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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글 Nov 06. 2023

다정함에 대하여

후배가 상담할 것이 있다고 퇴근 후 카페를 제안했다. 원래 나는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사회생활을 하며 조금씩 그 스킬이 쌓였기에 오늘은 거절을 하려던 참이었다.


사실 오늘 나는 굉장히 피곤다. 3, 4일 연속으로 늦은 야근을 했고 정신적으로도 조금 지쳐 있었다. 그러던 와중 오랜만에 일찍 퇴근을 하는 날이라, 머릿속으로 꽤 많은 계획을 세워 두었었다. 갈피를 잡지 못한 브런치 글의 뼈대를 잡을 생각이었고, 늘 말만 늘어놓았던 텝스 공부를 시작해야 했다. 아, 그리고 잔뜩 쌓여 있는 빨래도 해결해야 했다.


다른 날은 어때,라고 말하려 했는데 울먹이는 후배의 얼굴을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머릿속의 투두리스트를 미룸으로 바꾸어두고 제안을 수락했다. 이야기는 생각보다 늦게 끝났고, 집에 오는 지하철 안 나의 모든 에너지는 소진되어 있었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지하철 문이 열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빈자리에 앉았다.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볼 힘도 없었다. 이어폰을 꽂고 가만히 눈을 감은 채 방금까지의 만남을 곱씹었다.


듣기만 하는 것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피곤하구나, 근데 내가 해준 조언이 맞는 건가, 내가 뭐라고 조언을 해 준담, 내가 한 말 중에 실수한 말이 있지는 않았을까,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는 내가 괜히 미안해서 더 열심히 들었는데, 그게 티나진 않았을까.






나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이것저것 말했던 후배를 떠올리니 옛날의 내가 생각났다. 지금에야 적당한 연차가 되고, 적당한 나이가 되니 적당히 웃는 적당한 사회적 자아가 생겼지만, "적당한"에 도달하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실패가 있었다. 너무 정을 많이 줘서 슬프기도 했고,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는 자명한 진리를 인정해야 했다. 회사라는 공간 안에서 만난 모두와 언니, 오빠, 동생 할 수는 없었다.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는 회사에 100의 에너지를 가져온다면 70은 일하는 데 쓰고, 30은 마음을 주는 데 쓴다. 이 30에는 방긋 웃는 에너지,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흘리는 에너지, 스몰토크를 하는 에너지, 적당한 리액션의 에너지 등등 나의 다정함을 포함한다.


오늘은 내가 가져에너지 30이 뭐람, 거의 90을 다 끌어다 썼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피곤을 느끼는구나 깨달았다.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을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는 나이지만, 이런 걸 보면 나는 후천적으로 다정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는 내가 꽤나 둥글둥글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치만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둥글둥글한 성격도 에너지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고 있다. 아마  때 에너지가 넘쳐서 자연스럽게 되었던 다정함 덕분에 내 자신이 동그라미라고 착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요즘 들어 나는 동그라미가 아닌 각져 있는 별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날이 선 사람이 되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반대로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은 엄청난 체력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콜록거리는 옆자리 동료를 보고 모른척 가만히 있는 것과 "괜찮아?"라고 한 마디 건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일하던 걸 멈추고, 상대에게 관심을 돌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약을 챙겨 주고. 이처럼 다정함에는 꽤나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세월이 지나고,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줄수록 노력하기가 귀찮아진다. 그래서 매일매일 나에게도 남들에게도 다정해지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선천적으로 다정하지 않더라도, 오늘도 나를 버리지 않고 동글동글 따뜻한 별이 되는 법을 찾으려고 무던히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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