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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자주 봤던 사람들을 제일 안 봐요.

40대 나의, 인간관계 이야기

by 크런치바

의아하지만 사실이다.


몇 년 전 사십춘기를 겪을 때쯤, 나는 스스로 내 주변을 돌아본 적이 있었다.


약속도 많고 관계도 많았지만 나는 늘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외롭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찾아오기도 했다.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외로움은 비단 사십춘기 때만의 일은 아니었다. 나는 왜 여러 관계 속에서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자주 느끼는 걸까? 마흔 즈음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인생이 걸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계속 이런 감정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


그러다 깨달았다. 나는 만나서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거나, 혹은 정말 즐거운 자리가 많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돌아와 혼자 있는 시간에도 나는 쉼 없이 고민하고 생각해 봤다.


만약 '나'로 인해 관계에 한계가 있거나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늘 달고 산다면 나는 반드시 나를 뜯어고쳐야 했다. 이유를 찾는 게 내게는 무엇보다 시급하고 절실했다. 그 치열한 고민 끝에 나는 이유를 마주할 수 있었고, 역시나 문제는 내게 있었다.


그때 깨달았던 것이 나는 관계를 맺는 데 있어 매우 소극적인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단계에서 내가 먼저 다가간 경험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대신 내게 먼저 다가오는 사람들과 주로 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의도적인 것은 전혀 아니었다, 나도 마흔이 되어서야 깨달았으니까. 그럼 난 왜 그랬을까?


외로움도 많이 타고, 슬쩍 자신감도 부족했기에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감사히 크게 여겼던 것 같다. 감사한 마음은 나 역시 상대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지만, 그것이 반드시 깊은 관계나 편안한 관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이미 그걸 알았으면서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로 포장하며 깊은 척, 편안한 척 속여왔다. 하물며 나 자신에게조차 그랬다.


그랬으니 관계는 많아도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공허함을 느끼는 때가 많은 것은 당연했다.


나를 숨기고 상대에게 나를 맞추는, 착한 사람들의 희생과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대화를 좋아하는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 등등 나는 스스로에 대한 고민 자체가 부재했던 것이다. 그러니 막연히 자신감이 부족했을 테고, 외로움을 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마음의 구멍을 채우려고 어떤 관계든 또 잘 유지했다.


어린 시절 깨달아야 할 법한 이런 것들을 나는 어쩜 마흔이 되어서야 알아차렸을까.


뒤늦게 성장통을 앓았고 많은 것들이 순간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에야 비로소 '내'가 보였고, 내가 맺고 있는 많은 관계들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은 내게 기쁘고 소중한 관계들이 그럼에도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다행 중 불행은 그런 관계가 손에 꼽는다는 것이었다.


말 못 하게 허무했지만, 이제라도 이런 것들을 깨달았으니 앞으로는 좀 다르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나의 사십춘기는 '이대로 쭉 살 수는 없어!'의 끊임없는 외침과 깨달음의 반복이 아니었나 싶다.


그 2~3년의 때늦은 성장통 뒤, 나는 전과 많이 달라졌다. 외로움이 많이 사라졌고, 내가 맺은 관계들에 진솔하게 진심을 다하고 있다. 또 내게 뜻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됐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공허함을 느끼는 일이 잘 없다.


그리고 비록 아쉽지만, 자주 봤어도 사실 큰 의미 없었던 관계는 과감히 인정했다. 관계의 적정 거리를 유지하거나 혹은 만나는 빈도수를 조절하며 지내고 있다.


그래서 제일 자주 봤던 지인들을 요즘 제일 덜 보게 된 것이다. 상대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지만 나와는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을 더는 덮을 수가 없었다.


대신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서는 훨씬 적극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관계의 '주도성'이 생겼다는 생겼다는 것이 내게는 무척 뜻깊다. 덕분에 넉넉해진 시간에 나는 나를 돌보고 소중한 사람을 한 번 더 만나고 있다. 대화도 내 마음도 더 깊어졌음을 느낀다.


관계를 제대로 맺어 나가는 것이, 나는 나이 마흔이 넘어 이제야 처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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