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기
9월 8일 에단과 나는 라팔마행 비행기에 올랐고, 같은 날 마티는 2.2톤 트레일러를 달고 차에 올랐다. 학교 가까운 곳에 거주해야지만 차로 매일 등하교시킬 일이 없을 텐데 학교 근처에 집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작은 우리 집을 아예 들고 가기로 결정했다.
운전만 약 2,500km에 페리를 이틀 동안 타야 하는 대장정이지만 어떻게 그렇게 됐다.
하루는 마티가 말한다. 타이니 하우스를 가지고 간다 말할 때 백이면 백 이게 자기 아이디어 일 거라고 생각한단다. 아이고 불쌍한 으리, 마티가 또 크레이지 한 결정을 해서 따라야 하는구나~ 들 해서 자기는 억울하다며 볼멘소리를 해댄다. 여보, 한국에는 부창부수라는 말이 있다오. 내가 nomad gene이 있는 건 인정하겠소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인 게요.
라팔마에 도착하고 에단이는 어김없이 아팠다. 보통섬은 연중 온화한 날씨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은 해발 1,100m 정도로 굉장히 높은 편이면서 마이크로클라이밋 때문에 날씨가 정말 수시로 바뀐다.
섬에 왔지만 바다와 먼 곳에 있는 탓에 아침저녁 온도차가 꽤나 크고, 우리의 집이 지금 달려오고 있는 관계로 텐트에 며칠 지냈더니 에단이가 아팠다. 특히 기침이 기침이 말도 못 하게 나오고 설사도 동반했다. 2년여 전에도 그랬다. 희한한 일이다. 이곳에만 오면 진짜 정말 많이 아프다. 이때 알아차려야 했었는데…
보통 기관에 보내면 감기는 뭐 달고 산다는 소리를 들은 터라 그러려니 괜찮으려니 하고 보냈다. 다행히 에단이도 학교 가는 걸 좋아했다. 올해 3월 말부터 2개월 정도 이미 다녀봤기 때문에 3개월 방학 공백이 있었지만 뭐 재적응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 간호하고 텐트안일하다 보니 마티가
올 날이 다가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 구경하기 힘든 시기에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아픈 에단이 비 맞으면 안 될 것 같아 마중 못 가겠다고 슬쩍 내비쳤더니 남편이 단단히 뿔이 났다. 가정의 화목을 위해 비를 맞으며 금의환향을 마주했다.
피아노를 기증하겠다고 약속한 터라 우리 짐 대신 250kg 피아노를 그 먼 길 데리고 왔다. 그때는 피아노 없으면 뭔가 더 가져갈 수 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아주 조금 있었지만 지금을 생각하면 천만다행이다. 다시 가져가야 할 뭔가를 가져오지 않은 게.
원래 계획은 학교를 만든 오스트리아 가족 땅 중에 당장 쓰지 않고 도로와 멀며 아주 한적한 곳(이곳에 사과나무가 많아서 우리는 애플랜드라 부른다.)에 트레일러하우스를 놓으려고 했는데 여러 부분에서 막히기 시작했다.
이 큰 집이 그곳에 도착하기에는 길이 너무 좁고 가파르며 고르지 못하다. 간다 한들 먼저 짐을 다 내려놓고 빈 트레일러로 가야 하는데 그러면 그 내린 짐을 차로 적어도 왕복 10번은 옮겨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입성한다 해도 물도 없고 가스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거기다 비가 와서 질퍽거리는 이 순간에, 굳이 꼭 가야 하나 싶었다.
다행히 이미 수도 파이프, 야외용 부엌, 컴포스트 화장실 등이 설치된 곳이 있어 일단은 그곳에 머물기로 했다. 지나가는 차소리가 들리고 몇십 마리의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그때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지금은 천상의 결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텐트에 있었을 땐 해님 쨍쨍 신발 젖을 일 없었는데 비가 오니 신발에 딸려온 젖은 흙들이 그대로 집에 들어온다. 마루가 절실히 필요하다. 에단이가 학교에 가면 마티와 나는 집터를 하나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미리 구매해 놓은 나무로 열심히 재미지게 뚝딱뚝딱. (하는 걸 지켜보는 걸 나는 좋아한다ㅋ) 마루도 만들고 비 막아줄 마루 지붕도 만들고 트레일러하우스 위에 올라갈 통나무 사다리도 만들고 집에 올라 걸어갈 계단도 만들고 겨울 대비 장작불 나무도 패 놓고 빨래 돌리고 탁 털어 말릴 빨랫줄도 걸어놓고 잡동사니 수납할 선반도 만들고 여기저기 귀엽게 꾸며줄 뜨개질도 하고 그러다 보니 두 달이 훌쩍 흘렀는데 만나면 이별이라고 우리는 이제 이 섬을 떠난다.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왜냐. 절대라는 말은 절대 하면 안 되는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