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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케이트 Jun 10. 2024

12. 친애하는 나의 도시, 도쿄-상

한수희 작가는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이라는 에세이에서 자신의 도시를 교토로 정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거창한 심적, 물리적 준비가 필요한 여행은 그만하고 싶다. 어느 날 문득 ‘아아 떠나고 싶어 졌어’라는 마음이 들면 그대로 공항으로 나가 비행기를 잡아타고 싶은 것이다. 30대가 된 이후로 나는 해마다 교토라는 도시에 간다”라고 말했다.


나의 도시는 어디일까, 파리? 도쿄?

둘 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도시지만, 자주 간 곳으로 치면(8번 정도 간 것 같다) 아무래도 도쿄를 나의 도시로 정해야 할 것 같다. 한수희 작가처럼 거창한 계획이나 굳은 결심 따위 없이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다는 점에서도 도쿄는 나의 도시라 할 만하다.     


제일 처음 도쿄를 가게 된 건 일 때문이었다. K팝 그룹 콘서트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땅을 처음으로 밟아 본다는 설렘도 잠시 첫 해외 취재라는 부담감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소속사가 준비한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다 보니 1박 2일의 시간은 금방 사라졌다. 자유 시간이 잠깐 있긴 했지만 숙소 근처에서 라멘을 사 먹은 게 다다.


그 뒤로도 일 때문에 도쿄를 몇 번 더 방문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출장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스튜디오를 찾은 일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프로모션 때문에 방문했는데, 레전드를 만난다는 사실에 난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그와 인터뷰를 하고 작업 공간을 둘러보고 지브리 박물관을 관람하는 모든 과정이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어릴 때 TV에서 봤던 애니메이션 ‘빨간 머리 앤’이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고 “역시!”라고 외쳤던 기억.


도쿄에 갈 일이 있다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동화 속 세상에 동화되어 본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브리 박물관 관람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그때 동행한 타 언론사 선배가 있는데 출장 내내 단짝처럼 붙어 다녔다. 그 출장에서 처음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그 선배와 찍었던 사진들이 아직도 컴퓨터의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다. 신기한 건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 번도 그 선배와 사적으로 만난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인간관계도 있을 수 있구나, 지금도 신기하다.


그 선배와 나눈 대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 선배가 집을 구입했다는 사실이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였는데(1~2살 많나) 벌써 부동산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작은 충격이었다. 내가 철이 없었던 건지 당시 내 소비의 관심은 가방, 옷, 액세서리 따위였다. 선배에게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 선배가 너무 어른처럼 보였는데, 그 선배의 집 구입 이유가 날 더 충격에 빠뜨렸다. 선배가 이러는 거였다. “글쎄, 난 결혼은 안 할 것 같아(못할 것 같다고 했던가). 그래서 차근차근 노후 준비를 하는 거야."


‘비혼’이라는 말은 아예 없었던 그 시절. 벌써 비혼을 생각하고 부동산을 구입하는 그 선배의 정신연령이라니(거기 다 너무 먼 단어로 느껴졌던 ‘노후 준비‘라니). 그 선배가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거 보면 그 말이 어지간히 나에게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 선배는 말과는 달리 결혼을 했다. 몇 년 뒤 선배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는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와 찍은 사진이 버젓이 걸렸다. 그리고 또 얼마 뒤엔 아기 사진도 보이더라. 피식 웃음이 나면서, 인생이 참 계획대로 안된다 싶었고, ‘혼자 산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제일 먼저 결혼하더라’라는 말이 왜 아직도 회자되는지 알 것 같았다.      


여행다운 여행은 베스트 프렌드와 했던 여행부터다. 당시 친구의 여동생이 도쿄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이참에 일본 여행이나 하자”고 의기투합해 도쿄로 날아갔다.


여동생도 알바를 쉬고 우리를 위해 가이드를 자청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코스프레한 소녀들이 신통방통했던(실제로 이런 걸 하는 사람이 있다니) 하라주쿠 거리도 걷고, 해변 공원이 이국적이었던 요코하마도 갔지만, 사실 여동생이 이끄는 대로 정신없이 다니느라 어디가 어딘지 잘 몰랐다(나중에 여행 책자를 보고 여기가 여기였구나 알았다). 가이드가 있는 여행의 단점을 알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계획을 세우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찾아가는 여행과는 확실히 달랐다. 물론 여동생 덕에 현지인들만 아는 맛집도 가고, 길을 잘 못 찾아 헤매는 수고는 덜었지만 역시 여행의 참맛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대신 추억이 된 건 현지인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체험했다는 것.


여동생이 사는 동네는 관광지와 먼 변두리 지역이었다. 그래서 현지인들의 생활 냄새를 진하게 맡을 수 있었다. 한국보다 아담한 스케일의 주택들(층고도 낮고 문도 작다), 그 앞을 장식하던 자전거들, 무엇보다 거리가 너무 조용했다. 사람들로 넘쳐나던 관광지를 걷다 여동생이 사는 동네에 오면 다른 세계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우리와 닮았지만 묘하게 다른 삶의 풍경들, 냄새들, 사람들. 그런 것들을 보고 맡고 있으면 묘한 설렘이 일렁거렸다.


나는 사실 그런 여행이 좋다. 대단하다는 관광지를 다니며 시그니처 건물, 동상, 풍경 앞에서 사진을 찍기보다 낯선 동네를 걷고, 거실 창으로 보이는 집 안 풍경을 들여다보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하는 것들. 나와 다른 얼굴을 하고,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이 사는 풍경을 훔쳐보는 것이 나를 더 설레게 한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나면 며칠이라도 현지인처럼 지내다 오고 싶어 한다.

백수가 된 파리지엔, 도쿄라이트인 양 카페에서 책을 읽고, 걷다가 만난 동네 서점에서 하릴없이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고, 영화관에 가는가 하면, 어떤 날은 슬리퍼를 끌고 미술관을 어슬렁거린다. 마치 이 도시의 주민인 것처럼. 이런 나의 코스프레가 통했는지 어떤 날은 현지인들이 현지 말로 길을 물어오기도 한다. 물론 내가 아는 길이라면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몇 년은 이 동네에 살았다는 듯.


그래서 친구 여동생과 보냈던 며칠 중 가장 좋았던 건 장을 보던 시간들이다. 우리는 관광을 끝내고 어스름한 저녁 무렵 돌아와 저녁을 해 먹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쌀 문화권이지만 우리와 다른 식재료들이 널려 있었고, 한국의 먹거리들과 비교하는 재미가 솔솔 했다.


장을 본 우리는 여동생이 살고 있는 작은 아파트로 향했다. 방 한 칸에 부엌 겸 거실이 달린 작은 아파트였는데 며칠 동안 친구와 좁은 공간에서 복작복작 지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일본 TV를 보며 마트에서 사 온 식재료로 저녁을 만들었다. 그 음식들을 친구 엄마가 챙겨준 반찬과 함께 먹었다. 그리고 좁은 다다미방에서 친구와 늦게까지 수다를 떨다 잠이 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완벽하게 도쿄라이트, 도쿄 사람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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