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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득진 Dec 14. 2023

           부족하니 농막이다

  농막 생활 한 해가 훌쩍 지났다. 천혜의자연은 불편을 감내하라고 수시로 묵시의 교훈을 던진다. 유년 시절부터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견뎌내는 게 쉽지 않다. 날마다 맞닥뜨리는 불편이라면 물 사정이다. 식사를 끝내고 설겆이를 한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을 받아뒀다가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그릇을 닦는다. 좁아터진 싱크대에서 설겆이 하는 두 손의 스텝이 꼬이곤 한다. 간혹 떨어진 그릇이 발등을 때리는 일도 있다. 한 번은 떨어진 칼로 엄지 발톱을 다쳤다. 칼날이 발을 향하지 않았던 게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행궈낸 물로 수저를 씻는 일은 불편이랄 수도 없다. 아껴 쓰지 않고선 받아둔 물이 모자랄 판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기름진 음식을 별로 즐기지 않는 건 천만다행이다. 어쩌다 닭요리를 할 때면 냄비며 그릇을 가지고 개울로 향한다. 졸졸 흐르는 물에 말끔히 행궈내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샤워에 길들여진 몸을 목욕탕에 담그는 기분이랄까. 부족에서 비롯된 기쁨이란 게 바로 그런 것이다.

  간만에 시원하게 비가 내린다. 찔끄찔끔 내리던 비에 갈증이 얼마나 컸던가. 밭고랑이 흥건해지는 걸 지켜보는 마음이 푸근하다. 이제는 모내기 걱정을 안 해도 될 듯 싶다. 뮤즈가 강추한 금목서 새순이 연두색을 띠며 무성하게 자라는 것도 흐뭇함을 더해준다. 가을이면 꽃이 필 테고, 향기가 만리까지 퍼져날 테다. 휑한 겨울을 장식할 홍가시는 여타 조경수에 가려 존재감을 잃었지만 몸을 웅크려 겨울이 오기만 기다린다. 낮은 키의 회양목은 농막을 에워싸고서 초병의 임무에 여념이 없다. 좁은 개울에 차오른 물이 큰 개울로 떨어져 시내를 만들며 일으키는 소리가 오케스트라를 연상케 한다. 못갖춘마디였던 악보가 완성되며 농막의 부족을 보충해 준다. 유기체인 자연의 상호작용은 농막이라고 해서 예외로 삼지 않는다. 통창을 내다보며 식사를 할 때면 손수 가꾼 상추, 양파, 마늘, 당귀, 케일, 샐러리며 부추가 몸을 털고 걸어와서 식탁에 자리를 잡을 것 같다. 먹지 않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목마른 땅에 비까지 쏟아져서 풍성함을 감당해 내기 어렵다.

  농막 입구가 황량해서 오래 고민했다. 키 큰 나무를 심는다면 허전함을 메울 수 있겠지. 조경 사장님을 설득해서 적당한 조경수를 심어달라고 부탁했다. 바쁜 건 아니라고 해서였는지 시간이 흘러도 별 반응이 없다. 드나들 때마다 거슬리는 모텔의 낡아빠진 입간판. 그게 눈에 띄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때맞춰 번개전기에서 공중전화 부스 미니어쳐를 발견해 냈고, 그걸 얻어 페인트를 칠했다. 공중전화를 구하려고 알라딘도 들러봤다. 결국 당근의 도움을 받아 붉은 색 공중전화를 살 수 있었다. 훔쳐갈까봐 전화기에 구멍을 뚫고 강선으로 동여맸다. 유리에다 TELEPHONE 글씨며 힘겹게 살아낸 당신께 감사와 위로를....  글씨도 붙였다. 농막의 부족함은 한 두 가지 아니지만 내적 부족을 외부를 꾸며 보충한 것이다. 안팎이 모두 완벽하길 바라는 건 사치일 테니까.

  비어버린 곳곳을 메워주려는지 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담벼락에 그린 쿠바 국기도 물기를 흠뻑 머금었다. 옆에다 레이저로 따 낸 철판 글씨를 붙이는 건 농막의 부족을 메우기 위한 또 하나 숙제다. 우선, A3 크기로 글자를 출력해서 페인트 칠부터 해야겠다. 어떤 색깔로 할 지는 결정한 바 없지만.... 비가 개고나면 마킹을 해서 붓질하면 허전함이 덜 할 것 같다. 내리는 비가 구멍 뚫린 마음까지 메워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버석버석한 성정에 습기를 부여해서 인절미처럼 촉촉하게 해 준다면 더 이상 농막이 쓸쓸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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