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원기 Jan 14. 2022

내가 지켜줄게 2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 : 남겨진 아이들 -


이제 마을은 고양이들 차지가 되었다. 고양이들이 마을을 지키는 새 주인이다. 사람들의 영혼마저 느낄 수 없는 텅빈 공간에는 널부러져 있는 쓰레기들과 깨진 유리들로 가득하지만 고양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마냥 즐겁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만 빠져버린 특별한 일상을 맞이한 양이들은 빈집들을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있다. 사람들 눈치볼 걱정 없이 일광욕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마을 한 쪽 끝 공터 옆에 자리하고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는 언제나 김씨 할아버지와 친구들 차지였지만 이제는 양이들 놀이터가 되었다.


마당쇠는 이전에도 마치 순찰하듯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곳 저곳을 살펴 왔었지만, 달라진 지금은 오히려 돌아다니기 싫어하는 눈치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기름을 뿌린 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매일 보던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스치듯 지나치면서 인사를 나누고 연어 캔도 얻어먹던 그 때가 더 좋았다. 지금은 예전에 잠을 자던 폐가 대신 그 옆에 있는 마당 딸린 2층 남향집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지만,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 하는 친구는 가필드가 전부다. 다른 고양이들도 모두 집 한 채 씩 선택하여 들어가 살게 되면서 즐겁지만 무언가 이상한 새로운 마을을 경험하기에 바쁘다. 할 일은 줄어들었지만 조용한 마을은 마당쇠에게는 무료한 풍요로움이 되어버렸다.

마당쇠


가필드는 사실 마을이 재개발 되기 3개월 전까지는 가족이 있었다. 엄마 고양이, 같이 태어난 고양이 남매들까지 5식구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고양이가 마음을 먹었고, 가필드와 남매들은 모두 독립을 하게 되었다. 마을 끝에 살고 있었던 가필드는 골목을 떠돌다 마당쇠를 만나게 되었고, 때론 아버지처럼 때론 어머니처럼 대해주는 마당쇠에게 의지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거부당했지만 어느 날 다른 고양이에게 공격을 받고 있던 가필드를 지나가던 마당쇠가 보호해 주기 시작하면서 둘은 한 가족이 되었다. 지금은 마당쇠로부터 생존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까지는 밥이나 물을 찾는 방법,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방법 등 배울 게 많은 상태다. 마당쇠는 남자 아이인 가필드에게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싸우는 기술도 가르치고 싶지만 아직 어려서인지, 아니면 마음이 여러서인지 가필드는 이 부분만큼은 배우기 싫어한다. 동네가 다 비어 있지만 가필드에겐 마당쇠가 여전히 전부다.


마당쇠와 가필드



러브는 성격이 쾌할한 여자아이다. 재개발 되기 전에도 러브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단촐하게 살고 있는 큰 집에서 혼자 살았다. 누군가 키우다 버려진 러브는 힘든 과거가 없는 아이처럼 늘 밝았다. 과도할 정도로.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러브는 만나는 양이들마다 놀자고 한다. 그런데 자신은 놀고 싶어 말을 거는 정도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러브의 행동에 다른 고양이들은 시비를 거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점잖은 신사 탄이에게 장난을 걸다 한 대 맞아 코 위에 선명한 손톱 핏자욱을 갖게 되었다. 러브에게 있어 비어버린 마을은 엄청난 장난감이 되었다. 쓰레기 더미 마저 러브에게는 흥미로운 놀거리가 되었고 빈집들은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지겹지 않은 끝없는 놀이동산이 되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이미 다른 양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집에 러브가 예고도 없이 불쑥 들어가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러브는 장난꾸러기에다 침입자에다 거친 행동까지 겹쳐 다른 고양이들로부터 호감을 사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최근에는 좀 피곤한 지 인상이 찌그러져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러브는 새로 바뀌어버린 이 세상이 여전히 즐겁다.


러브


다른 고양이들도 다르지 않다. 모두가 갑자기 변해버린 환경에 놀라움 반, 즐거움 반으로 일상을 즐기기 시작했다. 햇살이 들지도 않는 지하 통로 구석에 쪼그려 눈치 보며 잠을 자야 하던 시절이 지나가고, 이제는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마당의 감나무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낮잠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길이 곧 집인 길고양이 인생에 있어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는 것만큼 행복한 것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떠나버린 이 마을은 고양이 태평성대의 시절을 맞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즐거운 놀이터의 상황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캣맘들이 비닐 장막 사이로 몰래 들어와 밥과 물을 주곤 했지만 경비원들의 제지로 캣맘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조금이나마 먹을 수 있었던 밥과 물을 구경하기 힘들게 되었고, 심지어 겨울이 지나가면서 버려진 쓰레기들에서는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집을 가진 고양이들은 하나 둘 말라가기 시작했고, 일부는 비닐 장막 밖으로 나가 밥을 구하기도 했지만 영역을 잘 벗어나지 않는 고양이들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재개발 지역 바깥 마을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도 이들이 나오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잘못 나갔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어제는 마을 반대편 입구에 살고 있는 초원이가 깨진 창문 유리 조각에 발을 베어 피를 흘리는 일도 벌어졌고, 태어난 지 5개월도 채 안된 누렁이는 배고픔에 그만 썪은 음식을 입에 대었다가 그만 하늘나라로 떠나버리기도 했다. 마당쇠와 가필드도 사정은 다르지 않게 되었고 탄이, 러브, 하양이, 모찌 등등 이 마을의 새로운 주인들은 모두 이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 (예고)세 번째 이야기 : 사람들이 나서다 -

작가의 이전글 내가 지켜줄게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