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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글 Feb 12. 2024

조기 은퇴를 왜 하는데?

파이어족이 될 건가 봐요

*파이어 족: 돈을 모아 조기에 은퇴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사람들을 말함.




결혼 준비 때 우연히 들렀던 남양주의 한 게장집이 있었다. 평점을 찾아본 것도, 블로그를 찾아본 것도 아니었고, 그냥 배고파서 들어간 곳이었는데 정말 역대급으로 맛있었다. 그 이후 우리는 1년에 한 번, 연례행사처럼 우리 집과 한참 먼 남양주로 게장을 먹으러 간다.


운전을 하는 B의 입에 딸기를 넣어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이 드라이브 시간을 꽤 좋아한다. 우리는 평소에도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드라이브 시간에는 무언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내가 입에 넣어주는 딸기를 먹던 B가 '파이어 족'이라는 것을 아냐고 물었다.


크게 노래를 부르던 나는 들어봤다고 대충 대답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서점에 깔려 있는 책의 대부분이 '파이어 족', '조기 은퇴'라는 단어를 말하고 있고, 뉴스 헤드라인들도 그랬으니까. 사전적 정의를 정확하게 읊을 순 없어도 대략적으로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었다.




"A야, 그런데 나도 조기 은퇴가 하고 싶어."



"엥, 그래? 회사 힘들어?"



"음, 단순히 회사가 힘들어서는 아니야. 아무튼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돈을 모아서 조기 은퇴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꽤 진지하게 말하는 모습에 부르던 노래를 멈췄다.




"음, 글쎄. 내가 구체적으로 파이어 족이나 조기 은퇴에 대해 몰라서 그런 것 같긴 한데. 사실 나는 잘 상상이 안돼. 우리가 공무원도 아니구. 고정적 수입이 없어지는데 어떻게 살아?"



"봐봐. 우리가 43살에 은퇴한다고 쳐 보자. 뭐 우리가 80살까지 산다고 하면, 퇴직하고 37년 동안 먹고 살 비용이 필요하겠지?"



"응, 맞아. 그런데 먹고살 비용뿐 아니라 다른 것들도 있잖아. 그냥 정말 딱 먹고살 돈만 있으면 어떡해."



"당연하지. 생활비뿐 아니라 의료비, 취미생활비, 사치품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우리가 지금과 비슷한 생활을 누릴 때 필요한 비용을 다 계산한 다음, 그 돈을 43살까지 다 벌어 두는 거야. 그리고 조기 은퇴 이후에는 그 돈으로 사는 거지."




아주 길고 친절하게 설명해 줬음에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는 둘 다 직장인이고, 둘이 먹고살기에 부족하게 벌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37년 동안 먹고 살 비용을 어떻게 짧은 기간 동안 번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엥, 그게 돼?"



"당연히 지금처럼은 안되고. 부수입도 있어야 하고, 굳이 노동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해."



"우리가 건물주도 아닌데 그런 방법이 있어?"



"그랬음 좋았을 텐데. 아무튼, 우리가 시간을 들여 노동하지 않고도 돈이 들어오는 방법을 마련해야 해. 예를 들면 블로그, 유튜브 이런 것처럼. '시간=돈'과는 다른 방식으로 돈이 들어오는 거지. 그래서 요즘은 우리 둘이 어떻게 부수입으로 돈이 들어오게 할지, 투자나 저축을 어떻게 해서 돈을 불릴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있어."




뭐라는 걸까. B가 정말 진지하게 말하는 것이었구나. 이런 쪽에 관심이 있었나. 8년 넘게 연애하고 3년 넘게 같이 살았음에도 역시 사람은 입체적이다. 요새 책을 계속 읽는 것 같더라니. 이렇게까지 공부한 줄은 몰랐다.





"그런데 B야. 그만두면 뭐 하려고?"



"그건 몰라."



"나는 지금 하는 일이 좋은데. 딱히 명확한 계획도 없는데, 왜 굳이 조기 은퇴를 하려고 하는 거야?"



"자기한테 강요할 생각은 당연히 없어. 그런데 나는 내가 일하고 싶어서 하는 것과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은 좀 다르다고 생각하거든."



"그럼 궁극적인 목표는 뭔데? 나는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돼. 퇴직하고 나서의 삶을 생각해 보면, 그냥 일어나서 빈둥빈둥하는 거야?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게 없다면서."



"그것을 찾아나가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아. 의무감에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온전히 우리한테 집중하고 우리 삶을 자유롭게 사는 거야. 만약에 내가 갑자기 아르바이트가 하고 싶어. 그럼 그냥 하면 되는 거야. 이건 내가 선택해서 하는 일이고,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거지. 매일매일 출근해야 하는 삶이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해."




평소 나는 일할 때나, 여행 갈 때나 초반에 좀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내가 어떤 걸 해야 하는지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으면 이해도 어렵고, 행동에 옮기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런가. B가 말하는 것이 잘 소화되지 않았다.



"B야,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치만 그래도 네가 하고 싶다는 것이니 일단 응원은 해줄게. 그리고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앞으로 차근차근 설명해 줄래? 지금 나는 조기 은퇴를 하고 나서 당장 다음날 아침부터 잘 그려지지 않으니 말이야."



"응, 당연하지. 나는 그냥 너랑 조기은퇴하고 자유롭게 우리가 하고 싶은 걸 찾아가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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