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숙소 지붕을 두드리며 비가 내린다.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는 심한 바람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진듯하다.
스페인을 떠나 포르투로 가는 오늘 바람이 무척 거세졌다.
40년의 모범적인 직장인의 삶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는 삶을 위해 순례길을 선택했다.
20여 일 동안 걷기가 아닌,
버스, 택시로 이동했던 여정이었지만
용서의 언덕도,
철의 십자가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내겐 큰 행운이었다.
그리고 순례길에서의 감동과 감탄을 그림으로 승화시켰다.
이제 포르투에서는 철저한 여행객이 되리라.
호스트가 예약해 준 택시를 타고
포르투로 향하는 Alsa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도착했다.
스페인에서의 행복했던 시간과 아쉬운 마음을
찐한 에스프레소 한 잔에 녹여 마신다.
부드럽게 터미널을 빠져나간 버스 차창 위로
후드둑 빗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버스가 속력을 낼수록 빗발은 더욱 거세어진다.
포르투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리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4시간을 꼬박 달린 버스는
드디어 블루의 나라 포르투에 도착했다.
촘촘히 이어지는 집들 사이에서
알록달록한 색으로 치장한 집이 마주 보이는
2층 숙소에 짐을 풀었다.
호스트의 유쾌한 말투와 몸에 밴 친절한 안내를 받고
포르투 거리로 서둘러 나왔다.
포르투의 맛과 멋의 메카 '산타 카타리나' 쇼핑거리가
숙소에서 멀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눈길을 유혹하는 볼거리, 먹거리와 유명한 마제스틱 카페를 포함하여
수많은 상점과 맛집이 몰려 있어 포르투에서 가장 바쁘게 오가는 도로이다.
버스킹 연주자의 음악이 더해지니 활기가 넘치고
여행객인 나의 마음도 들썩이게 한다.
쇼핑 중심가 네거리 귀퉁이에는
규모는 작아도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으로
'영혼의 성전'이라는 뜻의 알마스(Almas) 예배당이 있다
건물 전체가 아쥴레쥬로 장식된 곳은 이곳뿐이라는데
푸른빛 아줄레쥬로 인해 두 눈에 파란 물이 들 정도이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수채물감이 울트라마린 블루이다.
하늘, 바다, 나무, 오래된 건물을 표현할 때도 블루는 자주 쓰인다.
블루에 꽂힌 나는
마제스틱 카페 맞은편 화방에서 저널북과 블루 물감을 구입한다.
포르투의 명물 볼량시장으로 향했다
19세기에 신고전주의 양식을 유지하던 재래시장을
2여 년의 공사를 거쳐 현대식으로 재탄생된 시장은 깔끔했다.
입구에는 포르투갈인의 소울푸드,
바칼랴우의 재료인 대구 조각상이 세워져있다.
천 가지 이상의 레시피가 있을 정도로
포르투갈 사람들의 식문화에 떼어놓을 수 없는 대구 생선을 포함해
과일, 향신료, 기념품 등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물건들이 나열돼 있다.
예전의 전통재래시장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돌고 또 돌고......
역시 사람 냄새를 맡으려면 시장이지!
대서양에서 불어온 바람이 빛바랜 거리를 쓰다듬고 지난다.
세월의 두께가 쌓인 골목길을 휘적휘적 걸으며
만나게 되는 포르투 사람들
스페인 사람들의 화려하고 열정적인 모습 대비
거리가 조용할 정도로 소박했던 것에 반해
포르투 사람들은 장소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활기찬 모습이 대조적이다.
비가 내리는 거리를
우산을 펼 생각조차 안 하고 걷는
밝은 표정의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쳐난다.
그것뿐인가
도우루강변의 낭만이 손짓하고,
포르투갈의 생생한 역사를 아줄레주로 새겨놓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벤투 역과
달콤한 포트와인이 익어가는 빌라 노바드 가이아의 와이너리,
그리고
정류장이랄 것도 없이 포르투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어스름한 저녁 수은등 불빛을 흩뿌리며 지나가는
트램은 여행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집 채만 한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다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도우강과 대서양이 만나는 포즈 해변,
내일부터 이곳들을 마실 다니듯이 하나하나 찾아다닐 것이다.
여행지에서는 더욱 허기를 느낀다.
우리도 포르투에 왔으니 소울푸드를 먹어야지.
볼량시장 2층 제법 격조 있는 바칼라우 전문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으로 포르투의 첫날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