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기행
자연도(紫燕島)에는
은빛 제비가 날아간다
이 도 연
새벽과 어둠을 밀고 당기던 그날, 누군가는 길을 나서고 누군가는 새 삶의 꿈을 꾸는 시간,을 만들어간다. 초침과 분침이 얼마 남지 않은 궤적을 따라가며 삶의 애착과 욕심을 부리며 정직하게 흘러간다. 누구랄지라도 지금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며 오늘이 봄날이다.
아직은 길 위를 걸을 수 있으니 내 인생의 화양연화가 황금보다 소중한 지금이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바람 부는 데로 발길 닿는 데로 길을 떠난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환승을 하고 또 버스를 타고 길 위를 마냥 걸어서 자연도(영종도)로 길을 잡는다. 영종도의 옛 지명은 자연도(紫燕島)이다.
자줏빛 제비가 찾아오는 신비의 섬이라 옛 선인들이 부르던 자연도, 제비가 날아가는 형상을 닮아 자연도 일까?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서면서 용유도를 포함한 여러 개의 무인도를 연결해 제비가 찾아오는 섬의 모습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섬이 되었고 신들이 빚어놓은 섬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했다.
그래서인지 제비 대신 은빛 날개를 반짝이는 비행기가 저무는 석양을 등지고 빛으로 날아오른다.
인천국제공항 철도를 타고 섬이 아닌 섬이 되어버린 영종도로 가는 길,
바다가 밀려가고 밀려오는 드넓은 갯벌이 검게 드러난 벌판 저 끝에 홀로 떠 있는 무인도가 바다를 향해 부표 없이 흘러가고 있다. 저 멀리 외로운 섬 끝에 황량하게 멀리 달아난 갯벌 저편의 바다는 너무 멀어 아득해서 가늠하기 어렵다.
썰물이 지나간 갯벌에도 생명이 머물고 눈에 보이는 것은 구릿빛 불모의 땅일지 모르지만, 함초나 칠면초, 갯지렁이, 게나 고동, 짱뚱어 처럼 그곳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에게는 삶의 보금자리이다.
마을버스로 십여 분 만에 천년고찰 용궁사 입구에 도착한다.
용궁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1.350년 된 고찰이다.
잔솔가지와 잡목이 우거진 숲길을 걸어 용궁사로 오르는 650m 길은 한적하고 평화롭다.
백운산 자락 나지막한 언덕에 둥지를 튼 용궁사는 인적이 없어 한가로워 적막이 흐르는 숨결이 느껴진다.
물아일체(物我一體)라 눈에 보이는 사물과 정신세계가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단정한 경내 풍경이 고즈넉하다.
용궁사 백미는 구멍이 숭숭 뚫린 천삼백 년 장구한 세월을 살아 섬을 지키고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다.
할아버지 할머니 나무로 불리는 천년 느티나무는 전각 중앙을 지키고 있는 미륵보살 못지않게 경건하여 고개 숙여 경배를 한다. 천삼백 년 억겁의 세월을 살아온 숨결 앞에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이 어찌 주눅들지 않을 수 있을까! 절로 허리 굽혀 합장할 수밖에 없다.
절 가장 위 쪽에 있는 소원 돌탑에 올라가 삼배를 하고 늙은 호박 만한 돌을 시계방향으로 돌려 보았으나 당연한 결과 이겠으나 기도의 효험이 부족한 지라 아직 더 수행과 정진을 해야 하는 점꽤가 나왔다.
경내 고색창연한 단청 아래 청아하게 울리는 풍경소리가 파란 하늘을 밀어내며 흔들린다.
맑은 울림이 발걸음도 가볍게 백운산을 등지고 언덕을 내려간다.
한 시간 사십분 뚜벅이를 자처하며 관창 마을을 지나 십 여분 걸어가자 시골스러운 풍경은 간데없고 도시의 고층 빌딩 숲을 헤치며 영종하늘 도시의 웅장한 위용이 모습을 드러낸다. "빛을 담은 길, 이제는 내가 빛을 낼 차례"라는 문구를 기억 저장소에 충전하며 길 위를 걷는다.
여단포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 힘들었을 발을 달래기 위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다시 길을 나선다. 언제나 길 위에서 즐거운 나를 발견하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바닷가 옆으로 길을 낸 송산공원을 지나 바다 건너 월미도를 바라보며 힘차게 페달을 발아야 달릴 수 있는 레일바이크 철마가 먼저 길을 열어간다.
