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리현남

며칠 전 올해 아홉 살인 둘째 아이가 퇴근해 돌아와 욕실 화장대 앞에서 양치질을 하고 있던 나를 빤히 바라보며 "아빠. 아빠는 내 나이 때 꿈이 뭐였어?" 라고 물어봤다. 순간 망설였다. 무어라고 대답할지. 무어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아빠꿈은 우리 아들 아빠가 되는 거였어."라고 얼버무리듯이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웃긴 답변이지만 아이는 "그럼 아빠는 꿈을 이룬 거네?"라고 이야기했다. "그래 우리 아들이 태어나면서 아빠는 꿈을 이뤘지. 우리 아들은 꿈이 뭐야?" 라고 물으니 "나는 경찰관도 되고 싶고 화가도 되고 싶고 그래." 라고 답한다.


나도 무언가가 되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를 다닐 때는 친구들의 꿈이 대부분 비슷했다. 꿈을 물어보면 대통령, 과학자가 대부분이었다. 당시에는 의사나 운동선수가 선망받는 직업은 아니어서 공부 잘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들으면 대통령은 몰라도 과학자 정도는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우리 아이 나이 때 나의 꿈도 과학자였다. 정확하게는 뭘 하는지는 몰랐지만 당시 드라마나 만화영화에 나오는 과학자는 세상에 없는 것들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어두컴컴한 실험실에 삼각형, 사각형, 원통형 등의 가지각색 모양의 비커가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설치되어 있고, 그 안에는 색색의 알 수 없는 액체들이 끓고 있다. 물론 비커 위로는 하얀 연기가 계속 뿜어져 나온다. 그 옆에 서있는 과학자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이 정도의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과학자의 사무실과 과학자의 모습이었다. 내가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언제까지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오래도록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되고 싶은 것의 실체가 없으니 그럴만했다.


그 이후로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당시 부모님은 내가 한의사나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당시 공부를 제법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터라 부모님의 기대가 컸었던 것도 사실이고, 나도 당시에는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누가 물어보면, 한의사가 또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이 꿈도 2학년 이과와 문과를 선택해야 하는 길목에서 내가 문과를 선택하면서 자연스레 포기하게 되었다. 수포자가 의사가 되는 것은 아마 코끼리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일 테다.


대학은 서울에 있는 별 볼 일 없는 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경영학과를 입학한 것도 뜻한 바가 있어서였던 것은 아니고 나중에 취직하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연히 학교에 대한, 학과에 대한 소속감이나 애정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냥 아는 사람들과 술 먹고, 놀러 다닌 게 전부인 대학생활이었다. 남들 다한다는 학회나 동아리도 가입하지 않았을 만큼 학교를 따돌리며 생활했다. 물론 3학년 때 ROTC에 합격하여 학군단 생활을 하긴 했지만 기본적인 생활은 비슷했다. 아는 사람들이 학군단 동기들로 바뀐 것뿐.


그나마 관심 있었던 것은 있었는데, 영화 보는 것을 참 좋아했다. 주말이면 기숙사 근처에 있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비디오 두세 개를 빌려와서 기숙사 휴게실에 틀어놓고 보곤 했는데 그때 마시던 콜라, 태우던 담배가 그렇게 좋았다. 외국의 블록버스터뿐만 아니라 당시 한석규 씨가 주연으로 출연한 접속, 쉬리가 한국영화의 붐을 일으킨 시절이었던 터라 재미있는 한국영화도 굉장히 많이 개봉했고, 종로 3가의 피카디리극장이나, 서울극장, 단성사 같은 대형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당시 내가 가장 행복해했던 일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영화감독이 되면 어떨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글 쓰는 것과 비슷한 일이기는 하지만 생각을 화면으로 구현한다는 면에서 글쓰기보다 더 자극적이었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되고 싶다는 생각은 생각으로 그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보면 용기가 없어서였다. 두려움이 많아서다. 다니던 학교도, 학교 마치고 바로 가야 하는 군대도, 부모님을 설득해야 할 생각도 다 걸렸던 거다. 그래서 해보지도 못했던 거다.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


지금은 군대 전역 후 입사한 기업에서 지금까지 15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 다행히 이런저런 직무가 주어져 사내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과 친구들, 동료들의 눈을 너무 의식하지 않았던가 라는 생각이 사십 대 중반을 지나가고 있는 지금 마음을 시리게 한다. 그리고 지금도 온전한 나로 살아가고 있는지, 하고 싶은 것을 할 의지가 용기가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아들이 다시 아빠의 꿈이 뭐였냐고 물어보면, 사실은 아빠는 꿈이 없었다.라고 하는 편이 옳겠다. 하지만 우리 아들은 세상의 눈치를 보지 말고, 아들이 생각하는, 하고 싶은 모든 것을 경험해 보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나중에 아들의 아이가 아빠꿈이 무엇인지 물어봤을 때 아이를 안아 들고 소파로 가서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아들이 가졌던 꿈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했던 노력, 경험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아빠처럼 재미없는 삶을 살지 말라고.


오늘 퇴근하면 말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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