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동안 다이어리도 쓰지 않았고, 브런치도 쓰지 못했다. 연초라 약속이 많아 외부에 에너지를 전부 써서일까. 사실 이러니저러니해도 "내가 게을러서"가 가장 깔끔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외부로 에너지를 분출하는 동안 B는 나에게 브리핑할 것이라며 무슨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일. 그 로드맵의 내용을 공개한다고 잠들기 전 조잘조잘 말해주었다. 어떤 로드맵이냐 물어보니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한다. 나는 일을 좋아하니 나에겐 강요하지 않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조기 은퇴와 파이어족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 조기 은퇴, 파이어족은 결혼하고 1년 후부터 B가 자주 말하던 내용이었다.
"B야, 그런데 조기 은퇴하면 뭐를 하고 싶은 거야?"
"그냥. 자유롭게 이것저것 하고 싶어."
"그래도 생각한 게 있을 거잖아? 뭘 배우고 싶다던가, 어딜 가고 싶다던가."
"음, 내가 뭘 하고 싶은지부터 자유롭게 찾아보고 싶어."
괜히 마음이 찡했다. B와 나는 같은 지역에서 자랐다. 우리의 고향은 사교육이 거의 발달하지 않은 시골이었다. 그럼에도 이것저것 욕심이 많았던 나는 그 시골에서도 피아노, 바이올린, 수영, 미술 등을 배웠지만, B는 집, 학교, 집이 전부였다.
B는 별다른 장래희망 없이 공부해야 하니 공부했다고 한다. 착실히 수업을 들었고, 착실히 공부해 그 시골에서 좋은 학교에 떡하니 붙어 상경했다. 우리의 고향은 서울로 대학을 가는 것도 흔하지 않던 동네여서 그때 당시 B가 다니던 고등학교 앞에는 합격을 축하하는 플랜카드가 붙기도 했었다.
딱 1년 놀고 군대에 갔고, 제대 후 바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딱히 가고 싶은 회사가 있는 것도,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그냥 때가 되어서 취업을 해야 했고, 더군다나 오래 사귄 내가 취업을 이미 했던 터라 더욱 마음이 초조했다고 한다. 성실성을 이길 것이 없었는지 그는 취업에도 굉장히 빠르게 성공했다.
매일 밤 누워서, 혹은 같이 동네 공원을 돌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종종 내가 부럽다는 말을 했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좋아하는 것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아 반짝반짝 빛난다고 했다. 반면 자기는 하고 싶은 것도 없이 그냥 살아가는 것 같다고. 껍데기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아기를 낳더라도 그 아기를 그렇게 키울까 봐 두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공부하라니까 공부하고, 군대 가라니까 가고, 취업하라니까 취업하고, 결혼해야 하니 결혼하고. 우리의 결혼을 제외하고 아마 B에게 여태까지의 인생은 본인이 하고 싶었던 것을 생각해 선택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에 익숙해지니 공허함 같은 게 생긴 것일까. 이제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려는 모습에 괜히 마음이 아팠다.
요새 조기 은퇴이다, 파이어족이다 하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모든 상황을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사회가 하라는 대로,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학생, 대학생, 취업준비생, 사회인으로 착실히 성장한 내 또래들의 반작용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침대에 누워 1시간 넘게 이야기하고 잠드는 B를 보며 갑자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에서 깨지 않게 조심조심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가장 친한 친구가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니. 어떻게든 응원해주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조금 글을 쓴다는 것이니, 그나마 이것으로 그를 응원해 주어야겠다. 그리고 시중에 조기 은퇴하는 법, 파이어족이 되는 법은 많지만 실제로 그것을 행동에 옮긴 사람의 후기는 없지 않은가. 아, 물론 있을 수도 있지만, 아예 처음부터 기록한 것은 없지 않을까. 아무튼 그가 파이어족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겨주려고 한다.
왜, 인터넷 방송 같은 곳에서도 스트리머들이 후원한 글을 읽어주면 더 후원하게 되고, 라디오 사연도 당첨이 되면 더 보내고 그런 것처럼. 공개된 장소에 그를 주인공으로 한 글을 쓰면 조금이나마 동력이 되지 않을까. 더불어 나도 글 쓰는 연습이 되고 서로 상부상조 아닌가. 아무튼 다음주부터 파이어족 호소인의 관찰기를 써보려고 한다. 팟팅팟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