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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득진 Dec 17. 2023

내친구 고라니

홀로 살기 2년차에 자연의 가치에 눈떴다.

새벽 하늘에 알알이 박힌 별빛이며 코 끝 시린

공기의 알싸함과 친숙해졌다. 군살이 빠져

볼은 홀쭉해졌지만 피부 톤은 맑음 그 자체다.

가을비 내리던 어느날 농막을 둘러보다가 깜놀했다.

깜찍한 자태의 고라니가 장대비를 맞으며 누워있었던 탓이다. 혹시나해서 가까이 다가서서 살폈다.

안타깝게도 눈을 감지 않은 채였다. 우려가 현실이 되고만 것이다.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처음 겪는 일이었으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산 속에서 한참 고민했다. 혼자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쉬울 때마다 찾아뵙는 어르신께 들렀다. 묻어줘야지, 별 수 있나. 경험 많은 분의 말 한 마디는 사이다 한병보다 나았다.

불길한 느낌을 차츰 걷어내며 여기가 바로 명당이라고

세뇌시켰다. 얼마나 좋은 터였기에 산세 좋기로 이름난

천성산 드넓은 땅을 두고 예까지 찾아들었겠느냐고... 생각을 고쳐멱으니 죽은 고라니조차 예쁘기 그지 없었다. 어르신과 함께 고라니 누웠던 자리를 깊이 팠다. 죽어간 모습 그태로 고라니를 뉘고 흙을 덮었다. 마지막엔 막걸리 한 병을

봉분 위에 부어줬다.

조촐한 장례를 치른 뒤에도 고라니 모습이 뇌리에 맴돌았다. 문우들에게 찍어둔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비문을 코팅해서 세워주면 좋지 않을까 싶어 실행에 옮겼다. 그걸 촬영해서 보냈더니 아예 한자로 쓴 비문을 보내온 지인도 있었다, 코팅을 한번 더해서 제대로 된 비문이 세워졌다.

고라니는 어쩌면 나대신 목숨을 내려놓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여운 짐승이 왜 아까운 목숨을 던져 농막의 액운을 물리쳤을까. 자연의 신비에 더해 돌고도는 삶과 죽음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농막 뒤란을 돌 때마다 순하디순한 고라니의 앙증맞은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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