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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가고 싶었다.

사춘기 아들 키우다 힘든 날

by 크런치바

그런데 가질 못했다.


큰 아이가 잘못을 했다. 사춘기가 슬슬 다가오고 있는 녀석이, 최근 학원 선생님께 예의를 지키지 못했다. 마음 좋은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이 시기에 그럴 수 있다고 돌려 돌려 말씀하셨지만, 얼마나 언짢으셨을까?


게다가 인생의 이벤트는 꼭 몰아서 발생한다는 진리마저 변함이 없었다.


하루사이 큰 아이는 이번엔 학교 친구에게 장난을 쳐 친구 마음을 속상하게 했다. 사과만 바르게 했어도 웃고 지나갈 일인데, 가볍게 툭 사과해 버린 듯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자기가 잘못한 거 하나는 기똥차게 잘 인정했던 녀석은 술술 자신의 잘못을 내게 자진납세했다. 평소에는 정직해서 믿을 수 있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술술 자진 납세할 게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반듯한 녀석이라는 믿음이 있었건만, 역시 자식 일은 쉽게 장담하는 게 아니다. 나는 이래저래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일단 해결을 해야 했다.


먼저 학원 수업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아이에게 물었다. 잘못했단다. 최근 자기가 그랬던 것을 인정하고, 반성한다고 했다.


나와 남편은 다른 건 몰라도 '예의'에 엄격했다. 그런데 예의를 지키지 못했다니, 화도 많이 나고 너무 당황스러웠다. 부모로서 내 책임도 크게 느꼈다.


아이가 선생님을 찾아뵙고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기로 했다. 나는 곧바로 아이를 보냈고, 이제야 정신 차린 녀석도 바로 학원에 찾아뵙기로 결심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 손을 잡아주셨다고 한다. 같이 또 열심히 해보자고. 아이는 무척 죄송해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나에게도 전화를 주셨다, 감사하다고 말이다. 우리 아이가 잘못했는데, 나와 아이 마음을 걱정하고 감사하다고 말씀해 주시는 선생님이셨다.


아, 이보다 더 죄송할 수가 없다. 네가 어떤 선생님께 잘못을 했는지 알겠니?? 이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 잊지 말고, 앞으로 더 바르게 지내라!! 당부에 당부를 했다.


친구에게도 다시 사과하기로 했다. 사소한 장난이어도 상대가 싫은 건 해서는 안된다, 사과는 상대방이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는 줄줄이 뻔한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했다. 그냥 미안한 짓을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간신히 참았다.


반복된 이벤트에, 특히 아이가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놓쳤다는 점에서 나는 사실 화가 많이 났다. 그 와중에 엄마한테 혼나면 슬펐다는 아이의 말은 왜 떠오르는지... 엄격하게 혼내면서도 무섭게 화내지 않으려고 나는 애를 써야만 했다.


이런저런 것들을 다 하고 나니 나는 진이 빠졌다.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금요일 밤 10시였다.


이러고 다음날 아침,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동해바다로 놀러 가는 건 아니었다. 우리는 계획을 취소했다. 나는 바다가 정말 가고 싶었는데, 그래서 오늘 우리는 바다를 가지 못했다.


이렇게 아이가 크면서 실수하고 잘못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여전히 마음에 큰 파도가 인다. 파도가 없어야 더 아이를 잘 이끌 수 있을 텐데, 속상한 건 어쩔 수가 없다. 부디 아이가 이번 일을 계기로 반성하고 배우고 더 바르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바다 대신 내 아들, 곁에서 더 잘 지켜봐야겠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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