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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Jan 18. 2022

내가 지켜줄게 3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 : 사람들이 나서다 -


캣맘 에스펜은 고양이 마을 바로 옆 아파트에 살고 있는 중년 부인이다. 아이들에게 밥을 챙겨주기 시작한 지는 벌써 10년이 넘었고, 매일 밥을 주는 아이들은 30여 마리 정도 된다. 에스펜의 캣맘 여정은 이 아파트로 이사 온 이후부터 시작 되었는데, 첫 해에는 자비를 들여 총 19마리의 길고양이들을 중성화 하기도 했다. 오래된 마을 입구에 지어진 아파트였기 때문에 주변에는 늘 고양이들이 많았는데, 밥과 물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 병든 아이들, 사람들에게 쫓기는 아이들, 어미 고양이를 잃어버린 아이들 등 마음 아픈 모습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조금 씩 밥을 챙겨주게 되면서 캣맘의 길을 가게 된 케이스다. 마당쇠와의 인연도 8년 전 이 아파트 앞에서 처음 만났던 것이 시작이었다.


지난 8년 동안 캣맘을 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요즘처럼 걱정이 많은 적도 없었다. 재개발을 한다며 조합이 동네 곳곳에 이사 가라는 현수막을 쳐놨고, 사람들은 이미 95% 이상 떠난 상태이기 때문에 이 지역 고양이들의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지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훤하다. 재개발 마을 고양이들은 사람들이 사라져 빈 집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초기에는 이런 상황을 즐기기도 하지만, 점차 밥과 물도 함께 사라져 버리게 되면서 사막보다 못한 열악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후 인부들과 포크레인이 들어와 건물을 철거하기 시작하면 도망 갈 곳이 없는 고양이들은 빈 집으로 들어가게 되고, 결국 집들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이 마을도 곧 장막이 쳐지고 철거작업이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에 에스펜의 걱정은 커지고만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캣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지역이 곧 폐쇄될 예정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 전에 남아 있는 길고양이들을 구조해 보자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에스펜도 모임 장소에 달려갔다. 구조는 장막이 쳐지기 전까지인 3일 동안이고 구조한 아이들은 일단 인근 지역에 방사한다고 한다. 이 지역이 폐쇄된다는 말을 들은 캣맘들이 급한 마음에 무엇이라도 해보자고 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구조 첫 날 굶주린 아이들이 아나 둘씩 쉽게 잡혀주었다. 양이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포획하는 줄 알고서도 제 발로 틀 안에 들어갈까?


에스펜은 이 날 잡힌 아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포획틀 안에서 두려움에 떨면서도 ‘저좀 살려주세요’ 라고 말하는 눈빛을 보며 에스펜의 눈에도 이내 눈물이 고였다. 3일 동안 구조된 아이들은 모두 45마리였다. 이들 중 몇 마리는 그 자리에서 입양이 되어 갔지만 다른 아이들은 옆 동네와 인근 산에 방사되었다. 


에스펜은 첫 날 잡힌 흰둥이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연락을 받고 이 모임에 나온 캣맘 그런아이와 모모가 이 아이는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 같다고 제안했고 에스펜이 이에 응한 것이다. 흰둥이는 병원에서 여러 검사와 치료에 중성화까지 받은 후 에스펜의 집에 가게 된다. 이를 계기로 에스펜과 그런아이, 모모 세 사람은 몇 일 후 다시 만나 이 지역 고양이 구조에 대해 의견을 나누게 되었다.


(에스펜)'산에 방사하게 되면 아이들이 과연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중성화나 치료도 안하고 마치 동물의 왕국 다큐에서 보듯이 그렇게 거주 장소만 바꿔준다고 이 아이들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아이)‘그러게요. 산에 풀어주면 거긴 밥 주는 사람도 없고 살기가 더 어려울거예요. 아직 날도 추운데..’

(에스펜)‘옆동네에 풀어준다고 해도 영역싸움에 밀리고 또 그 동네 캣맘들도 좋아하지 않을거라는 말도 있어요.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이런 방식은 아닌 거 같아.’

(모모)'언니, 언니가 뭐라도 좀 해봐요. 언니가 한다면 나도 할께.'


에스펜은 이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중요한 결심을 하게 된다. 


'집이 무너지고 땅이 다 파지기 전에 이곳에 있는 아이들을 구조하여 제대로 살려보자. 포획해서 다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다운 삶을 조금이라도 누리다 갈 수 있도록... 그리고 인간과 길고양이들이 공존하는 세상이야말로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래 한 번 해보자'


이들 세 사람은 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은은한 어느 봄날 ‘이문냥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다. 재개발 지역 조합을 찾아가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며, 주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외대, 서울과기대, 한예종, 경희대, 고대 등 5개 대학 캣 동아리들과도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되었다. 지역 동물병원 2 곳의 참여도 이끌어 냈으며, 이외에도 지역의 많은 주민들이 다방면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주었다. 이들에게 있어 프로젝트가 마무리 시점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이 마을에 남아 있는 모든 고양이를 구조하는 것과 그들 모두를 좋은 가족 품으로 입양 보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냈고, 포스터와 SNS 계정도 만들었다. 그렇게 이문동에는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 (예고)네 번째 이야기 : 구조 첫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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