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다섯 번째 이야기 : 드이어 아이들이 들어와 주다 -
와지끈!
누군가 유리를 밟은 모양이다. 보통 한 집이 이사를 하게 되면 새로 들어올 사람이 있기 때문에 유리창이나 문을 부수고 가는 일은 없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도 남겨진 잔쓰레기나 이삿짐을 운반하며 생긴 발자욱, 창틀이나 부엌 후드, 랜지와 그 주변의 기름 때 등을 청소하는 정도이지 유리창을 새로 끼우거나 문을 통째로 바꿔달지 않는다. 하지만 재개발 지역은 모습이 다르다. 이문냥이 사람들도 생전 처음 보게 된 장면들이라고 이구동성 이야기 하는 부분인데, 빈 집마다 깨지지 않은 유리가 없을 정도이고, 철로 된 대문은 온전한 경우가 별로 없고 방문짝들 위에도 발자욱이 선명히 나 있거나 부서진 경우가 많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이 들어와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사가기 때문인지 이사 떠나는 사람이나 이삿짐 나르는 사람들 모두 집을 거칠게 다룬 흔적들이다. 와지끈은 재개발을 예고하고 있는 부서져버린 집의 잔해들 위를 누군가 밟고 지나갔다는 소리다.
'조심해. 다치진 않았고?'
그렇지 않아도 목소리 큰 모모가 골목길을 삼켜버리듯 외친다.
'다행히 운동화 밑창이 두꺼워서 안다쳤어요. 앞으론 다들 조심해야겠어요. 온통 위험 투성이네요. 고양이들도 밟으면 다칠 거 같아 걱정이예요.'
외대 여학생이 무심코 던진 고양이 걱정 이 한 마디가 이문냥이 사람들의 머릿속을 동시에 관통하고 있었다. 구조 시간이 늦어질수록 다치거나 심지어 죽는 아이들도 많아질텐데 큰일이라는 다급함이 다시 한 번 이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다급하게 느껴지고 있지만, 아이들은 이런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아직까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있으니 걱정이 많은 하루의 시작이다.
오늘도 10여 명이 모였다. 어제와 같이 두 팀으로 나눠 케이지를 만드는 팀은 도서관으로 갔고, 포획팀은 미장원으로 갔다. 도서관 팀은 오늘 무리가 되더라도 모든 준비 작업이 마무리 될 수 있도록 할 작정이다. 낮에는 포획이 잘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도서관 팀에 인원을 더 배치했다. 네트망으로 빨리 만들 수 있는 방법도 논의 했고 밥과 화장실통도 모두 구입해 왔다. 도서관 앞마당은 어제처럼 오늘도 햇살이 좋다. 봄바람인지 살랑거리는 바람이 불기는 하지만 따뜻하다. 주변에는 고양이들이 눈에 보인다. 세 마리 정도가 자주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이 주변에 터를 잡은 아이들인 것 같다. 혹시 틀에 들어올 수 있을까 하여 틀을 주변에 놓아보지만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잡히지는 않는다. 고양이는 영역을 쉽게 떠나지 않는 동물이기 때문에 도서관 작업이 마무리 된 후 천천히 포획해도 될 것으로 결론을 내고 지가갈 때마다 인사 정도만 하기로 했다.
미장원으로 간 포획팀은 지난 밤 꼬박 샌 학생 두 명을 제외하고 다시 모였다. 그런아이도 이들과 밤새 같이 있었지만 아침에 잠시 눈을 붙인 뒤 옷만 갈아 입고 다시 나왔다. 이들은 고양이들이 새벽에는 잡힐 것으로 기대하고 기다렸지만 이상하게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새벽 추위는 여전히 거셌기 때문에 틀을 설치한 후 미장원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순번을 정해 30분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돌아보는 방식으로 살펴보았다고 한다. 오늘도 같은 방식을 적용할 예정이다. 포획틀은 모두 6개로, 어제와 같이 마을 입구 부근 집들을 중심으로 설치할 예정이다.
오후 중반 무렵 에스펜은 학생 4명을 데리고 포획틀을 놓기 시작했다. 에스펜은 지난 8년 동안 아파트 주변에서 근 20여 마리의 길고양이들을 포획하여 중성화 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틀 안에 놓아둘 미끼는 가장 저렴하지만 생선 냄새가 강한 캔으로 정했는데, 이를 신문지 위에 조금 올려놓고 틀 안에 두는 방식을 사용했다. 아이들이 이것을 먹기 위해 틀에 들어가서 신문지 밑에 가려 진 판을 밟게 되면 문이 닫히게 된다.
학생들이 양 손에 하나 씩 포획틀을 들고 미장원을 나서 골목길을 걸어갔다. 틀을 놓아 둘 집을 물색하면서 두 개를 설치한 후 다른 집으로 가려는 순간 오랫동안 이 마을에서 양이들에게 밥을 주어 온 할머니와 마주치게 되었다. 할머니는 인상을 쓰며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들, 지금 뭐하는거야? 아이들을 다 잡아가려고 그러는 거지? 당장 다 집어쳐. 내가 가만 안둘거야.'
할머니는 한 학생이 들고 있던 포획틀을 손으로 강하게 잡아 끌었다. 학생이 아이들을 잡아가는 게 아니라 구조하는 거라며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런아이가 단호한 어조로 나섰다.
(그런아이)'할머니, 여기서 밥 주시던 분이시죠? 저 보시지 않았어요? 저도 밥 주던 사람이예요. 아이들이 위험하기 때문에 구조하는 거지 잡아가긴 누가 잡아간다고 그래요? 내버려 두면 다 죽어요.'
