 등대가 따사롭게 부서지는 밝은 햇살 아래 빛의 눈을 닫아 걸어 빛을 소멸한 채 검은 밤바다를 그리워하고 빛을 밝히는 존재임을 기억하며 한 폭의 그림처럼 월미도 바다 저편을 바라보며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다로 이어진 길의 끝에서 안쪽으로 도로를 건너 월미산의 입구로 들어서면 좁은 입구에 다소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월미산은 북성동에 위치한 108m의 낮은 산으로 육이오 전쟁 이후 50 십여 년간 해군과 해병대가 주둔하며 민간인의 출입을 제한하다 개방된 지역으로 자연의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이다.

계단을 따라 오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조선 숙종 때 축조된 것으로 추측되는 월미 포대를 재연해 놓았다.

인천의 관문으로 들어오는 외국의 배들은 현대화기로 중무장하고 우리의 땅을 짓밟으려 했을 것이고 열악한 무기로 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병사들의 함성과 포성이 빈 하늘에 울려 퍼지는 환상에 잠긴다.

밀려오는 바다가 파도 소리는 아련하게 들려오고 푸른 바다 언덕 위에 잔가지가 바람에 흔들릴 때면 해풍에 흙먼지 이는 이곳에 수심 가득한 나는 역사의 뒤안길을 소리 없이 걷는다.


포대 바로 위로 사거리가 나오면 좌우로 월미산을 한 바퀴 도는 순환길을 지나 정상으로 나지막한 언덕길을 천천히 오른다

산길 좌우로 커다란 벚나무가 즐비하다

지난봄 벚꽃이 터널같이 우거져 하늘을 가릴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길 위로 눈처럼 꽃송이가 펄펄 날리는 환영을 떠 올리자 흐뭇한 미소가 저절로 난다.

아직 겨울의 끝자락으로 향하는 시점에서 해풍에 말라버린 나뭇가지가 하늘 높이 뻗어 있는 가지 끝을 바라보다 파란 하늘 위로 하얀 궤적을 길게 그리며 지나가는 비행기를 한참을 바라보며 꿈 푸른 동심에 젖는다.


동산길을 조금 오르자 커다란 소나무 한 쌍이 서로 끌어 앉고 회오리치는 모습으로 서 있어 월미 8경으로 연리지 사랑의 나무라고 한다.

바로 밑에는 붉은 하트 조형물로 사랑의 의자을 만들어 놓아 젊은이들이 어깨를 나란히 사진을 찍으며 즐겁고 길 따라 오르막 길옆으로는 초록색 리본이 물결을 이룬다.

남녀노소를 막론 하고 사랑의 기도와 가족의 축복을 비는 소망의 글귀를 써서 나무에 매달고 길을 떠난다.


설이 막 지난 바닷가의 해풍은 제법 차갑게 불어오지만, 월미산의 언덕 위에 감청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유난히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따사로운 햇살은 흘러내리는 비단의 질감처럼 부드럽고 감미롭다.

월미산 정상 주변에 일제 강점기에 신사가 있었다는 현판이 눈길을 끌고 정상에 설치된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팔미도 앞바다와 송도와 영종도를 가로지르는 인천대교는 바다와 사람, 사람과 바다 무한의 자연 앞에 끝없이 도전하는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가 인간의 힘을 스스로 자임하며 바다를 가로지르는 물빛 반짝이는 바다 위 점과 선들의 연결 앞에 깊은 감탄을 한다.


월미산 정상을 뒤로하고 내륙의 언덕을 향해 내려서면 인천의 모든 항구의 모습을 부드러운 학의 날개로 품듯 한눈에 들어오는 포근한 둥지 같은 지형에 바람도 피해 가는 평평한 휴게 쉼터에 도착한다.

한참을 걸어온 탓에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파 빵과 오렌지 물 한 모금으로 배고픔을 달래니 한 것 힘이 난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저도 배가 고픈지 푸드득 날아와 바로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오렌지와 음식 냄새에 넋을 잃었는지 한 조각을 던져 주자 갈증에 오아시스를 만난 양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맛있게 먹는다.

직박구리의 평안한 식사를 위하여 조용히 자리를 비워준다.


휴게 쉼터에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월미도 전망대의 계단을 천천히 오른다.

월미 전망대는 전체가 유리로 되어있는 23m 높이의 아름다운 조형물로 새해가 되면 해맞이를 하거나 달 밝은 밤이면 소원을 비는 명소이기도 하다.

정상에 오르니 멀리 팔미도 앞바다와 연안부두, 북항의 전경과 자유공원 그리고 내항에 떠 있는 거대한 화물선과 내항으로 들고나는 배들을 도크를 통해 예인하는 볼거리와 함께 인천 연안의 아름다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4층에 있는 달빛마루 카페에서 마시는 카푸치노 한잔의 풍미는 오늘의 노고를 잊기에 충분한 즐거움과 노곤한 행복감으로 밀려온다.


달빛마루 아래로 보이는 바닷가 내항에서 움직이는 사람과 중장비의 분주한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정면 윈도에 직진 방향 팔라우 코로르 3430km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8384km 라고 쓰인 글귀가 마치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다는 충동으로 가슴 설레 이는 흥분이 일어나고 시야는 저 멀리 푸른 하늘을 막연하게 바라본다.


전망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지상으로 내려와 월미산 정상 옆으로 숲속 깊숙이 길게 내려앉은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여러 종류의 나무와 잡목들로 가득하고 화백나무와 장군나무의 우람한 위용이 하늘을 찌른다.

월미정원의 입구는 민속행사로 북적이고 제기차기 투호놀이 우리 놀이 한마당이 신명이 나고 역시 감칠맛 나게 착착 감기는 맛이 일품인 우리 민요 가락이 흥을 돋운다.


월미 정원에는 연꽃이 피는 연못인 창덕궁의 애련지의 모습과 소쇄원, 국담원등 열 곳 정도의 우리나라 전통 정원의 모습을 아름답게 재연해 놓았고 특히 부용정의 단아한 아름다움에는 흠뻑 취해본다.

정원을 걷고 있자니 조선 시대 정원의 정취에 빠져 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아직 찬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오는 정원 이것만 물가에 버들강아지는 하얀색 솜털을 보송보송하게 눈을 틔우고 말라버린 나뭇가지 끝에는 연한 녹색의 새순들이 기지개를 켜며 앞다투어 피어난다.

누렇게 변색되어 있는 지난겨울의 풀들 사이로 생명의 소리가 들리며 버석하게 말라버린 대지를 비집고 꼬물거리며 어린 새싹이 얼굴을 내민다.


나는 아직 찬바람에 고개를 움츠리지만 봄을 기억하는 생명은 어김없이 바람 앞에 당당하고 봄을 위한 준비들로 분주하게 제 몫을 다한다.

연못은 아직 얼어 있어 해빙의 그 날을 기다리고 땅 위에 잔설이 흩어져 있지만 머지않아 봄의 포근한 전령사들이 바람을 타고 소리 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정월의 찬바람을 마주하고 걸어온 한나절 여정이었지만 햇살만큼은 맑게 부서지며 울 밑에 졸고 있는 새싹을 깨우기에 충분한 따사로움이었다

사박사박 걸어가는 내 발걸음 뒤에도 봄이 살포시 따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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