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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hmack Mar 14. 2024

라팔마에서 독일까지 2

Nov 7-14, 2023

Huelva-Tordesillas, Spain/Nov 11,2023

09:15 출발/16:30 도착

가만히 앉아서 운전만 하는 건데 왜 이렇게 몸이 뒤틀리는 거 같은지. 이렇게 4일을 운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팔도 목도 어깨도 경직되어 있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너무 겁 없이 이 대장정을 받아들였나 살짝 후회가 될 때쯤 멈춰서 카페에 들렀다. 한국으로 치자면 휴게소인데 많은 운전자들이 들리는 곳이다. 보통 외진 곳에 가면 동물원 원숭이가 되기 일쑤인데 여기는 아무도 나를 대놓고 보지 않는다. 휴. 한시름 놓았다. 가끔씩 나는 투명 인간이 되고 싶다.

고속도로만 달리면 어렵지 않은데 숙소를 가기 위해들러야 하는 국도에서 긴장이 배가 된다. 호텔(이라고 말 못 할 정도)에 도착해 쑤시는 몸 이끌고 마을 구경에 나섰다.

원래 잘 그러지 않는데 지나가다 세라믹 아트를 하는 곳에 들어갔다. 백발이 성한 노인이 긴장 섞인 밝음으로 나를 맞이한다. 짧은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눈다. 자기는 유명한 세라믹 아티스트라면서 구글에검색하면 나온다고 한다.(찾아보니 정말 있었다.) 아직 팔리지 않아 여기저기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쭉 훑어보니 나에게는 이것이 어울린다며 달 모양 목걸이를 건네길래 두 개를 산다 하니 고개 숙여 고마움을 전한다. 동네에 수도원이 있으니 꼭 들르라며 손수 이름과 주소를 적은 종이도 잊지 않는다.

수도원은 시간도 안 맞을뿐더러 지친 몸 뉘러 숙소로 돌아가 뻗었다. 특유의 쿰쿰한 냄새와 음침함 덕분에 몇 번 깼지만 어쩌겠는가. 밤이 됐으니 잠을 청해야지.

Tordesillas-Bordeaux Est, France/Nov 12

08:30 출발/15:20 도착

오늘은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날이다. 기름을 스페인에서 채울 수 있을 만큼 가득 채우라는 남편의 말을 따라 주유소에 들렀다. 어제처럼 몸이 찌뿌둥한 걸 예방하기 위해 적어도 세 번은 중간에 멈춰 쉬기로 했다. 한결 편해진 운전으로 노래까지 들으며 가다가 너무 정신이 사나워져서 노래 없이 조용히 정말 길만 보며 달렸다. 가끔씩 남편이 알려준 호흡을 하면서 예상치 않게 일어나는 일들이나 생각들로부터 유연하게 대처하는 연습을 한건 덤. 어제보다 좀 덜 운전해서 그런지 상태가 상당히 좋다. 무리하지 말고 이 리듬을 유지하는 걸로.

Bordeaux Est-Beaune, France/Nov 13, 2023

08:00 출발/ 15:00 도착

일찍 시작해서 일찍 도착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아침을 좀 서둘렀다. 계산한 걸 보아하니 내일 오후에는 독일에 도착할 것 같은데 아니, 아이 낳고 처음으로 갖는 긴 휴가인데 좀 아쉬워진다. 이틀분을 삼일 분으로 다시 나눠서 하루를 더 누려야 하나 싶다가 찝찝한 모텔에서 하루를 더 자는 게 뭐가 좋을까 싶어 마음을 접었다.

참 흥미롭다. 나라별로 이렇게 운전자의 행태가 다르다니. 모두가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고 적어도 내가 겪은 느낌은 그렇다. 특별히 프랑스는 조심해야 한다. 넋 놓고 있다가 내 앞으로 갑자기 들어오는 차가 너무 많다. 꼭 저렇게 안 해도 될 거 같은데 굳이 내 앞으로 그렇게 급하고 빠르고 공격적이게 들어온다고? 유럽 자동차들은 번호판을 보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게 되는데 내 짐작으론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쓰읍. 한국과 일본의 관계라고 보면 될까나. (온전히 개인적인 생각!)

이 여행의 마지막 숙소에서 하늘을 붕~ 나는 경험을했다. 밖에는 미스트 같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슈퍼마켓을 갔다 오는데 안 그래도 조심해야겠다 싶어 아주 천천히 한 걸음씩 걷다가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슉 미끄러져서 붕 떴다가 팍! 그대로 안착. 다행히허리, 머리는 안 다쳤지만 오른쪽 몸이 바닥에 내팽겨졌다. 내팽겨진 건 내 몸뿐만이 아니었는데 저녁으로 먹으려고 사 온 오이피클이 하필이면 병에 들어있어서 완전 산산조각이 났다. 큰 파열음에 놀란 주인이 마담 마담 호들갑을 떨면서 문 앞에 발판을 놔뒀는데 그걸 안 밟고 그냥 들어왔냐 하는 거 보니까 미끄러진 사람이 한둘이 아닌 듯. 일어나 바로 걸을 수 있는 상태여서 다행이었지만 사고 후유증은 그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거 아닌가. 심신의 안정을 취하러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Beaune, France-Waldbrunn, Germany/Nov 14, 2023

08:00 출발/ 14:30 도착

비행기를 타고나면 내 아들은 거의 항상 아프다. 면역력이 낮아지는 때에 주로 감기 증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번에도 어김없다. 다행히 엄마만 찾는 아이가 아니어서 하루에 한 번 잠자기 전 통화를 했었는데 한 이틀은 전화 한 번을 안 하더라. 엄마 목소리 들으면 더 보고 싶어 지니 아예 전화를 하지 않는 타입인 건 알았지만 더 보고 싶다는 건 몸이 많이 아프다는 뜻이다. 나중에 들은 소리지만 열이 펄펄 끓고 끙끙 앓았다고 하는데 나에게 다 말하면 걱정돼서 운전에영향을 미칠 것 같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젯밤에 내팽겨진 내 몸은 이상하리만큼 괜찮았고 박차를 가해 운전을 한다. 독일 국경에 가까워지니 익숙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그래도 좀 살았다고 긴장이 풀리려는 동시에 유럽에서 유일하게 고속도로 무료라는 명성에 뒤처질라 차들이 엄청나게 많다. 아우토반인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애가 탄다. 아들아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달려갈게.

아들의 선물과 달려온 흔적의 영수증들

8일의 여정은 나를 향해 달려와 꽈악 안기는 아들의포옹으로 끝이 났다. 후-시원 섭섭하네.

자! 정신 차리고 다시 육아의 세계로,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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