(할머니)'죽긴 왜 죽어. 내가 밥 주는데... 말 필요 없고 다 집어쳐. 당신들이 틀을 놔도 내가 밤에 다 없애버릴거야. 두고 봐'
할머니는 지나갔지만 이문냥이 사람들은 다들 할 말을 잃고 한 동안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었다. 에스펜의 머리에는 문득 어젯밤과 새벽에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던 이유와 앞으로 어떻게 해야 고양이들을 안전하고도 용이하게 포획할 수 있을 지 방법이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고양이들은 먹을 밥이 있고 그래서 배가 고프지 않으면 포획틀에 넣어둔 음식을 잘 쳐다보지 않는다. 아이들을 중성화를 위해 잡을 때에도 그래서 일부러 하루 이틀 정도는 주던 밥을 중단했었는데, 이 점을 지나친 것이었다. 지난 밤 아이들을 볼 수 없었던 것도 할머니가 밥을 주셨기 때문이고, 앞으로도 계속 주신다면 아이들 구조하는 것은 더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다. 오늘은 일단 이대로 포획틀을 설치하지만 할머니를 설득하는 일이 중요하게 떠올랐다. 할머니의 마음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철거라고 하는 중차대한 국면 아닌가? 에스펜과 그런아이 둘은 학생들을 데리고 할머니가 밥을 놓아두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장소를 뒤지기 시작했다. 몇 곳에서 밥자리를 발견했고 밥은 모두 수거했다. 이제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아이들이 확인하게 되면 음식을 찾아 포획틀 주변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밤이 되면서 새벽까지 지켰던 학생 두 명이 합류했다. 오늘 밤에는 아이들 포획도 중요하지만 할머니로부터 포획틀을 지키는 일도 해야 했다. 4개 조로 나눠 한 시간마다 틀이 설치된 곳을 돌아봤다. 다행히 할머니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예상대로 한 마리씩 여기 저기 고양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먼저 나타난 아이는 카오스 단이다. 미장원에서 멀지 않은 집에 설치한 틀에 언제 들어갔는 지 들어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학생들이 10시 정도 순찰을 돌다 발견했다. 단이는 이 지역 켓맘들이 밥을 주던 아이는 아니다. 다들 처음 보는 아이였다. 나타난 것은 처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주는 밥을 전혀 먹지 않은 아이라고 단정하기도 그렇다. 고양이들을 보면 밥 주는 사람에게 얼굴을 보이며 먹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숨어서 몰래 먹는 아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아이를 밥을 주면 숨어서 먹는 아이들이 세 마리 정도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단이는 아마도 그런 아이였을 것이다. 단이 이야기는 후에 다시 하기로 한다. 처음으로 잡히면서 이문냥이의 희망이 되어 준 아이지만 그만큼 마음 아픈 이야기를 갖고 있는 단이다.
아이들이 포획틀에 들어가면 일단 협력병원에 데려가 검진을 받은 후 전염병이나 특이 질환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도서관으로 데려가 입양 될 때까지 보호하게 된다. 단이처럼 늦은 밤에 잡힌 아이들은 일단 미장원에서 밤을 보내게 한 뒤 날이 밝으면 병원에 데려가게 된다. 밤에 도서관으로 데려갈 수도 있지만 그 곳은 마을 중에서도 외진 곳이라 자원봉사 차량이든 택시를 이용하든 병원에 데려가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사람이 부족한 상황에서 여러 번 움직이는 것이 아이들이나 이문냥이 측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병원이 문을 닫은 시간에 잡힌 아이들은 미장원에서 보호한 후 아침에 병원까지 들렀다 도서관으로 데려가도록 한 것이다. 학생들은 단이가 들어간 포획틀에 천을 덮은 후 미장원으로 향했다. 미장원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은 단이를 보자 환호성을 질렀다.
(모모)'고양이들이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하네요. 우리가 헤치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되겠죠?'
(에스펜)'지금은 당장 모르더라도 언젠간 알겠지. 자 지금부터가 시작이니까 다시 한 번 화이팅 합시다!'
미장원의 밤 공기는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이사 나가면서 뜯어놓은 세면대 밑에는 커다란 구멍의 하수도 관이 나와 있었고, 시궁창 냄세를 타고 쥐들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벽걸이 장을 떼어낸 곳은 시멘트 벽에 얇게 발라놓았던 회벽 여기저기가 갈라지고 떨어져 나오면서 사람들이 숨쉬는 공기 곳곳을 체우고 있다. 무언가 탁한 냄세는 회벽 냄세인 듯 하다. 들어오지 않는 전기 대신 켜놓은 손전등 불빛은 어릴 적 귀신 놀이 할 때를 연상시키듯 사람들의 움직임을 이리 저리 흔들어대고 있다. 그나마 추위를 가셔보고자 틀어 놓은 부루스타 가스불이 인위적인 모닥불 흉내를 내며 사람들의 긴장감을 달래주고는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다 본다면 영낙없이 불량배들이 재개발 지역 빈집을 털어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 될 정도다. 하지만 이문냥이는 그래도 즐겁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구조가 이제 본격적으로 서막을 올렸기 때문이다.
'밤을 새 본 적도 오랜만인데, 서울 한 복판 재개발 지역에서 이런 경험을 하는 것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아이들만 잘 구조하게 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외대 여학생의 조용한 한 마디가 차갑고 둔탁한 미장원의 밤공기를 따뜻하고 훈훈하게 바꿔놓고 있었다.
- (예고)여섯 번째 이야기 : 찡찡이와 노랑이 -