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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린 Mar 11. 2022

대화가 필요해

국제커플의 갈등 해결법


커플들의 이야기를 다룬 블로그들을 보면 글만 읽어도 참 알콩달콩하고 예쁜 이야기들이 많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아무리 눈에 보이는 현재가 좋아도 어제는 박터지게 싸웠을 수도 있고, 내일이면 남이 될 수도 있다. 보이는 일부로 그 속을 알수가 없지만 분명한건 커플은 누구나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 더 사랑하기 위해 싸운다.

또한, 싸움을 통해 서로를 더 이해하기도 하지만, 서로의 바닥을 보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커플에게 있어 싸움이란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인내의 장이 되기도 하지만, 서로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강력 접착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귀기 전부터 좋은 친구였던 우리는 모두가 떠나고 텅빈 기숙사에서 몇 남지 않은 친구들과 긴긴 겨울을 함께 보냈고,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커플로 발전하였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설레임 가득한 연애의 시작은 아니었지만, 편안했고 그 어느때보다 여유가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초반에는 그저 좋기만 해서 싸움따위 없었다. 문화 차이니 성격 차이니 하는 말들이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곧 다가올 현실을 모르고 이제는 내가 '어른의 연애'를 하게 되었구나, 이런저런 경험들이 나를 성숙하게 해 주었구나 하고 스스로 조금은 뿌듯해 하던 차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도 말다툼이라는 것을 했고, 그 후로 잦아지기 시작한 싸움이 일주일에 한두번이 되면서 어떤 날은 서로가 하얗게 불탈때까지 싸우기도 했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만큼 격하게 싸웠다. 이 나이가 되어도 이렇게 싸울 에너지가 있다는게 스스로 신기할 정도로 열심히 싸웠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초반에는 이렇게 싸우다가 이 연애가 3개월 이상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ㅎㅎ 곧 1주년을 바라보는 지금은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당시엔 엄청 심각했다는 ㅎㅎ



다툼의 이유는 사소한 것부터 성격차이, 문화차이 등등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소통 방식이 너무도 다르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화성에서,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 하더니 정말이지 우리는 너무도 다른 언어, 다른 방식의 대화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초반의 불꽃같은 3개월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상대가 하는 말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남자친구가 하는 모든 말이 '나에 관한 것'인 것 같아서 혼자 상처입고 속상해 했던 적도 있다.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에는 정확하게 내 의견을 이야기 하는 편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무) 솔직하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터놓고 이야기 하는 나의 대화 방식은 오히려 해외에서 지낼때 많은 도움이 되었고, 그래서인지 외국 친구들과도 별 문제없이 잘 지냈다. 뭐그러니까 남자친구가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나는 별 문제 없이 잘 해낼 줄 알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큰 오산이었다.


한중일이 비슷한 문화권이어도 저마다 독특한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가 존재 하듯이, 서양인이라고 생각했던 내 친구들(유럽&북미 출신) 사이에도 그들만의 차이가 존재했다. 독일인들은 진지하고 약속 시간을 잘 지킨다거나, 프랑스인들은 감정에 충실하고 로맨틱 하다는 스테레오 타입의 선입견이 그들 사이에도 분명히 존재했다.


예를 들자면 벨기에에서 온 친구들은 네덜란드 친구들을 보며 직설적이고, 시끄럽다고 했다. 쉽게 다가와서 말을 걸고 사교적인 네덜란드인의 태도가 벨기에인들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네덜란드 친구들은 벨기에 친구들은 부끄럼이 많고 낯선이를 경계하여, 친해지기 어렵다고 했고, 쉽게 속을 드러내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렵다고도 했다. 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서양인의 Indirect는 한국인인 나에게는 아무튼 Direct하게 느껴지지만, 그들 사이에도 이런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선 이야기 하고싶다.

그리고 그 차이는 한국여자와 네덜란드 남자가 만나면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야말로 불꽃튀는 접전이 일어나는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만큼이나 이런저런 사소한 이유들로 싸운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는게 어려웠던 것 같다. 완벽하길 바랐던 나의 연애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싸움을 해결하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 해 보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나 '충분한 대화'였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대화를 하였는가 하면 한번 시작하면 최소 4시간 어떤 날은 밤이 깊도록 장장 8시간이 넘는 긴 대화를 이어갔다.

한번은 롱디를 하던 중에 연락 문제로 다투게 되었는데, 우리는 그날 6시간을 넘게 메세지를 주고 받고 통화를 하면서 서로의 진심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대화를 하던 중에도 오해가 생기면, 다시 차분하게 설명하면서 대화를 이어가고자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부모님은 그렇게 이야기 하면 질리지 않느냐고 대충하고 끊으라고도 하고, 좋은게 좋은거라고 그냥 대충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뭘 그렇게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느냐는 타박도 받았다.



사실 하나하나 내 의견과 생각을 묻고 이해가 가지 않으면 묻고 또 물으며 대화를 주도한 것은 내가 아닌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이었다. 뭐든지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고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네덜란드 남자가 그때그때의 분위기나 말투, 드러나는 행동만으로 한국 여자를 이해하는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한국식의 직설화법이 그에게는 잘 통하지 않았다. 여전히 내 머리속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어서 이런저런 것들을 자체 필터링 하고 모나지 않게 정리한 후에나온 내 생각은 엄밀히 말하자면, 가공된 생각이었지만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의 '날것'인 내 심리상태를 보여준다는 것은 굉장히 두려운 일이었다. 그간의 경험에 의하면 두서 없는 말들로 괜한 오해만 더 생기는 경우가 허다했고, 쉽게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사회와 조직을 잘 모르는 철없는 아이나 하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나는 좋은게 좋은거라고 두루뭉술한 태도로 그냥 넘어가려고 했던 적이 많았고, 대화가 길어지고 내가 풀어가야 할 이야기들이 많아질수록 자괴감에 빠졌다. 내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 직접적으로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마치 상사에게 변명을 하는 신입처럼 느껴져서 참 불편했다.


긴 대화에 지쳐서 짜증을 부릴 때도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나를 설득하며 다독여줬던 것은 다름 아닌 남자친구였다. 시작은 험난했지만 이러한 대화의 시간들이 쌓이면서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더 많이 익히고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상대가 생각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상대가 하는 말과 행동을 축소 혹은 확대 해석하는 일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다툼도 줄게 되었다. 수백시간은 족히 넘을 대화를 통해 가장 내 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나와는 처음부터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사실은 아직도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ㅎㅎㅎ).


지금 돌아보면 분명히 꼭 필요한 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싸우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지만, 오늘 행복하다고 해서 내일 싸우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방심할 수 없다.


아직도 나는 '싸운다'는 단어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누구나 겪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이왕에 싸우는거 현명하게 잘 싸우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중이다. 게다가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말하고 생각하고 이해하는데 전에 비해 능숙해졌고, 나와는 다르지만 닮아가는 누군가가 내 옆에 있음에 감사하다.


그 누구도 끝을 생각하고 연애를 시작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한국인이던, 외국인이던, 설령 우주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오늘도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열렬하게 싸우고 열렬하게 사랑한다. 상대가 누구이건 우리에게는 사랑이 가득한 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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