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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놓고 아무 연락도 안 한다.

40대 딸의 고백

by 크런치바

나는 나의 부모가 애틋하다.


하루를 보내는 중간중간 엄마, 아빠 생각이 난다. 반찬을 꺼내려고 냉장고를 열면 통마다 엄마가 담가준 깍두기, 오이소박이, 배추김치 등이 보인다. 깨끗하게 다듬고 씻어서 담아준 깻잎이며 상추, 동그란 통에 담긴 된장, 찌그러진 페트병 속에 담긴 수제 매실청, 모두 엄마의 작품이다.


어느덧 70대 중반을 향해가고 있으며 여러 병을 거쳐 몸도 약해졌는데, 엄마는 여전히 이렇게 내 냉장고 곳곳에 엄마의 흔적을 담아 놓았다.


이제는 내가 해서 드려야 하는 걸 알면서도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이것저것 챙겨서 전해주는 엄마에게 미안해서 어뜩하냐고 말만 잔뜩 늘어놓고 나는 늘 또 잔뜩 받기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 도와주려고 이사까지 왔던 엄마. 내 곁에서 육아를 하다 다쳤고, 그렇게 7년 이상의 시간을 아팠다.


온 가족이 무너졌던 그 긴 터널에서도, 엄마는 나를 챙겼다. 움직이지 못해 누워 있으면서도 3살, 5살 손주들을 돌봐주겠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아픈 엄마한테 잔뜩 짜증을 부렸었는데, 아이들은 누워있는 할머니 품에 안겨 잠이 들었고 나도 그 모습을 보며 옆에서 어느새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품에서 나도 아이들도 성장했다. 그리고 그 긴 터널을 지나 엄마는 이제 건강을 많이 되찾았고 혼자 걸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잊지 못할 기나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여정 끝에 엄마는 나이를 먹었고 몸도 경제력도 약해졌다. 그런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애틋하다. 엄마가 편찮으신 동안 쭉 곁에 있었던 아빠를 생각해도 애틋하다.


그래놓고 나는 마음만 애틋하다.


전화 한 번 더 해보고 얼굴 한 번 더 보면 되는데, 나 사는 게 바쁘다. 사실 이것도 핑계라고 생각하면서, 그래놓고 오늘도 아무 연락을 안 했다.


저녁 밥상에 올린 엄마표 오이소박이가 맛있어서 한 입 한 입 먹으며 엄마 생각이 났는데, 결국 오늘도 생각만 했다.


이러고는 '엄마'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나는 또 울겠지? 드라마 보고 울 시간에 엄마한테 잘하면 되는데, 현실 딸내미는 아빠랑 투닥거리는 얘기는커녕 임영웅 얘기조차 잘 들어주질 못한다.


마음만 애틋해서, 효도는 언제 하려나 싶다.


'내일은 꼭 전화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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