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높은 확률로 주말 이틀 중 하루는 출근을 한다. 이 여파를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S였다. 개인 사업을 하는 S는 평일에는 절대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날짜를 잡는 족족 회의에 걸리자 S는 안 되겠다며 우리 회사 앞으로 오겠다고 선언했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이다. S의 집에서 1시간이 넘는 거리였지만, 우리는 토요일 저녁 견우와 직녀처럼 힘들게 만날 수 있었다.
쌓은 세월로 단순히 우정의 깊이를 따지는 것은 우습지만, 우리 사이엔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약 20년의 세월이 쌓여 있다.
우리의 첫 만남은 13살 때였다. 그때의 S는 하얀 얼굴에 긴 생머리, 머리띠를 곱게 한 어린이였고 나는 동그란 얼굴에 모자를 뒤집어쓴 잘 웃는 어린이였다.
어린이들이 친해지는 것은 정말 미스테리하다. 가치관, 성향이 성립되기 이전인데 서로에게 어떤 호감을 느끼고 친해지는 것일까.
나의 경우는 그냥 S와 친해지고 싶었다. 워낙 오래되어 기억이 틀렸을 수 있지만 아마 S에게 몇 번 은밀한 제안을 건넸던 것 같다. "나랑 화장실 같이 갈래?" "나랑 젤리 사러 갈래?"
어릴 때부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을 겁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행동을 즐겼던 것 같다. 그렇게 다가간 사람들은 나와 잘 맞을 때도, 맞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운 좋게도 S와 나는 굉장히 잘 맞았고, 이후 자연스럽게 단짝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가며 우리는 함께 자라왔다.
우리는 만나면 과거 이야기보단 현재의 이야기를 즐겨한다. 놓쳤던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도 하고 의미 없는 가정을 하기도 한다.
"S야, 만약 내가 엄청난 도덕적 결함이 있는 행동을 한다면 어떡할 거야? 뭐 도둑질을 한다거나, 도박을 한다거나, 바람을 피운다거나, 사기를 친다던가."
"네가 그럴 애가 아닌데.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지 않을까. 아니면 걸리지만 말라고 할 것 같애."
"뭐 다신 안 본다거나, 나를 교화시킨다거나 그러지 않고?"
"그러진 않지. 네가 선택한 거잖아. 실망이야 할 수 있겠다만. 너 내가 그럼 안 볼 거야?"
사실 얼마전 친한 선배와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짧게 생각하고, 도덕적 잘못을 저지른 친구에게 실망한 채 다신 보지 않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때 선배는 나에게 보기보다 차갑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S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굉장히 성급한 대답이었음을 깨달았다. 만약 S가 그런 비도덕적인 행동을 했다면, 아마 나는 만사를 제쳐두고걱정부터 할 것이다. 그럴 애가 아닌데. 혹은 이 행동이 들켰을 때 사회적으로 받을 지탄에 S가 상처받으면 안 되는데.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는 너무 어려울 것 같다. 왜냐면 나는 친구를 사랑하니까.
국립국어원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본다. 이렇게 보면 부부, 친구 혹은 선배, 후배와 같은 관계로서가 아니라 존재하기에 호감을 느끼는 마음 이런 게 아마도 사랑이지 않을까 싶다. 별을 따다 주지 않아도, 목숨을 바치지 않더라도 말이다.
새로운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쉽다. 새롭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히 매력적이니까. 오죽하면 모든 이의 이상형은 낯선 사람이라는 말이 있을까. 이는 반대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알수록 호감을 느끼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더 이상 새롭지 않음에도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네가 그때 많이 힘들어했다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친구나, 내가 좋아하는 것이 생겼다며 기뻐하는 나의 짝꿍이나, 무슨 말을 해도 일단 믿어주는 선배나.
나는 이제 그들이 계속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 단단해져야겠다. 힘든 상황에서 기꺼이 손내밀 수 있고, 포근하게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치부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 상대의 배려를 눈치채고 다정히 웃어주는 사람이 되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