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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Jan 23. 2022

내가 지켜줄게 4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네 번째 이야기 : 구조 첫날 -


이문냥이 프로젝트가 닻을 올리기는 했지만, 어떻게 무엇으로 구조할 것이며, 구조한 아이들은 어디에서 보호할 지, 그리고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은 어떻게 할 지 등등 해결해 나가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우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용이었다. 회의 한 번 해도 커피 값이 몇 만원은 나오고 식사를 해도 그랬다. 포획틀을 구입하는 것도 그렇고 고양이 보호 케이지를 만드는 것도 모두 돈이 없으면 하지 못할 일이다. 일단 에스펜을 비롯하여 주축이 되는 사람들과 주변 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냈다. 대학생들은 의견을 주고 포스터를 만들고 고양이 집을 제작하고 포획 하는 일에 동참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역할은 충분했다. 고마운 일이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처럼 에스펜은 주변에 있는 대학 동아리에 연락을 해보았고 그렇게 해서 이렇게 훌륭한 팀이 결성되어진 것이다. 이렇게 조성된 최소한의 자금으로 포획틀 3개를 우선 마련했다. 식사나 차 값은 각자 알아서 내거나 여유가 있는 사람이 제공하기로 했고, 부족한 포획틀은 다른 구조 단체나 대학 캣동아리에서 빌렸다. 우여곡절 끝에 총 10여 개의 포획틀이 준비되었다.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길고양이 구조라고 하는 돈 벌이와 반대 방향의 일을 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겠지만 인간이 해야 할 일을 아무도 하지 않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그들로 하여금 이렇게 나서게 한 것이다.


구조된 고양이들을 보호하는 장소를 마련하는 일도 힘든 일이었다. 에스펜이 조합 측에 연락을 했고 협상에 들어갔다. 이제 곧 장막이 쳐지고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에 조합이나 시공사 측은 이문냥이 측이 들어가는 것을 꺼렸다.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도 그렇고 혹시나 들어가서 구조하다가 쓰레기 더미나 깨진 유리조각 등에 다치면 책임 소재를 가리는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어 어렵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에스펜과 이문냥이도 만만치 않았다. 포스터를 제작하여 재개발 지역과 인근 마을, 대학 등에 부착 했고 SNS를 통해서도 홍보하기 시작했다. 조합 측이 거부하기 어려운 조건과 이유를 하나 둘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시청과 유력 동물보호단체, 지역 국회의원에게도 연락하여 구조작업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설명하였다. 시청에는 홍보용 포스터에 시청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지만 선거 핑계를 대며 거절 당했고, 많이 알려진 동물단체에도 지지해줄 수 있는 지와 포획틀을 빌려줄 수 있는 지 등을 문의했지만 거절 당했다. 정작 의무가 있는 공공영역은 할 생각이 없고, 세금 지원을 받고 있는 거대 단체들도 지지하는 것 마저 회피하는 웃픈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에스펜과 그런아이, 모모는 길고양이 구조의 현실적 어려움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다행히도 표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지역 국회의원은 긍정적인 입장이었고 조합측에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해 주었다.  결국, 조합 측도 좋은 일인 만큼 동참하겠다고 결정을 하게 되는데, 주변 지역 5개 대학이 동참하고 있다는 말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인지 조합 측은 여기에 더해 구조된 고양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소와 물품을 보관하고 이문냥이 사람들이 잠시 쉴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해 주었는데, 마을 한 쪽 어귀 어린이 도서관으로 쓰던 작은 컨테이너와 마을 입구에 있는 미장원으로 쓰던 빈 공간이었다. 컨테이너는 20여 마리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협소한 공간이었고, 전기와 물도 없는 껍데기 미장원이었지만 이문냥이에게는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었다. 다들 감사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문냥이가 추진되고 여건이 갖춰지는 동안 마을 주변에는 장막이 쳐졌다. 이제 이 곳은 남겨진 고양이들과 이문냥이 간의 착한 전쟁터가 되었다. 3월이 다가오는 어느 날, 어린이 도서관 양지바른 곳에 사람들이 모였다. 이문냥이 프로젝트 추진팀과 동참을 선언한 5개 대학 중 포획에도 참여하겠다고 결정한 대학 3 곳의 캣동아리 학생들, 일반인 자원봉사자 등 15 명 정도였다. 사전 회의를 통해 인원을 포획팀과 고양이 집 제작팀으로 나누었다. 


