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중국에서 코로나
92년생 올해 32살인 나는 암에 걸렸다. 결혼하고 나서 2년도 안된 채 암이 발견되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온 나는 아픈몸보다는 허무함과 좌절감이 더 심하게 느껴졌다.
중국에서 약 2년간 유학생활후 4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나서 비로소 코로나때문에 나는 한국에 돌아왔다. 만약 코로나가 아니였다면, 나는 아직도 중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지냈을 것이다.
그냥 다른사람과 다를바 없이 평범했던 일상이었는데, 각종 질병에 걸리면서 점점 무언가를 하는 것이 큰 도전이 되고, 사람 만나는 것조차 버거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약 4년 전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때문에, 중국 전역이 난리도 아니었다. 내가 통역과 한국어 강사로 생활을 했던 광저우 역시 약 한달만에 고속도로가 봉쇄되고, 대부분의 비행기는 오도가도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으나, 버스며, 항공이며, 우리가 이동할 수 있는 수단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걸 깨닫고 난 뒤에서야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일주일동안 고속도로와 항공편이 풀렸었는데, 나와 동료들은 그 때 도주하듯이 한국으로 돌아와버렸다. 그 날 광저우에는 항공편이 없어, 심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겨우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행히 광저우는 2선 도시라서, 교통이 매우 발달되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때 광저우에서도 코로나 환자들이 몇몇 발견되어, 버스대신 택시를 타고 심천으로 이동했다.
그 때 챙겼던 물품은 그저 옷 몇벌과 아이패드, 화장품 등이 다였다. 노트북도 챙기지 못해, 그냥 살던 집에 두고 나왔다. 그 외 기타 물품들인 그릇, 이불, 여벌의 옷, 주방용품 등등은 당연히 챙기지 못한채 그대로 한국에 정착해버렸다.
사실 우리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해, 그냥 간단하게 챙겨서 돌아왔는데, 4년 가까이 중국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결혼까지 해 이미 남편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와버렸다.
이 일을 겪은 후 정말 사람일은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구나! 라는 걸 많이 느낀다. 내 인생이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생...
하지만, 보면 나는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무조건 한국으로 나와야만 했었을 것 같다. 암이 발견되기 전 자궁근종이 9cm까지 자라면서 자궁근종 수술을 해야만 했기 때문, 결국 나는 한국에 나와야만 했었을 것이다.
그 시기가 조금 당겨졌을 뿐, 한국에 나온 지금은 후회 없다.
지금의 상황에서도 난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이런 생각을 문득 하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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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지금까지도 중국 광저우에 남아 있었다면, 이 암은 발견 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