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건축, 서비스 디자인, 인공지능—권위와 미학이 교차하는 정치학
정치적 권위는 종종 시각적·공간적 상징을 통해 구현된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건축 형식처럼 전통적 양식을 차용해 권력을 시각화하려는 시도는, 새로운 지배 이념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안적 스타일과 다원적 서사를 수용하며, 고정된 권위보다 다양한 해석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건축 양식, 행정 서비스, 인공지능에 이르는 일련의 정책 선언을 통해 포스트모던적 상대주의의 해체와 일원적 권력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즉, 건축→디자인→인공지능(AI) 순으로, 상징적→경험적→인지적 영역을 단계적으로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학적 이행은 궁극적으로 문화적→시각적→인식적 권위의 복원을 목표로 한다. 본고에서는 트럼프 행정부(‘MAGA’로 대변되는 새로운 보수)의 세 가지 주요 선언;
미국 행정부 및 공공 기관 건축 양식을 고전주의로 통제: Making Federal Architecture Beautiful Again
미국 국가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치하여 행정 서비스 디자인 통제: Improving Our Nation Through Better Design
미국 국가 주도의 인공지능 분야 발전 실행 계획: America’s AI Action Plan
을 통해, 어떻게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이 디자인과 기술 정책을 매개로 동력화되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미국 대법원 건물은 고전 양식의 대표적 사례로, 오랜 전통과 권위를 시각화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 건축물에 고전·전통 양식을 부활시키려 하였다. 행정명령 “Making Federal Architecture Beautiful Again”은 건물들이 국민에게 영감을 주고 시민적 덕을 고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워싱턴 D.C.의 연방 공공건물은 예외 없이 고전 양식을 기본으로 삼도록 규정했다. 창건 당시 워싱턴, 제퍼슨 등이 고전 건축을 모방해 도시를 설계했던 역사적 근거를 강조하며, 1960년대 이후 유행했던 모더니즘·브루탈리즘 건축을 ‘무질서와 분열의 상징’으로 폄하했다. 즉, 현대적 감각의 건물을 ‘미관을 해치는 추한 빌딩’으로 몰아붙이고, 고전적 장엄함만이 ‘전통과 힘, 신화적 안정감’을 구현하는 유일한 양식이라 선언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단순히 미적 기준을 변경하는 수준을 넘어 정치적 의미를 띤다. 분석가들에 따르면 트럼프의 건축 정책은 파시즘적 환상을 수반한다. 예를 들어, 한 연구는 트럼프의 신행정명령이 근대 건축 양식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며, 공공 공간을 과거의 전통으로 봉합하여 ‘불변하고 성스러운’ 국가 상(像)을 복원하려 한다고 지적한다. 권위를 상징하는 외관을 건축적으로 재구축함으로써 국민의 일상 공간마저 통제 가능한 영구한 권력의 무대가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결국 “아름답고 위엄 있는” 건축을 추구한다는 명목 하에, 다양성을 배제한 획일적·외형적 권위주의가 구현된다.
연방 건축이 상징적 통제를 겨냥한 ‘공간의 권력’이라면, 서비스 디자인은 경험의 권력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Improving Our Nation Through Better Design” 행정명령을 통해 정부 웹사이트와 서비스 경험의 개선과 미화를 추진했다. “America by Design”이라는 국가적 이니셔티브를 선포하며, 국민이 정부와 접촉하는 디지털·물리적 접점을 ‘보다 아름답고 효율적으로’ 재구성할 것을 촉구하였다. 연방기관 웹사이트와 관공서 공간 등을 개선 대상으로 꼽으며, 새로이 국가 디자인 스튜디오와 수석디자인책임자를 신설하여 일류 디자이너를 영입(에어비앤비의 창업자 Joe Gebbia)하고 정부 전반에 일관된 디자인 언어를 적용하도록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중복된 디자인 비용을 줄이고 표준화된 시각체계를 도입하여 국민의 신뢰를 높이고, ‘미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목표가 제시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시민 편익 증진을 내세웠지만, 이 정책 역시 강력한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국민에게 직접 다가가는 경험을 개선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대중의 충성심과 지지 기반을 넓히는 포퓰리즘적 전략이 담겨있다. 실제로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부 웹사이트와 물리적 공간”을 대상으로 개선을 우선하라는 지시는, 정부가 국민의 일상적 경험을 재편하고 통제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즉, 사람들의 행동경로를 디자인 통제 안으로 끌어들이고, 매끄러운 사용자 경험으로 여론을 관리하려는 ‘디지털 포퓰리즘’ 수단으로 읽힌다.