집 제작팀은 다이소에서 미리 구입해 둔 네트망으로 고양이 한 마리씩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네트망은 케이블 타이로 묶었는데, 처음 해보는 터라 모두들 손이 너무 아팠다. 연결하고 묶고 당기고 자르고를 반복하는 사이 집이 하나 둘 만들어졌다. 작업한 지 벌써 4시간. 해가 지기 시작했다. 태양이 밤 속으로 들어가면서 날은 급격히 추워졌고 부루스타에 물을 데워 인스턴트 커피도 마셔보지만 3월초의 저녁은 만만치가 않았다. 결국 오늘의 작업은 내일로 미루고 다들 잠복하고 있는 마을 입구로 가기로 했다. 이 때까지 만들어진 고양이 집은 총 3개 반. 근 1시간에 하나 정도밖에 안되었다. 이런 식이라면 20개는 20 시간이고 하루 6시간 정도 하게 되면 3일 반이 걸리는 분량이라고 생각하니 다들 힘이 빠지기도 했다. 보기는 쉬워보이는 작업이 의외로 늦어진 것이다. 막상 해보니 고양이 집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네트망 대자 6개, 중자 6개가 필요했고 케이블타이는 80개 정도 소요되었는데, 사전에 해 본 사람이 없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남은 물품을 정리하여 도서관에 넣어 놓은 뒤 마을 입구로 가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 작업 속도를 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 고양이 집 배치는 어떻게 할 지, 고양이에게 줄 물과 밥은 어디에다 주고 화장실은 어떤 통으로 사용할 지 등 의견을 나누고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에스펜이 그려 준 미로 같은 골목 지도를 보며 미장원으로 향하고 있던 중 한 사람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며 다들 조용히 하라고 한다. 전방 좌측 골목 어귀에 검은 장모의 고양이가 앉아서 이들을 보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노르웨이숲 고양이다. 탄이다. 탄이는 조용한 성격에 사람들에게도 비호감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누군가 기르다 버려진 아이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태도가 있다. 가까이 하고 싶어 하면서도 막상 다가가지 못하는... 지금 탄이의 앉아 있는 모습이 이를 말해준다. 사람들을 호기심으로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다가서지는 않는 탄이다. 한 학생이 가지고 있던 캔을 주겠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뒤로 물러나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사이 이 학생이 다가가 캔을 따서 준다. 하지만 탄이는 여기까지다. 사람이 다가서면 물러서는 것이 탄이의 머릿속에서는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기계처럼 작동한다. 결국 탄이는 사라지고 캔만 남겨놓은 채 학생들은 미장원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애절한 마음의 소유자 탄이


한 편, 포획팀은 포획틀과 연어캔을 들고 제일 먼저 철거가 예정된 마을 입구로 갔다. 부근에 미장원이 있어서 틀을 설치한 후 잠시 쉴 수도 있었지만 누구도 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루 빨리 남아 있는 아이들 모두를 구조해야 한다고 하는 다급한 마음이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마치 따분한 일상에 불러 온 활기찬 새로운 에너지 광맥을 발견한 것처럼 이문냥이 사람들은 들떠 있었다. 오늘 가지고 온 포획틀은 총 5개였다. 마을 입구 집부터 시작하여 2~3집씩 건너뛰어 틀을 설치했다. 사람들이 다니면 안되었기에 다들 포획틀 근처에 몸을 숨기고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철거가 예정된 빈 집에 틀을 설치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온갖 물건들이 흩어져 있고 유리조각 등 위험한 물건들이 널려 있기 때문에 조심히 살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비어 있는 집들은 밝은 대낮이라고 해도 혼자 들어가기 무서울 정도로 폐가 같았다. 2인 1조가 되어 틀을 놓자고 한 것도 그런 이유가 한 몫을 했다. 어둠에 묻히는 저녁이 되면서 마을은 마치 산 속 한 가운데에 온 것처럼 불빛을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긴장과 기다림과 희망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이문냥이 사람들은 첫날 밤으로 가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추위는 매서워졌다. 분명 영하의 날씨는 아니지만 한 겨울보다 더 춥게 느껴졌다. 고양이들을 구조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없었다면 다들 견디지 못할 밤이었다. 집 제작팀은 미장원에 도착했다. 골목길을 지나온 이 날의 체험에 대해 다들 한 마디씩 하고 있다. 알 수 없는 공포감이 함께 걷고 있다는 안도감에 휩싸여 알수 없는 흥분으로 전환되는 경험은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체험이었다. 에스펜의 눈에는 불도 없는 미장원에 쪼그려 앉아 밝은 웃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수다를 떨고 있는 학생들의 순수함이 좋게 느껴졌다. 길고양이 구조를 두고 온갖 핑계를 대며 서로 책임 미루기를 하던 시청과 단체의 실망스러운 모습들이 오버랩되면서 함께 해 준 학생들이 너무나도 고맙게 느껴졌다. 그들의 순수함이 없었다면 이 마을 고양이들의 구조는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잠복해 있던 팀들이 하나 둘 돌아 온다. 밤 11시가 되었고 아직까지 한 마리도 포획하지 못했지만 집이 먼 사람들은 보내는 것이 맞다는 판단 하에 에스펜이 연락을 한 것이다. 사람들이 다시 미장원에 모였다. 오늘의 수고에 대해 서로에게 감사를 나누며, 내일은 오늘 다 하지 못한 집을 더 만들고 다이소에서 아이들에게 줄 밥그릇과 화장실 통을 사기로 했다. 한 자원봉사는 미장원에 대기하고 있을 때 추위를 막기 위해 사용할 부루스타와 주전자, 커피와 컵라면 등을 가져오기로 했고, 다른 사람은 앉아 있을 수 있는 의자를 가져오기로 했다. 추위 속에서 잠복을 계속하는 것이 어려움이었기 때문에 자동차가 있는 사람이 차를 주변에 대고 그 안에서 잠복할 수 있게 하겠다고도 했다. 서로 시간 약속을 하고 오늘을 마감하려고 하는 순간, 그런아이가 한 마디만 하겠다고 나섰다. 고양이들이 주로 움직이는 시간은 새벽인데 낮에 시작해서 밤에 포획을 마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본인이 새벽까지 해보겠다고 한다. 옆에 있던 남학생 둘이 함께 있겠다고 한다. 이왕 시작했으니 제대로 구조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문냥이의 첫 날 포획은 새벽으로 이어졌다.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그저 고양이들을 구조해야겠다는 열정만으로 시작된 이문냥이 프로젝트가 과연 앞으로 얼마나 잘 해낼 지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사람들의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단단한 각오만큼은 3월의 추위를 데우고도 남았다.


- (예고)다섯 번째 이야기 : 드이어 아이들이 들어와 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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