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길]

기러기 고기를 아십니까?

by 신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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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오늘의 출발점, 장성역에 도착했다.

전봇대에 삼남길 시그널이 가려졌다는 공지를 미리 새기고 왔는데도

우왕좌왕하다가 광주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을 작은 천을 따라 걷는 길,

하얗고 탐스러운 수국이 줄을 잇는다.

'야 이 도둑놈아 그만 좀 뽑아가라' 현수막이 눈길을 잡는다.

애써 심어놓은 수국을 얼마나 뽑아갔길래...

낮은 구름이 짙게 내려앉아 비라도 쏟아질 기세인데 비는 오질 않고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 지쳐갈 무렵 글램핑장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보인다.

반갑고 또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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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몰려가고 푸른 하늘빛이 펼쳐진다.

바늘처럼 예리한 뙤약볕이 땅거죽을 치고 더위를 부추긴다.

더위를 피하려 굴다리를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 또한 빨라진다.

굴다리 벽면에 그려진 고래 그림이 반갑기만 하다.

기러기 별똥별 우영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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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지나면 논둑길을 따라가라고 지도는 돼 있는데 삼남길 표시가 전혀 없다.

어! 여기가 아닌가벼...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정자 아래 편하게 쉬고 계신 할아버지께 길을 여쭈어봤다.

쭉~~가면 길이 나온다고 알려주신다.

알려주신 논두렁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풀과 억새에 뒤덮여 길이 사라졌다.

키보다 더 큰 억새, 무성한 풀숲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두렵기까지 하다.

난감한 상황임에도

용감하게 앞장섰던 햇살과 수리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왔지만

들판의 침입자 미국가막사리가 온 몸에 잔뜩 붙어 가시 갑옷을 두른 듯하다.

떼내어도 티도 안 나는 가시를 서로 떼어주며 사춘기 소녀들처럼 깔깔 웃어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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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들리는 물소리가 속삭임처럼 은은하다.

변화하고 진화하는 도시에 비해 지금의 농촌은 젊은이들이 빠져 나가

핼쑥하고 버림받은 퇴기처럼 우수에 젖어 있지만

그 길 위에 서 있는 우리들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을 걷는다.

산과 산 사이에 초록 벼 잎들이 마치 파도처럼 일렁인다.

빙월당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 앞에 서 있는 햇살의 뒷모습이 아련하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오막살이는 없고 끝없이 펼쳐진 길뿐이다.

빙월당을 지나면 숙소로 가는 길인데

풀섶을 헤치고 나오느라 덥고 힘들지만

초록 초록한 논을 두 눈 가득 물들이며 전진스탭을 밟는다.

뉘엿뉘엿 해는 잦아들고 구름이 솜 이불처럼 둥실둥실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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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날씨를 피하는 방법

06시 36분 출발

우렁이가 꼬물대는 물 댄 논의 풍경은 싱그러운 아침을 내어 준다.

붉은 기운을 내뿜던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하고

베롱나무가 끝없이 늘어서 있는 빛고을 산들길을 우린 각자 말없이 걸어갔다.

해는 중천에 떠올라 정수리를 뜨겁게 하는데 얼마를 걸었을까.

들판에 마트가 있을 리 없는데 생수는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입석마을을 지나고 끝날 것 같지 않던 저수지 끝에 다다랐을 즈음

언덕 위에 간판이 어슴푸레 보인다.

'선기러기 요리전문점'

"뭐야, 기러기 요리?"

감국이가 성큼성큼 언덕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계세요?" 기척이 없다. 돌아서려는데 안에서 소리가 들린다.

반가운 마음에 아니, 포기할 수 없는 간절함을 담아

"혹시 맥주 좀 마실 수 있을까요?"

사장님은 무심하게 답한다.

"그러셔요" 브레이크 타임인듯 한데 에어컨도 켜 주시고 맥주만 시켰을 뿐인데

이것저것 반찬도 내어주신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기러기 떡국을 시켰다.

기러기 고기는 무슨 맛일까?

평상시 먹어 본 음식이 아니어서 일행들 모두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지치고 힘들게 걷는 우리들에게는 보약 같은 음식이었다.

사장님의 고마운 마음은 이 길을 걷는 내내 잊지 못했고

삼남대로 길을 마무리한 지금도 그 날을 회상하는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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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약으로 충전하고 또 얼마쯤 걸어왔을까

어느새 유곡리 1구 감정마을 표지석이 보인다.

키 큰 소나무가 만들어 준 그늘에 철퍼덕 주저앉아

장성역으로 데려다줄 택시를 기다린다.

어구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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