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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글 Nov 26. 2023

지독한 짝사랑

고1 때 화상으로 두 달 입원한 후 이상하게 왼쪽 다리를 자주 다쳤다. 다리를 다치고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을 때마다 다리가 짝짝이라며 운동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알고는 있지만 늘 행동으로 옮기진 못한다.


이번에는 다행스럽게도 통깁스는 아니었지만 선생님께 깁스 풀면 꼭 운동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일주일은 꽤 아파서 회사 출근하는 게 고역이었다. 다리가 늘 붓고 땡겨서 퇴근하면 B가 다리를 주물러줬다. 이번에는 유난히 아파한다며 다리를 주물러주는 게 너무 고마웠다.

일주일이 지나자 어느 정도 나았는지 절뚝거리는 것도 덜하고 심지어 깁스를 한 채 뛰어다니기도 했다. 여전히 욱신거리긴 했지만 살만 했다.

퇴근하고 장을 보러 마트에 들어갔다. B가 마트로 데리러 오기로 했고, 저녁을 생각하며 이것저것 사고 있었다.

무선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두부를 고르고 있었다. 두부를 그냥 구울까, 조림을 할까. 그냥 찌개에 넣을까. 부침용 살까 찌개용 살까.

노래가 끊기고 전화가 왔다. 당연히 B겠거니 생각해서 화면을 보지도 않고 귀를 톡톡 두드려 전화를 받았다. 엄마였다.



"퇴근했어?"


"응~ 마트야!"


"막내가 이번에 집 구하는데 엄마 내려오지 말래."



대뜸 맥락 없는 이야기가 훅 치고 들어온다.


"전세금 대출받아서 하는 큰 일인데 엄마 내려오지 말라잖아. 언니 때도 안 오지 않았냐면서."


"아 그래? 그땐 엄마 학교 다닐 때였잖아. 엄마 같이 집 고르고 싶어서 그러지?"


"당연하지. 걔가 뭘 알아. 전세금 대출도 혼자 한대서 걱정이 태산이야."


엄마가 이럴 때마다 어리고 못난 내가 자꾸 등장한다. 나는? 나는 혼자 알아서 잘한다더니. 그때의 내가 지금 막내보다도 어렸는데. 돈도 나는 내가 알바 두 탕, 세 탕 뛰면서 알아서 했는데.


그치만 굳이 말을 꺼내진 않는다.


"엄마가 거기 돈 보태주지? 얼마 보태줘? 돈 보태주니까 엄마도 가보고 싶다 해~ 언니 때는 엄마가 바쁘기도 했고 언니는 언니가 알아서 했는데 지금은 다르다고 그리고,,"


"그러네!"


하고 전화가 갑자기 끊겼다. 내가 말한 논리에서 막내한테 말할만한 근거를 찾았나 보다. 약간 벙쪄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아 전화가 끊어졌나 봐. 그럼 그렇지.


"자기야 어디야? 나 내렸는데, 다리 아픈데 장 보지 말구 그냥 시켜 먹을까?"


"거의 다 샀어. 여기로 와!"


B였다. 생각해 보니 엄마는 다리 괜찮냐, 아프진 않냐, 요새 바쁘냐 같은 안부도 묻지 않았다. 갑자기 서러워서 엄마한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통화 중이었다. 아마 내가 말한 근거를 토대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딸은 엄마를 짝사랑한다는 표현이 있다. 누가 말했는지 몰라도 너무나 맞는 말이다. 나는 엄마가 나를 학대했다거나,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 다만 나보다는 동생들을 향한 사랑이 더 클 뿐.

엄마는 나를 꽤나 잘 키웠고, 나를 사랑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구김살도 없고, 밝은 성격으로 자랄 수 있었다. 다만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조금 서럽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크기만큼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에 걸친 지독한 짝사랑. 결혼하면서 조금은 괜찮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짝사랑은 끝나지 않았나 보다. 연인 관계라면 내가 이 마음을 고백하고 차이면 끝인데 엄마와는 그럴 수가 없다.

엄마를 적당히 사랑해야겠다.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엄마를 열렬히 사랑한다면 내가 상처받고 내가 슬프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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