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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글 Nov 20. 2023

적당한 다정함이란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이렇게 정이 많아서 어떡해."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유난히 정을 잘 주었다. 어릴 때는 사람, 사물 가릴 것 없었다. 커가면서 작아진 옷이나 신발들도 어떻게 버리냐며 엉엉 울었던 적도 많았다. 엄마아빠가 버릴까 봐 신발을 품에 꼭 안고 잠들었던 적도 부지기수였다.


엄마아빠가 나를 본격적으로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아홉 살 때부터였다. 초등학생 때 우리 집은 시골의 작은 빌라였다. 우리 집은 가동, 외할머니댁은 라동, 친한 친구들은 마동, 바동에 살았다. 그중 바동 뒤에는 커다란 개 두 마리, 토끼 세 마리, 닭 다섯 마리(비슷하게 생겨 유일하게 이름을 못 붙여 주었다), 햄스터 등 다양한 동물들이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와 함께 토끼들에게 상추와 당근을 주었고 닭들이 낳은 계란을 구경했다.


여름방학이 되고, 같은 동네 살던 친구들의 가족들과 함께 계곡으로 2박 3일 여행을 다녀온 날이었다. 오랜만에 동물들을 보러 갈 생각에 아빠를 졸라 상추를 강탈하고(?) 친구와 함께 바동 뒤쪽으로 갔다. 개들을 잔뜩 쓰다듬고, 토끼들한테 상추를 주고 닭들에게로 갔는데 닭이 두 마리 사라져 있었다.

 

다 비슷하게 생겨서 이름은 못 붙여 주었어도 다섯 마리인 것은 확실히 기억했었는데. 친구랑 계속 어디 갔지. 왜 없어졌지 이야기하는데 닭 주인인 할머니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쪼르르 달려가서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 왜 닭이 세 마리밖에 없어요?"



"아, 그거 얼마 전에 복날이었잖아."



"복날이 뭐예요?"



나의 다정함이 최초로 배신당한 일이었다. 할머니의 무자비한 팩트 폭력에 나와 친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할머니에게 얘기를 듣자마자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우리가 얼마나 예뻐했는데. 할머니는 도둑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집에 와서 정말 며칠 내내 울었다. 오죽하면 닭 주인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떡을 들고 오시기도 했었다.







커가면서 내가 정을 주는 대상은 점점 사물, 동물에서 사람으로 확장되었다. 마음을 잔뜩 준 상대가 시절인연임을 알았을 때, 자연스럽게 멀어져 갈 때마다 너무 슬펐다. 이러다 보니 내가 가진 다정함이 유약함이라고 생각해서, 혹은 그로 인해 내가 겪는 슬픔이 싫어서 나를 부정한 시기도 있었다.


나를 나보다도 더 아껴주는 언니는 제발 무턱대고  사람 믿지 말라며 카톡방에 이런 공지를 띄워놓기도 했다.

굉장히 디테일하다




인간은 성장하는 존재이니 나도 조금씩 성장했다. 내가 가진 성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덜 슬퍼하려고 했다. 마음도 주고 정도 주되 대신 기대는 하지 말자고 늘 다짐했다. 상대가 내 다정함을 원한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내 마음을 준 건데, 결과까지 바라는 것은 너무 놀부심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요즈음 나름 정돈된 머릿속 가치관이 흔들리는 일이 있었다. 지인의 고민거리를 실시간으로 듣다 보니 거의 내가 겪는 것처럼 모든 일을 함께하게 되었다. 지인의 고민은 생각한 방향은 아니지만, 어쨌든 해결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마음을 쓰고 걱정했던 것에 비해 그 무게는 가벼웠고, 나는 엄청난 허탈함과 배신감을 느꼈다.


친한 친구와 저녁을 먹으면서 속상한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가 이래서 그랬다?' '내가 이만큼 다정함을 줬는데, 어떻게 걔는!'이라고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꾹 참았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생각은 거두어내야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사람은 나에게 그 정도의 다정함을 바라지도, 그 정도의 에너지를 쓸 것을 말하지도 않았다. 일방적으로 내 성향을 마음껏 발휘해 소위 말해 서비스를 마음껏 퍼준 것뿐이다. 적당한 다정함을 장착하기란 정말 어렵다.




아빠가 정이 많아서 걱정이라는 것은 이런 미래를 예측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빠의 마음도 잘 알지만, 나는 나를 잘 안다. 나는 원래부터 아빠 말을 안 들었으니 마음이 아프더라도 이 마음은 오늘 잘 보듬고, 내일 또다시 다정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아마 아직까진 선함과 다정함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내 신조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적당한 다정함이란 아직 모르겠으니, 일단 하던 대로 열심히 다정하게 살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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