디자인이 공공 경험을 통제했다면, AI 정책은 인지적 통제를 표방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America’s AI Action Plan”은 글로벌 기술경쟁력을 강조하며, “AI를 통해 미국의 지배력을 확고히 한다”고 선포했다. 동시에 자유표현을 강조하며 AI가 ‘오웰적 사용’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겠다고도 약속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계획은 포스트모던적 다원성에 대한 도전을 명확히 드러낸다. 대표적으로, 연방정부는 “이념적 편향이 없는 객관적 시스템” 만을 사용하겠다고 규정하며, AI 위험관리 프레임워크에서 허위정보, 기후, 다양성·형평성·포용(DEI) 관련 언급을 모두 삭제하도록 지시했다[13]. 즉, “오웰적 AI”가 아닌 “진실 추구”를 표방하지만, 사실상 AI로 표현될 수 있는 사회적 다양성과 공정성 논의를 배제하는 셈이다.
비판자들은 이를 “AI 관점에서의 일원주의”로 해석한다. 공동체의 다양한 이슈와 역사적 불평등을 직시하는 대신, 모든 데이터를 ‘가치중립적인 정확성’의 이름으로 간주하려는 시도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한 전문가는 이번 AI 계획이 공정성과 책임성을 당파적 불문율로 치부하면서, AI를 ‘더 나은 데이터’로만 완성될 수 있는 가치중립 기술로 둔갑시킨다고 비판했다. 이는 “인종·성별을 무시하라”는 말과 다름없으며, 배제된 목소리들의 필요를 애써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 오히려 알고리즘이 불평등을 그대로 재생산하도록 방치하여,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를 영구화하는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요약하면, 트럼프식 AI 정책은 표면적 “미국 우선주의”라는 명분 아래 경쟁력 확보를 강조하지만, 동시에 특정 이데올로기를 기술의 ‘중립성’으로 포장하여 인지적 권위를 한쪽으로 수렴시키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 세 가지 정책은 모두 미학적 권력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통합적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건축에서는 전통적 권위를 상징하는 고전 양식이 도입되었고, 디자인에서는 대중의 호응을 얻기 위한 친근한 경험이 강조되었다. AI에서는 소위 ‘가치중립’으로 포장된 기술이 대안적 가치체계와 담론을 배제하는 수단이 되었다. 결국 국가가 국가 권위를 회복하고자 사용하는 양식은 시각적 상징에서 체험적 신뢰, 나아가 정보·지식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권위주의적 미학과 포퓰리즘의 결합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전자는 강력한 중심화와 단일화된 진실을 신봉하며, 후자는 ‘시민의 목소리’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예를 들어 트럼프 행정부는 다수 국민이 고전 건축을 선호한다고 설파하지만, 실제로는 파시즘적 미감을 강요하고 있다. 반면 디자인 정책은 “시민 중심”을 앞세워 정부가 직접 국민의 주거와 상호작용 공간을 설계함으로써 포퓰리즘적 지지를 얻으려 한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 접근은 궁극적으로 단일한 미적·문화적 질서를 부과한다는 점에서 권위주의적 맥락을 공유한다. 즉, 포스트모던식의 문화적 다원성을 해체하고, 국가가 규정한 ‘하나의 미학’을 통해 대중을 통합·통제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건축·디자인·AI 정책은 각각 상징·경험·인지의 영역에서 통합적 권위 재획득을 시도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적 정치 프로젝트로 볼 수 있다. 즉, 자유주의적·포스트모던적 상대주의를 뒤로하고, 전통·민족주의·수직적 권위를 전면에 내세우는 21세기형 권위주의적 미학이 점차 구조화되는 징후이다. 특히 AI 정책은 그 끝점이다. 사회의 지식·정보 체계를 사실상 자동화하는 기술을 통해 ‘하나의 진실’을 구축하려 하는 시도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학적 여정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미래상을 가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을 비판하는 전문가들은 “가치중립을 내세운 AI 계획은 중립이 아니라 미국 사회가 오랫동안 극복하려던 불평등을 영구화하는 청사진”이라며 경고한다. 즉, 과거의 불평등을 단순 반복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보’라는 명분으로 그것을 제도화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트럼프 행정부의 미학 정책은 디자인과 기술을 통해 문화적 권위를 재편하는 일련의 과정이며, 그 종착점에서 정치적·인지적 권력의 고착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