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

by 리현남
김치찌개 냄새가 난다.


어떤 방이 보인다. 예닐곱 살 정도가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그보다 한두 살 정도 더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가 보인다. 둘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두런두런 얘기를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작은 웃음이 들려오는 것도 같다. 텔레비전에서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만화영화가 방영되고 있다. 토끼가 나오는지, 로봇이 나오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만화영화가 분명하다. 계절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텔레비전 위 창문이 아직 완전히 익지 않은 귤색으로 물들어가는, 공기의 색깔이 점점 붉어지는 방의 분위기를 볼 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어느 때 오후 6시나 7시쯤이 아닐까 짐작한다.


아이들의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부엌에 있다. 곧 집으로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며 저녁을 준비하는 중이다. 여자는 20살의, 지금으로 생각하면 너무 이른 나이에 고향에서 만난 여자만큼이나 젊은 남자와 만나 첫째를 낳았고 그 이듬해인가 결혼했다. 남자는 큰 키에 풍채도 좋고 잘생긴 해군 하사였고, 여자는 당시 여자치고는 큰 키에 쌍꺼풀이 없는 긴 눈을 가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회사에 다니던 참이었다. 서로가 어떤 면에 이끌려 부부로 살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잘 어울리는 한 쌍이리라.


다시 부엌이다. 여자는 김치찌개와 몇 가지 반찬을 준비한다. 김치찌개는 시골 본가에서 작년 겨울 전에 보내주신, 이제 막바지라 시큼한 냄새가 나는 김장김치와 큼지막한 업소용 참치캔에서 참치살을 듬뿍 담아내어 끓이고 있다. 아이들도 먹여야 해서 그리 맵게는 하지 못하지만 적당히 칼칼한 맛일 것이다. 다른 반찬은 시금치, 멸치볶음 같이 흔히 볼 수 있는 소소한 반찬들이고, 여자는 서울물가가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다고, 이런 푸성귀는 고향에서는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라고 푸념하듯 혼잣말을 흘린다. 김치찌개가 다 되어간다. 여자는 가스레인지를 약한 불로 줄이고, 부엌 옆에 있는 다용도실의 작은 창문으로 남자가 오는지를 흘깃 살펴본다.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는 아빠 오셨다.라고 아이들에게 얼른 나가보라는 손짓을 하고 아이들은 현관으로 달려 나간다. 아빠하고 힘차게 안겼는지. 다녀오셨어요 하고 짐짓 예의를 갖춘 몸짓으로 꾸벅 인사를 했는지는 보이지 않지만, 남자는 우리 아들들 잘 있었나. 라며 너털웃음 한 번에 아이들을 껴안아주었을 것이다. 남자를 본 여자의 얼굴은 어쩐지 생기가 돈다.


남자는 씻으러 욕실로 들어가고 여자는 급히 밥솥에서 갓 지은 밥을 하얀 사기그릇에 소복이 담아낸다. 금세 동그란 밥상에는 밥 네 공기와 김치찌개 솥, 반찬 세네 가지가 차려지고 숟가락, 젓가락이 놓인다. 밥 먹자는 여자의 말에 남자는 밥상을 들고 텔레비전이 틀어져있는 방으로 들어가고 그렇게 네 식구는 동그란 밥상에 모여 앉아 여자가 준비한 저녁식사를 먹는다. 텔레비전 소리와 쩝쩝거리는 소리, 후후룩 소리가 겹쳐 들린다. 간간히 웃음소리가 들리고, 이런저런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김치찌개 냄새가 난다.


냄새나 소리가 과거 어떤 때의 기억을 불러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나는 김치찌개 냄새가 나면 자연스럽게 이 모습이 떠오른다.


예나 지금이나 하급 공무원의 삶이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지만, 너무나도 부족한 것이 많았겠지만, 어쩐지 부족함을 느낄 수 없었던 유년기였다. 나의 유년기는 언제나 풍요롭고 따뜻했다.


김치찌개 냄새가 나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라는 의미 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시절의 아빠, 엄마, 동생이 보고 싶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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