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by 리현남
행아 아빠가 프로스펙스 신발 사 왔다. 나와봐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는 초등학교 시절 어느 날, 아버지는 프로스펙스 운동화를 사 오셨다며 나를 부르셨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인 80년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표되던 경제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한창 나아지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내 주위의 사람들은 경제성장의 중심에서 그 혜택을 누리던 사람들보다는 그보다 먼 가장자리에서 냄새나 맡는 수준의 혜택이랄 것도 없는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던 곳은 지금은 서울의 대표적인 뉴타운으로 개발되어 예전의 궁핍한 모습은 전혀 알아볼 수 없이 발전되어 버렸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서울에서도 저소득층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물론 당시 해군본부가 그 지역에 있어서, 다른 곳보다는 개발이 제한되는 제약이 있어서라고 생각은 들긴 하나 어쨌든 잘 사는 동네는 아니었고, 대부분 내가 아는 사람들은 군인이거나 군인의 자식이거나 회사를 다닌다고 하더라도 고만고만한 경제력을 보유한 사람들이었다. 라고 기억한다.


기억컨대 초등학교 고학년 전에는 어머니가 집 앞 대신시장에서 사 오신 캐릭터가 그려진 신발과 옷들을 입는 게 다였다. 그 당시 제일 기억에 남는 시장표 옷은 배트맨 마크가 위아래로 크게 들어간 검은색 체육복이었다. 그게 어떻게나 좋았던지 매일 그 옷만 입고 다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브랜드가 뭔지 그런 게 좋은 건지 나쁜 건 지에 대한 개념도 희박했었다. 다만 텔레비전에 광고로, 운동경기에서, 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을 뿐이다.


아버지가 사 오신 프로스펙스 신발은 하얀색에 검은색 마크가 길게 들어간 가죽신발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던 신발을 신겨주시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을 것 같았던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좋아하던 것도 잠시. 신발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만다.


아빠. 신발에 구멍이 하나 없어요.


그랬다. 신발 발목 부분에 마지막으로 신발끈을 넣는 구멍이 하나 없었다.

아빠도 짐짓 당황한 표정을 숨기며 그래? 하고 신발을 유심히 보셨다. 진짜 그러네. 이놈들이 신발을 어떻게 만든 거야! 격앙된 목소리로. 아들에게 좋은 아빠가 될 찬스가 무력화됨을 분개하는 것처럼. 화를 내시며 말하셨다. 가자. 바꾸러.


그렇게 아빠가 앞장서고, 나는 신발박스를 소중히 들고 아빠를 뒤따르며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그리고 영등포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린 후 인근에 있던 프로스펙스 대리점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어떤 거 찾으세요? 신발을 샀는데 신발끈 끼는 구멍이 하나 없네요. 바꿔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점원이 신발박스를 받아 들고 창고로 들어가 잠시 뒤 나오더니, 손님 죄송한데 이 제품은 정상제품이 아니라 우리 매장에서는 교환이 안됩니다.


점원과 아빠의 대화는 여기까지 들은 것 같다. 정상제품이 아니다. 점원은 이렇게 얘기했다. 그게 지금의 상설할인점 같은 곳에서 산 제품을 의미한다는 것은 나중에 미루어 짐작하는 정도였다. 그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다. 아빠가 상설할인점에 가서 사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마 누군가 선물을 해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들을 주기 위해서, 기뻐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들고 오셨을게다.


아빠의 얼굴이 발개졌다. 덩달아 나도 얼굴이 후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어디서 바꾸는지 아세요? 그건 저희도 잘 모르겠는데요.


이번에는 아빠가 신발박스를 들고 앞장서고 내가 그 뒤를 졸졸 따랐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집 앞 시장 앞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아빠는 집으로 가는 시장길을 따라 걸었다. 나도 아빠도 말이 없었다. 아빠는 대신시장 길가에 있는 구두수선집으로 들어가셨다. 한평 남짓한 구두 수선방에는 60은 넘어 보이는 아저씨가 여자 구두를 수선하고 계셨다. 아빠는 신발을 꺼내 아저씨께 건네며, 여기 구멍이 있어야 되는데 없다며, 이놈들이 신발을 무슨 생각을 하고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짐짓 큰 소리로 설명을 해주셨다. 아저씨는 신발 좋네. 이 신발 니 거야? 네 아빠가 사주셨어요. 그래. 가죽이 좋아서 20년은 신겠다. 하곤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아저씨는 공구함에서 짧은 빨대같이 생긴 금속 관을 꺼내 원래 신발끈 구멍이 있어야 할 곳에 놓고 그 뒤를 망치로 톡 치셨다. 그랬더니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했을 법한 구멍이 금세 생겼다. 우와. 나는 탄성을 질렀다. 감사합니다. 얼마 드려야 돼요? 뭘 줘요 그냥 가세요. 잘 신어라.


아빠가 앞장서 집으로 갔다. 그리고 다시 신발박스는 내가 들고 아빠를 뒤따랐다.


모든 기억이 영화처럼 생각나는 건 아니지만 지금도 기억의 단편이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조각조각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한 번씩 불현듯이 재생된다. 나도 그때의 아빠 나이가 되고 내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아빠는 그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한 번씩 궁금해진다. 아들에게, 점원에게, 부끄러우셨을까.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셨을까. 지금은 여쭤볼 수도 없는데.


별일 아니었다고. 아들이 좋아하니 됐다고. 생각하셨었으면 좋겠다.


나도 그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