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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글 Jan 11. 2024

ㅋㅋㅋㅋ빼고 말하기

대화에 영혼 한 스푼 담기

독서 모임을 다녀왔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데 의견이 정말 다 달랐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나는 너무 관념적 서술이라 어려웠다고 말할 때 누구는 너무 구체적 서술이라 그림이 그려져 좋았다고 표현했다.


의견을 말하기 전, 다듬고 또 다듬는다. 어떻게 하면 내 의견을 잘 전달하지, 저 분 의견이 싫은 건 아니고 단지 의견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지. 정제된 의견을 말하기 위해 머릿속을 빠르게 굴린다. 마치 브런치에 글을 쓸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얼마 전 10년 지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1분 1초는 아니지만 출퇴근길, 밥 먹을 때 등 매일 연락하는 친구이다.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다.




"엥 카톡하고 있었잖아. 왜?"




"퇴근했지? 진지한 얘기하고 싶어서. 나 너무 힘들어."




친구의 고민을 나누고 나름의 결론을 내린 우리는 요즘 내가 꽂힌 노래로 이야기가 나아갔다.



"A야, 계속 들리는 노랫소리 뭐야? 똑같은 거 계속 듣는 거야? 아까부터 계속 똑같애."



"들렸어? 예전에 우리 뮤지컬 보러 갔던 거 있잖아. 나 요새 그 노래 계속 들어."



"굿닥터? 루나틱 그 노래지. 너 그거 진짜 좋아하더라. 왜 그렇게 좋아?"



"뭔가 그 사람들을 보듬어주던 장면이 생각나서. 멜로디도 좋은 거 같애."



"너 1월이라 그런가 봐. 가사 뭐든 고쳐줄게 이러잖아. 요새 힘들어?"



"좀 덜 해. 진짜 시간이 약이야. 아 맞다. 다음 달에 에스프레소 바나  가자."



한 시간 만에 전화를 끊었다. 기분이 상쾌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나눴고 친구와 내 생각을 털어놓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고마워서 친구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래서 연인을 만날 때 보는 기준 중 하나가 대화인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맹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좋아하는 책, 영화 등 나의 취향,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상대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긴 문장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드물다.


역설적이게도 빠르고 짧게 내 생각이 전달되는 세상이다. 무표정으로 "ㅋㅋㅋㅋ"와 "ㅠㅠㅠㅠ"를 0.1초 만에 보낸다. 어떨 때는 일단 ㅋㅋㅋㅋ를 쓰고 대답을 생각하기도 한다.


ㅇㅇ, 오키라는 짧은 문장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요즘 젊은이이기 때문일까. 반사적인 리액션 속에서 어느 순간 상대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는 나를 깨달은 적이 많다.


독서모임에서 오랜만에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귀 기울여 듣고, 정제된 생각을 전하며 배운 사람의 다정함을 느꼈다. 배웠다는 것이 학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느낄 것을 생각하고 신중하게 말하는 배움이라고 해야 할까. 신중함에서 오는 공감이 굉장히 좋았다.




그래서 2024년의 목표는 거창한 것으로 잡지 않았다. 어른스럽게 다정한 사람을 목표로, ㅋㅋㅋㅋ 남발하지 않기, 메시지 보낼 때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엔터 치기, 나를 믿고 대화하는 상대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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