영종도 앞바다가 내러다 보이는 곳에 운요호사건을 통해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은 역사를 전시해 놓은장소인 영종진에 도착한다.
1875년 9월 20일 운요호 사건으로 숨진 35명과 포로로 잡혀간 16명의 병사를 위로하는 충혼비를 세우고 영종진 역사 박물관을 건립하여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영종진 정자 옆 대포가 포성을 울릴 것 같은 모습으로 월미도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갈잎으로 변색된 무궁화 씨방이 해풍에 말라가고 석양처럼 불게 타오르는 해당화 열매가 담장에 기대여 짭조름한 갯내음을 먹고 자라며 익어가고 있다.
십여 분을 걸어 내려가 닿은 구읍뱃터는 평일이라 한적한 포구의 풍경이다. 수십 마리 떼 지어 앉아 있는 갈매기가 포구의 주인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서 작약도라고 불리던 물치도가 코앞이라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 같이 바다에 둥실 떠있다.
학창 시절 가본 이후로 무인도가 되어 갈 수는 없지만 추억은 아련하다. 패가가 되어 쓰러진 흉물스러운 건축물이 여기저기 보인다.
버러진 섬에도 꽃은 피고 바람이 지날 때마다 나뭇가지는 몸을 흔들어 어서 오라고 수 십 년 은폐된 세월 속에서도 살아 손짓한다.
섬이 바다를 밀고 파도는 여전히 거칠어 물치도라 팔미도 앞바다 세찬 물결이 섬을 밀고 있다.
세종호는 선착장을 달려오는 지각생을 기다려주는 호의를 베풀어 이분 늦게 뱃고동 소리를 신호로 닻을 올리고 하얀 치아를 들어내는 물보라를 일으켜 세워 유유히 파도를 가르며 출항하다.
뱃고동 소리를 신호로 배만 출항하는 것이 아니라 방파제 옆에 소나무 군락처럼 모여있던 갈매기 떼도 일제히 비상하며 하늘을 선회한다.
붉은 눈과 날카로운 부리를 무기로 급강하하며 낚아 채는 새우깡이 그들의 목표다.
새우깡 한 조각에 구겨버린 지 오래된 바닷새의 체면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된 듯 잘 다듬어진 숙련공의 날갯짓으로 선미와 선수를 넘나들어 새우깡을 향해 정교하게 날아든다.
아이들과 연인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물비늘이 비산하는 파도 위로 날아오른다.
월미도 앞바다를 미끄러지듯 멀어져 가는 화물선은 원양의 바다로 향하고 노을은 바다를 붉게 태우며 눈부신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시나브로 잠들어가고 있다.
여행자의 시선 끝에 머무는 바다는 아름다웠다. 일몰 시간이 하루를 마무리하지만, 나그네는 또 다른 섬을 향해 떠나는 출항의 꿈을 꾸며 노을 속에 시선이 잠긴다.
그 바다의 꿈
밀물이다
소리 없이 다가오는 저들 아우성을 마중한다
원양 바다를 헤엄치다 기진해서 돌아오는 파도
갈매기는 덤으로
수평선에 길고 긴 궤적을 남기며 날아오른다
낮게 배를 깔은 포복 자세로 서서히 스며드는 물길이
검은 갯벌을 부드럽게 적신다
언제 빠져나갈지 모르는 나그네의 발길처럼
불안한 생각은 언제나 정답인 거지
철썩철썩 밀려오는 그림자 뒤로 어둠이 새벽을 밟으면 썰물이 진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돌섬은 떠돌이가 되어 뭍에서 멀어지고
떠돌아다니는 것들은 바다를 경계 삼아 멀어지고 깊어진다
이별이라는 이름으로
섬은 점이 되어 떠나고 막연한 것은 그리움이며
그리움은 바닷물에 데인 것처럼 쓰리고 아리다
섬을 부르는 말은 허공에 뿌려지고 뿌리 없이 바다를 떠돌았다
파도는 투명하고
부서지는 포말이 바람에 밀리기 전에 선명하게 빛이 났다
섬은 하얀 칼끝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집요하게
멀어진다
그 섬은 언제나 그랬다.
이동경로
마을버스ㅡ7호선 산곡역ㅡ인천 2호선 석남ㅡ공항철도 검암ㅡ영종역ㅡ마을버스ㅡ용궁사ㅡ도보5.3kmㅡ송산공원ㅡ구읍뱃터ㅡ세종호ㅡ월미도ㅡ개항장 신라의 달밤 식사)ㅡ국철 동인천ㅡ부평역ㅡ버스ㅡ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