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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Jan 12. 2022

내가 지켜줄게 1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

- 첫 번째 이야기 : 사람들이 이사를 간다 -


아주 오래 전 이 동네는 산이었다. 힘들었던 시절 갈 곳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집을 짓고 살게 되면서 마을이 되었다. 거미줄처럼 촘촘히 언덕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두 다리 위에는 어느 새 묵직한 돌덩이가 채워진다. 가파른 곳이 많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곳에는 갈 곳 없는 고양이들도 제법 많이 살고 있다. 


마당쇠와 가필드는 옆동네에 아파트가 올라 서면서 이 곳으로 쫓겨온 아이들이고, 족보 있는 노르웨이숲 고양이 탄이는 한국으로 유학 왔던 외국 학생이 귀국하면서 버리고 간 아이다. 등등 해서 이 동네에는 어림잡아 200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아웅다웅 살아가고 있다. 이 곳 사람들의 무거운 표정들과는 달리 고양이들은 이 마을을 좋아한다. 미로 같은 골목 곳곳에는 양이들을 위한 놀이터와 편히 지낼 수 있는 은신처가 많이 있고, 간혹 비어 있는 집은 사람들에게는 폐가로 보이지만 양이들에게는 훌륭한 그들만의 저택이 된다. 또한 마을 사람들의 힘든 일상은 역설적으로 양이들에 대한 관대한 무관심으로 작동되어 말 많은 옆동네 아파트보다 쫓겨 다니는 일도 더 적다. 물과 밥을 주고 있는 몇 명의 캣맘들 덕분에 조금만 부지런하면 굶을 염려도 없다. 소외된 사람들의 삶과 방치된 그들의 공간이 고양이들에게는 훌륭한 안식처가 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런 동네에 언제부터인가 변화의 물결이 몰아치고 있다. 조합이 주도하던 재개발이 승인을 받으면서 동네 여기저기 플랜카드가 나붙기 시작했다. 재개발을 축하한다는 플랜카드부터 12월 말까지 집을 비우라고 하는 위협적인 플랜카드까지 온통 강렬한 색채의 내용들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어제는 꽤 여러 집들이 이사를 갔다. 골목은 좁고 언덕이 많아서 짐을 손으로 일일이 운반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1960년대로 시간이 맞춰진 모습이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동네 여기저기에서 하루 종일 시끄러웠다.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이제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사람들이 떠난 마을은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신기한 풍경으로 남겨졌다. 비어버린 동네 집들은 쌓인 쓰레기만 아니라면 당장 누군가 들어가 살아도 될 만큼 예전 그대로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공사 가림막은 거대한 이 공간을 삶과 죽음의 시간으로 나누고 있는 듯하다. 체온이 느껴지는 바깥 마을과 모든 것이 정지된 골목길 마을이 대비된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출입문에는 조합측에서 고용한 사람들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혹시 범죄가 발생하거나 버려진 물건들로 인해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마을은 이렇게 반년이 지나 유령 마을이 되어버렸다.


https://youtu.be/HcWMGCEfo9M


- (예고) 두 번째 이야기 : 남겨진 아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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