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워라밸을 지켜야 하는 걸까요?

현생에 얼마 남지 않은 '샤이워커홀릭'이여! 일어나자!

by 고오



"아니, 요새 애들이 뭐 회사 일에 관심이라도 있긴 한가 뭘.. 그래서 내가 고오 말고는 믿을 수가 있어야지...

미안해.. 내 마음 알지? 그러니까 이것도 좀 해줘~ 응?"


나라고 '요새 애들'과 뭐 그리 다르겠는가. '90년생이 온다'의 대유행 이후, 직장생활에선 90의 앞과 뒤로 새로운 헤게모니가 생겼다. 꼰대는 나이나 성별이 아니라 신분이 되었듯, MZ= 요새애들의 대명사가 되었다. 대학 입시도, 취업도 쉬웠다는 X세대 김 부장과 요새 애들 욕할 때 같이 혀를 차는 n세대 차장님, 그리고 나, 그 밑에 '요새 애들'의 대명사 K - 우리는 조선시대는 아니지만 이미 회사의 계급 안에 층층이 들어 가 앉아 있었고, 계급의 순서와 다르게 권력은 반대로 작용하여, 김 부장은 매일 K의 눈치를 본다.


"고생하셨습니다, 먼저 들어가 볼게요.~ 라니. 아니, 자기 사수는 아직도 집에 못 갔는데, '선배님 뭐 시키실 일 없으실까요?' 이렇게 물어보는 게 먼저 아니야? 자기는 화 안나? 아니, 이게 말이 되냐고? 참나. 부장님은 대체 뭐 하시는 거야?"


차장님은 또 시작이다. 나는 괜찮다는 데, K의 말 끝에선 미소만 던지고 아무 말도 못 하면서, 그의 그림자가 사라지자마자 내 쪽으로 의자를 당겨 K의 흉을 보기 시작한다. 나의 칼퇴를 막는 건, 아마 K의 나태함이 아니라 차장님의 오지랖 때문이 아닐까.


"뭐, 자기 할 일 다 했으니까 집에 가는 거죠 뭐. 저희 때랑 같나요."

저희 때라니... 저희 때라니.. 나의 혀를 뽑고 싶다. 내가 사용한 어휘는 바로 힘을 갖고 날아가 차장님 마음의 안식을 주었다. 본인이 틀리지 않았다. 나와 너는 같은 사람이다. 고로, 우리는 험담이 아닌 건전한 담론을 나눌 뿐이고, K는 '우리'와 다른 집단으로 나뉜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장님은 의기양양 개선장군이 되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래, 회사 생활은 생각보다 단순해서, 끊이지 않는 월급과 공공의 적, 그리고 나의 든든한 동지, 이를 무시하는 방관자만 있으면 무엇이든 버텨 나갈 만한 에너지가 생긴다. 이 맛에 험담도 하고 앞담화도 하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근로소득으로 부의 단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안 기성세대에 들어 선 MZ세대를 비롯한 일반적인 직장인들은 이제 더 이상 회사에 목매달지 않는다. 평가와 승진, 그로 인한 연봉의 상승은 주식이나 부동산의 폭등에 비하면 개미 오줌과 같이 가벼이 여겨지며, 로또보다 확률이 높은 코인에 투자하는 것이 더 똑똑해 보이는 것이 현대 경제의 논리가 되었다.


회사 생활에 이룰 것을 다 이루고, 자녀의 학업만 채우면 가장으로서 모든 역할을 다 한다는 우리의 선배들과 다르게, 30대 아직 겪을 것이 많은 n세대 예하 MZ세대들은 더 이상 회사 생활에 흥미가 없는 건 자명한 일이다. 워라밸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내포한 욕구는 바로 "라이프로 향한 의지" 아닐까. 나의 성공이 회사에 있어도, 그러면 안된다고 사회가 울부짖는 느낌은 비단 나만 받는 느낌은 아닐 것이다.


"선배는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해요? 돈도 많으면서."

근로 노동의 가치를 한번에 후려치는 K의 말. 웃으며 넘기지만 속은 쓰리다. 회사의 성공이 본인의 성공과 동일시 한 김부장은 이제 은퇴를 앞두고 허망함에 '라이프를 쫓아 가라'라고 하고, 아무리 날고- 기고- 뛰어도- 주식으로 대박난 친구나, 금수저로 사업하는 친구를 뛰어 넘을 수 없다며, 번 만큼 쓰면서 비싼 월셋방을 전전하는 K의 행복추구권도 결국 회사가 아닌 '라이프를 쫓아가라'는 욕구의 발현이다.

이 둘과 나는 삶의 모양도 다르고 방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를텐데, 그냥 그렇게 살지 못하니 내가 바보인가 하는 생각이 들며, 열등감과 자괴감이 든다. 그냥 끼었다고 해야 할까. 난 그냥 일이 좋아서, 그래서 잘 하고 열심히 하고 싶을 뿐인데. 회사 일을 열심히 하는 순간, 무모한 무지랭이 된다. 워라밸을 모르는 무지렁이. 회사는 나를 배신할 '예정'이고, 난 그 배신을 그냥 받아 들여야, 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는 사람. 뭐 다 맞는 말인거 알지만, 헤어짐을 알면서 우리 모두 연애를 하듯, 일을 열심히 하기도 전부터 그렇게 말하면 김이 샌다고 해야 하나. "라이프 추구권"자들의 거센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현생에 얼마 안 남은 "워커홀릭"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난 워커홀릭인지 몰랐다. 그냥 시키는 것만 할 뿐. 시키는 것만 잘 하자고 할 뿐인데, 어느 새인가 내 주변은 나를 일에 몰두하는 워커홀릭으로 본다. 그 이후 난 그냥 나를 워커홀릭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게 나에게, 그들에게 편한 방식이니라면, 기꺼이 그렇게 되겠다.



근로의 가치는 사실 정량화 하거나 수치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변수도 많고 인풋과 아웃풋이 동일하지도 않다. 일을 적게 했는데 결과가 좋을 수도 있고, 어마 어마하게 준비를 많이 한 프로젝트도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회사 일은 적당히 애쓰지 않는 것이, 열심히 하지 않는게 마음 편하다고, 누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도, 그게 맞는 답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평가는 그해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방정식의 변수지만, 그 사람의 역량은 방정식의 상수와 같다. 상수의 값을 크고 정확하게 짜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게, 나의 뜻인데, 그것이 그렇게 나쁜 것일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일을 하는지 회사에서 나를 꼭 알아봐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제일 그것을 잘 아니까, 누군가에게 부끄럽게 일하지 않으려는 게, 그렇게 눈총을 받을 일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시대착오적인가 싶기도 하다.

회사라는 곳이 이제 다 같이 열심히가 아닌, 각자 알아서 자신의 역할의 안에서 자기 할 것만 하는 곳이 되어 간다면, 샤이워커홀릭들의 갈 곳은... 어디인가하는 생각이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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