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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hmack Mar 14. 2024

라팔마에서 독일까지

Nov 7-14, 2023

이곳을 떠나려고 결정한 후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학교에 알리고 짐들을 정리했으며 트레일러하우스를 팔았다. 올 때는 그가 운전해서 왔으니 갈 때는 내가 하겠다고 엄포도 놓았다. 뱃멀미가 꽤나 있는 편이지만 돌볼 아이가 없다면 멀미약 먹고 그냥 뻗어있으면 될 일. 우리 집 어린이가 긴 여정을 함께 하고싶지 않았기에(요즘 부쩍 차 타는 걸 거부한다.) 두 남자를 하루 전 공항에 데려다주는 걸로 나의 모험은 시작됐다.

 

운전하다가 저녁이 되면 차에서 잘 생각이어서 내 몸 하나 뉠 자리 빼놓고 짐을 싣기 시작했다. 나와 짐정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가 보다. 어릴 때부터 일 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했고 방황하는 사춘기 오빠의 부재로 가구 옮기는 걸 돕는 건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래서 나는 정리를 참 잘한다. 다른 말로는 필요하지 않은 걸 참 잘 처리한다. 필요한 사람에게 주거나 나눔을 하는 게 보통인데 부창부수라고 남편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다.

두 남자가 없이 트레일러하우스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떠나는 건 아쉽지 않았지만 세 사람 머리 맞대고 지은 우리들의 처음 집에 그들 없이 혼자 잠을 청하려니 눈이 감기질 않는다. 하지만 내일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마지막 짐 점검을 하니 집 구매자가

왔다. 텅 빈 트레일러하우스를 사진으로 남기고 그들의 집 해체 장면을 바라보며 그래 마티가 보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싶었다. 물건에 마음을 두는 그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땀과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들이 부서지는 걸 눈앞에서 지켜본다면 그리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을듯하다.


아침 8시부터 시작된 해체 작전은 2시간 30분 정도걸렸고 그 사이 나는 오스트리아 엄마 클라우디아와작별 인사 겸 이야기를 나누었다. 끝은 이렇게 되었지만 어찌 됐건 그녀의 신념에 동의해 시작된 라팔마 생활이었으므로 쌓인 오해는 풀고 가고 싶었다. 서로 나눈 대화와 주고받은 선물을 바라보며 눈시울붉힌 우리는 여전히 친구일까 아닐까.


원래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하는데 공사 때문에 신호등도 많고 시내를 가로질러 가느라 한 시간이 더 걸렸다. 15시 20분 정도에 항구 도착해서 종이로 된 티켓 있어야 하냐고 물으니 없어도 된다기에 생강가루 탄 물과 생강 사탕 먹으며 기다렸다.


La Palma-Tenerife, Los Cristiano

Nov 8, 2023

16시 30분 선승 시작. 17시 10분 출발.

2시간 여정이라 뱃멀미 약을 먹지 않았는데 먹었어야 했나 보다. 파도가 거칠다. 내 속도 점점 거칠어졌다. 19시 30분 테네리페 남쪽 항구인 로스 크리스티아 노스( Los Cristiano)에 도착.


문제는 그 다음 배는 이곳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 곧바로 다음배의 시작인 북쪽 항구로 출발했는데 해가 떨어진 저녁이라 어두워 온 신경을 곤두세워 1시간을 달렸다. 가는 길에 기름도 넣고 길도 잘못 들고 해서 9시나 돼서야 주차장 도착했다.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 챙겨 온 물로 대충 양치, 세안을 하고 차 안에 몸을 뉘었는데 이거 웬걸 예상보다 바닥이 너무 불편하다. 심지어 길이도 안 맞아서 발을 쭉 펼 수가 없다. 거기다 자동차에 자동 잠금장치가 걸려있는지 몸을 조금만 뒤척여도 경보음이 울린다. 남편한테 전화해서 겨우 잠금 해제하고 잠을 청하는데 너무 불편해서 거의 한숨도 못 잤다.


Tenerife-Huelva/Nov 9, 2023

6시 30분에 일어난 몸이 화장실로 가자고 한다. 하지만 그곳엔 화장실이 없다. 짐으로 챙겨 온 스테인리스 대야에 플라스틱 백을 씌우고 해결을 봤다. 캠핑할 때 자주 쓰는 방식이라 익숙하지만 키가 낮은 자동차 안에서는 조금 더 유연성을 요구했다. 그 대야를 가져올까 그냥 둘까 고민했었는데 가져오길 잘했다 정말. 일을 마치니 해가 뜬다 다행이다.

장거리 운전을 할 나의 컨디션을 위해 숙소를 잡아야겠다 마음먹고 배 도착 후 하룻밤 호텔을 예약했다. 말이 호텔이지 모텔이라 생각하는 게 더 맞을 거다. 예약 후 주차장에 더 있으면 뭐 하나 싶어 일찍 항구로 향했다. 8시 10분 항구 도착했는데 많은 차들이 이미 선승을 위해 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10시 30분 선승을 시작한 배는 11시 30분이 돼서야 출발했다.


선승 한 시간 전 멀미약 하나, 다음 날 하나 먹고 32시간 동안 누워있었다. 새벽에 매우 많이 깼지만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캠핑매트 풀고 바닥에서 자기도 했다. 다행인 건 승객들이 없어서 아니 다들 캐빈(침대가 있는 방)에서 자는지. 내가 신청한 좌석 자리에는 아무도 없어 불편하지 않게 올 수 있었다. 배연료 기름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냄새 안 나는 곳 찾아 헤매다가 식당 쪽에 자리 잡았고 거기서 도착하는 동안 누워서 왔다.


아니 무슨 생각으로 뱃멀미도 심한 사람이 35시간 동안 배를 탈 생각을 한 걸까. 심지어 3년 전에 한 번겪고 다시는 배를 타지 않겠노라 엄포했었는데 왜 때문에 한다고 큰소리친 거냐며 남편이 물었었고 생각해 봤는데 답은 두 개었다. 첫 번째는 나도 우리 가족 인생의 한 부분을 책임지고 싶었고. 두 번째는 남편과 아들이 내가 없는 일주일 동안 둘만의 추억을 즐겁게 쌓았으면 했다.(그리고 정말 그러했다.)

스페인 메인랜드 우엘바(Huelva)에 도착 후 항구에서 빠져나오는데 공항처럼 랜덤으로 짐을 검사하고 신고할 물건이 있는지 일일이 물어보는 관계로 시간이 꽤나 소요됐고 어제 아침 예약한 호텔로 가는 길은 역시나 어두웠다.


따뜻한 물에 몸을 풀어주고 먹을 것을 좀 넣고 나니 긴장이 풀리는데 내일부터 2300km 운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네? 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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