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열심히 해야 하는 걸까요?

니 것도 아닌데 왜 열심히 하냐는 사람들에게

by 고오

나도 다른 ‘닝겐’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잠들기 전 릴스 순회는 성지순례만큼 중요한 루틴 중에 하나인데, 최근 릴스에서 가비의‘Love your Life’ 지론이 떴다.회사는 돈을 버는 곳이니 자아실현을 회사에서 꼭 할 필요는 없다고, 퇴근하고 혹은 주말에 본인의 자아를 찾으면 되는 거라고……맞는 이야기지 뭐. 내가 열심히 한다고 조직은, 회사는 크게 바뀌는 곳도 아니고, 드라마에서 처럼 주인공의 성장과 성공이 회사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경우들도 뭐 거의 없으니까. 운이 좋게 직장 근처에서 산다면 7시, 대중교통 1시간 이상 걸린다면 6시에 일어 나서,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모른 상태로 버스에 지하철에 몸을 싣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9시부터 6시까지 루팡을 꿈꾸지만 그 어느 노비보다 놀라울 정도로 소비되다가 칼퇴하여 집에 들어가면 8시… 운동까지 하는 부지런한 노비라면 10시는 되어야 내 세상이 펼쳐지는데… 침대에 누워 도파민에 허덕이며 잠들어 버리는 회사원의 노곤함을 안다면 ‘밖’에서 찾는 자아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24시간 중 자는 시간 빼면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겐 Job이 곧 Life의 대부분이니까. 근데.. 자아실현은 밖에서 하라는 데, 대부분 회사라는 밖에 사는 우리들은 대체 어디서 자아실현을 해야 할까? 일, 꼭 열심히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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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노동부가 제시하는 표준 근로계약서를 보면, 근로 계약기간, 근무 장소, 업무의 내용, 근로 시간, 휴무일, 임금의 수준, 연차 등의 계약 내용들의 ’정량‘적인 내용들만 들어 있을 뿐, 그 계약을 수행해야 하는 당사자의 ’정성‘적인 부분은 사실 나와 있지 않다. 말 그대로 취업 규칙에서 정하는 ’신의 성실‘만 수행한다면-대부분 기업에서의 취업 규칙에서도 얼마나 열심히‘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직장 생활에서 딱히 문제가 발생하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직장 생활을 볼 때, 과연 9 to 6 동안 숨만 쉬고 적당히 한다면, 아무 문제 없이 퇴근할 수 있을까? 우리의 상사-라고 쓰고 꼰대라고 읽는- 사람들은 우리를 그냥 두지 않는다. 뭐 대부분 뭐 했냐며 혼나겠지. 성실은 언제나 근로 환경에서 1순위로 제시되는 필수 조건이니까. 얼마큼 일해야 얼마큼 ’성실‘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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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료 K와 회사에 대해 한탄을 하던 중 나에게 명언을 던졌다. 어느 누가 회사에 대해 화를 내고 있다면, 역설적으로 그 사람은 밥값 이상을 하고 있는 거라고.

무슨 말인가 했더니, 본인이 업무에 대해 익숙하지 않고, 잘 수행하지 못하고 위축되어 회사에 대해 화가 난다기보단, 자책하거나 특정인을 비판할 뿐이라고. 만약 내가 조직에 대해, 회사에 대해 화가 나고, 특정 업무 이상의 부분에 있어서 회사의 의사 결정에 화가 난다면 그건, 스스로가 밥값(이라고 하고 월급값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것)을 잘하고 있는 거라고. 난 절반은 동의, 절반은 동의하지 않았다. 나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정말로 이직을 하고 적응하는 그 기간에는 누가 뭐라 하든, 일이 많든 적든, 일이 잘 못 되는 경우 다 내 탓으로 돌렸던 것 같다. 아직 내가 잘 못하니까 발생한 거라고. 그런데, 익숙해지고 밥값을 해 난 다음 그 이후부터 나의 영역에 침범하거나 혹은 선을 넘는 의사 결정이나 과중한 업무가 돌아오면 화가 났다. 아마 스스로 밥값의 수준을 마음속에 이미 정하고 그 선을 넘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뭐 근데 그것 모두 다 ‘나의 기준’일 뿐 타인이나 조직, 혹은 회사가 정한 기준은 아닐 뿐이고, 자의식이 과잉한 어떤 사람은 객관적으로 밥값을 못하는 상황에도 모든 것이 부당하다며 화를 내기도 하였다. 결국 그 모든 ’밥값‘의 기준은 내 마음에서 정한 것이란 소리다. 그러니 우리는 회사 다니면서 자기 월급이 추——웅분 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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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얼마큼 열심히 하는지, 그 열심의 결과가 어떤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난 딱히 열심히 안 하는 데 상대 급부라는 베네핏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된 적도 있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워커홀릭 사이에 낀 보통의 닝겐이라면 뭐 성실하지 못하단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았을지언정, 장님이 한 방에 문고리를 잡았을지언정,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곳이 회사일 수도 있으니, 생각보다 모든 일은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그 결과가 결정되는 날도 많았다. 결국 운칠기삼 직장 생활에서 내가 살아남는 방법은 ‘항상성’ 말곤 답이 없었다. 꾸준함. 뭘 하든 그대로 꾸준히 하는 것 이외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지나고 나서 보니 열심히 하는 것보다 꾸준히 하는 것이 더 어렵더라. 꾸준해야 틈이 없고, 틈이 없어야 일이 잘 된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면, 꾸준한 사람이라도 되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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